이 말을 어렸을 때는 부모에게 듣고 커서는 자기가 자신에게 하고, 직장에 들어가서는 상사에게 듣다가 영혼마저 지쳐버린 사람들을 나는 오늘도 만난다.
아무런 정보도 지도도 없이 인적 드문 낯선 곳에 나를 떨어뜨려놓고서, '자 이제 혼자 잘 갈 수 있지?'라고 하는 말과 뭐가 다른가.
아 물론 당신은 감이 좋아서 어디서든 길을 잘 찾아갈 수도 있겠지. 그저 부러울 뿐이다.
오랜 세월 길치로 살아온 나는 나만의 경험치의 통계에서 내린 딱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한 딱 반대로만 가면 항상 맞다"
실험도 자주 해봤다. 아 오른쪽인가? 싶으면 왼쪽으로 가본다. 그러면 그쪽이 맞았고, 왼쪽이겠지? 판단이 될 때 오른쪽으로 가면 그게 또 옳았다. 운전을 하다가 혹은 낯선 곳에서 화장실을 갔다가도 종종 길을 잃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 이쪽으로 가면 될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한 딱 반대로 가면 그게 맞았다. (이해하고 있는가?)
이 실험이 들어맞는 게 너무 웃겨서 혼자 낄낄낄여러번 웃었었지.
몹시 씁쓸한 결론처럼 들리겠지만 불안한 나를 믿고 매번 잘못된 선택을 해서 좌절하는 것보다 내가 생각한 반대로 행동하면서 해본 재밌는 실험이 더 유익했다. 오랜 시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어떤 진짜의 나와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고 이상한 것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영혼이 더욱 자유로워지는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다.
스피치 코칭을 할 때 발표 불안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이유는 다양하다. 어릴 적 발표를 하다가 크게 창피를 당한 경험 때문에 또는 스스로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 오히려 더 떨리고 사람들 앞에서 부자연스러워진다는 사람 등등.
'그냥 자신 있게 말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차라리 떨리세요.'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말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그 눈빛에 '오오 더 말해주세요 '그런 글자가 자막처럼 스쳐간다.
"안 떨린척하는 것도 좋지만요 그것은 경험이 쌓이면 떨리는 모습을 감출수 있는 스킬들을써먹을 수 있을 때가 자연스럽게 찾아오니까 나중 문제고, 경험이 아직 많지 않다면 차라리 이렇게 말하세요. "
"제가 열심히 준비했지만 떨리네요. 이 떨림은 잘하고 싶은 셀렘인 것 같습니다. 떨림과 설렘으로 최선을 다해볼 테니 함께 즐겨주세요! 이런 멘트를 미리 준비해서 말하세요."
(실제로 우리의 뇌는 떨리는 것과 셀레는 것을 같은 감정으로 인지한다고 한다)
이렇게 말을 뱉는 순간 우리의 자율신경계가 건강하게 돌아가면서 자신감 있고 정말 나다운 나의 목소리와 말투로 말하게 된다.
(참고: 책 나는 당신이 스트레스 없이 말하면 좋겠습니다에서 의사이며 저자가 한 말)
이제 '사람들을 의식하지 말고 그냥 말하면 된다'는 말을 믿지 말라.반대로 하라.
스피치는 무의식에서 저절로 툭툭 튀어나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 있는 말들을 꺼내고 의식화하고 질서를 잡는 과정이다. 대상에 따라 그들이 내게서 듣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의 목적은 무엇인지 정하고 준비하고 하는 것이다. 자주 하는 말이지만 스피치 그거 말빨로 하는 것이 아니다. 준비다.
길은 네비도 있고 택시도 있고, 구글 길 찾기도 있고 사람들에게 물어서 찾아가면 되지만,
말은 그냥 나 자신이다. 나의 영혼육의 합일체이고 나의 수준이고 정체성이다. 나 혼자 남겨지는 순간 어떻게든 말의 끝까지 '내가' 직접 가봐야 한다. 그러니 하던 대로 하지 말고 준비하고 많이 연습해서 하길 바란다.
사람들이 울림있는 내 말과 보이스에 집중하면서 듣고있는것처럼 짜릿한 즐거움이 또 있을까. 영향력을 끼쳤다면 보람까지 커진다. 대화를 할때도 무의식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말고 지금 이 사람에게 어떤 말이 필요할지 의식하고 고민하고 말하자. 자꾸 그렇게하다보면 의식이 무의식으로 넘어가 그 말과 내가 하나가 되는 날이 올것이다.
스피치는 못한다 잘한다가 아니고 심리적인 부분과 정성,그리고 말하는 자의 에너지에 달려있는 경우가 많다. 여러번 고칠수있는 글과 달리 말은 곧 뱉어지는 그 순간 영혼육의 합일체(=진심)로 전달된다. 그래서 더욱 우습게 여기지 말고 나의 모국어도 잘 배우고 연습해야하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