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뜻한 스피커 Nov 23. 2021

우리가 이혼 안 한 이유, 첫 번째 원칙을 말하다

다른 욕구 같은 원칙

4화 우리가 이혼 안 한 이유, 첫 번째 원칙을 말하다


“ 어머 결혼 축하해! 신혼집은 어디야?”     


 부모님께 어떤 경제적 지원도 받지 못한 우리는 가지고 있던 얼마 되지 않는 돈에 빚까지 내서 서울 변두리 반지하에 신혼살림을 겨우 마련했다. 힘들었던 연애를 끝내고 신혼생활을 시작한 달콤함도 잠시, 괜찮을 줄 알았으나 인정받지 못한 며느리라는 내면의 상처는 라벨링이 되어 깊숙이 자리했고 수시로 그 응어리가 튀어나와 우리 부부를 공격했으며, 마음이 강하지도 못한 나는 자주 울었다. 결혼 후 더 슬퍼진 인생을 살게 된 것만 같았는데 돈마저도 없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돌아보면 우리 가정이 현재 누리는 이 모든 행복이 더욱 기적같이 느껴지는 과거들이다. 아 그런데! 그냥 기적이라고 하기에는 눈물 나는 노력과 속사정이 있었다.      


이혼의 원인 중 가장 흔히 언급되는 이유가 성격 차이라고 한다. 윌리엄 글라써의 5가지 기본 욕구 이론에 따르면 나의 남편은 안전과 생존의 욕구가 강한 사람에 해당되고 나는 즐거움 사랑의 욕구에 해당되는 정반대의 사람이다. 

남편은 집안에 꽂혀있는 전기코드를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한다. 출근 전 또는 잠자기 전에 코드를 다 빼고 확인하는 의식을 취해야 잠이 들었다. 남편은 수십 년째 매일 다이어리를 꼼꼼히 적고 그대로 수행하며 하루를 사는 것을 인생의 철칙으로 아는 사람이다. 사전에 계획되지 않은 갑자기 떠나는 여행이나 모임 같은 것을 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의 취미 중 하나는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이다. 그는 차로 움직이며 기업과 고객을 찾아가는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동하는 시간에도 무엇을 할지 여러 루틴이 정해져 있고 그 시간을 이용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내게 전화를 한다. 그리곤 화요일인데 아직도 주말 계획을 안 세웠냐고 채근한다. 연애 시절이나 결혼생활 중에도 나에게 아주 성실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괜한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어떤 말이나 약속 같은 것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말이라도 좀 그렇다고 해봐"


"말했다가 괜히 나중에 실망하는 것이 뭐가 좋아. 기대 안 하다가 좋은 일 생기면 좋은 거고 그런 거지."

      

그렇다. 극 현실주의자. 이런 남편 때문에 어렵게 시작한 살림살이 안 굶고 살았음을 인정하지만 난 이런 남편이 지루하고 답답했다.

나는 완전 반대다. 말이라도 해야 하는 사람이고 계획에는 없었지만 즉흥적으로 떠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뒷일 생각 안 하고 일 년쯤 일을 내려놓고 세계여행을 떠나자고 평생 부추긴 사람이다.

유행어가 떠오른다


"아 당신은 정말 나의 로또야~! 진짜 하나도

안 맞아~~"


 결혼 초는 누구나 그렇듯 우리도 서로 맞지 않아

셀 수 없을 정도로 싸웠지만 이렇게 다른 우리가 결혼생활을 그래도 잘 유지해온 것은 몇 가지 중요한 비밀이 존재했다고 믿는다. 그것은 우리만의 원칙이었고 감사하게도 그것에 합의하고 지켜나가는 것에는 마음의 쿵 짝이 참 잘 맞았다.     


원칙 첫 번째는 '부모를 떠나자' .

결혼생활을 잘하려면 부모를 떠나라. 모든 의사결정에 있어서 정신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하자는 것이다. 결혼 전 시부모님은 우리 부부에게 성당에서 결혼만 하면 집도 사주고 차도 사주겠다고 말씀하셨던 적이 있다.

그것도 따로따로 불러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는 둘 다 거절했다. 우리는 결국 일반 예식장에서 결혼했다. 아직도 당시 시아버님의 마지막 말씀이 잊히지 않는다.     


”너네는 정말 똑같은 애들이구나. 마음대로 해라! “     

그렇다. 우리는 똑같아야 했다. 같은 원칙을 갖고 움직이는 한 팀이니까. 결혼 후 우리는 매주 또는 매월 두 번 이상은 부모님을 찾아갔었고, 성인 자녀답게 많진 않지만 결혼 후 한 달도 빼지 않고 정기적으로 용돈도 드렸다.

하지만, 단 하나 양가 부모님이 우리 부부 사이에 관련된 부분이나 자신의 손주들 즉 우리 자녀들의 일에 간섭하려고 하면 바로 선을 그었다. 웃는 얼굴로 야박하다 싶게 말이다.     


"저희가 결정하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라는 말이 나오면 시부모님은 더 이상 말을 못 하시게 되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남편의 실행과 나의 침묵의 노력 말이다.

언젠가부터 양가 부모님은 더 이상 별 간섭을 하지 않으셨다.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조타실은 선장실이다. 선장이 방향키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배가 순항을 할지 난항을 할지가 결정된다. 결혼생활은 오직 부부가 함께 그 키를 잡아야지 시부모님이나 친정부모님이 이리저리 잡고 흔들어서는 안 된다. 가정은 오직 부부가 만들어가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모습이어야 한다. 조금 부족하고 좌충우돌하면 어떠하리. 그것이 바로 계속 배우며 잘하고 있는 중이라 그런것이다. 사실 그러한 삶의 태도가 결국 원 부모에게도 진정한 효도가 될 것이고, 오롯이 부부가 이루어낸 행복이므로 값지두고두고 자부심도 크다. 무엇보다 아이들도 보고 배운다. 원 부모님들과의 적정한 거리 두기! 행복한 결혼생활에 필수요소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애도 결혼도 공식은 없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