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질체력에 저질정신력이 깃든다
원래는 이런 문장이지.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그리고 이 문장을 덧붙이고 싶다.
건강한 정신이 건강한 몸을 만든다.
나의 버전으로 하면 이렇게 된다.
저질체력에 저질정신력이 깃든다.
저질정신력이 저질체력을 만든다.
나는 어릴 적부터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몸이 약해도 너무 약하다. 내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보다 더 약해서 스스로도 새삼 놀란다. 엄마 말로는 뱃속에 있을 때 엄마가 신경을 많이 써서 건강이 안 좋았다고도 하고, 한창 클 때 제대로 못 먹여서 그런 것 같다고도 했다.
내 마음이 약해 빠졌던 것은 역시 몸이 약했기 때문인 것 같다. 저질체력에 저질정신력이 깃든다. 몸이 쉽게 피로해지니까 우울도 쉽게 찾아왔다. 또 우울하니까 몸도 축축 처지는 것이 그야말로 악순환이었다. 기본적으로 엄청 예민했고 긴장하거나 하면 바로 몸이 반응하는 체질이기도 했다. 그나마 학생일 때는 가장 팔팔할 때여서 그런가 그저 내가 친구들보다 잔병이 좀 많고 쉽게 피곤해지며 잠이 많은 정도로만 알았고 병이 나더라도 회복은 빨랐는데 일을 시작하니까 몸이 더 자주 더 많이 아프고 회복이 더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몸살을 자주 앓았는데 그렇게 아플 때 일반 병원을 가면 정작 검사를 통해서는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서 양의학에서 나는 건강염려증 환자일 뿐이다. 치료하러 다닌 한의원 같은 데서는 신장이 안 좋다는 말도 있고 심장 기능이 좀 약하다는 말도 있고 자율신경계 불균형? 아무튼 허약체질에 혈액 순환이 안 되고 속이 차서 소화기능도 안 좋다는 것이 공통된 진단. 검사로 발견되는 큰 병이 있는 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어디 가서 아프다고 말하기도 눈치 보이고 참 성가시다.
이런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지금 아프기 때문이기도 하다. 징징거리는 게 특기라 글을 통해서 쏟아내는 이 시간이 힐링타임 같다. 매달 앓는 몸살인데 이번엔 유난히 심하다. 피로가 누적되었나..? 뭐 했다고. 나는 엄청나게 하고재비인데 내 체력 때문에 제한을 많이 받아서 굉장히 속상하다. 내 체력을 염두에 두지 않고 욕심내다가 꼭 몸에 탈이 나서야 멈춘다. 몸이 원망스럽지만 몸은 내가 원망스러울라나. 건강해지고 싶어서 운동을 해보려고 운동을 시작하면 운동 때문에 몸살이 나고 몸살이 나서 운동을 못하고.. 그걸 넘어서야 한다는데 힘들더라.
내가 여자로 태어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아프지는 않았을 텐데. 20대 중반을 지나면서 매달 배란이 될 시기에 생리통보다 더한 통증이 생겼고 어쩔 땐 하루 종일 아찔한 어지러움까지 온다. 그리고 그 달 생리를 시작하기 전까지 피로감이 가시질 않는다. 조금이라도 무리를 했다 하면 몸살이 와서 심할 때는 온몸을 두들겨 맞는 것처럼 아프고 누워 있어도 어지럽다. 매일매일 약을 먹어서 호르몬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도 없다고 해서 어떻게든 체력을 키워서 견뎌보는 쪽을 선택했다. 모든 게 호르몬의 장난인 것이다. 이유 없이 짜증도 난다. 이유가 없진 않지.. 몸이 아프고 피곤하니까 예민하고 짜증이 치민다.
그나마 최근에 마음수련 명상을 꾸준히 하면서 마음이 가벼워진 만큼 몸도 많이 가벼워졌다. 증상이 너무 심하다 보니 명상을 하기 전에는 아플 때마다 내가 어떻게 될까 봐 불안해서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지금은 똑같이 아프지만 두려움은 없어서 '으아, 많이 아프네..' 하며 치료도 잘 받는다. 딱 아플 만큼만 아프고 마음은 덜 괴롭다랄까. 그 전에는 몸이 아프면 마음까지 힘들고 마음이 힘드니까 몸도 더 아프고의 반복이었는데, 악순환의 고리라도 끊어진 게 천만다행이다.
몸과 마음은 하나여서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기도 하지만 정신이 건강해야 몸을 건강하게 만들 수도 있다. 살면서 내가 뼛속까지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던 데는 저질체력이 크게 한몫했다. 그래서 '내가 건강해진다면' 따위의 가정을 하고 상황 탓을 하며 상황이 바뀌어주길 기대했었는데 모든 힘듦이 실은 다 내 마음 탓이고 그저 내가 마음을 바꿔먹는 것이 필요했다. 마음빼기 명상으로 버린 것은 철저하게 나밖에 몰랐던 저질정신력이다. 몸이 약하다는 사실도, 내가 처한 상황도 그대로이지만 받아들일 수가 있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무엇인가 더 하려고만 욕심내고 몸을 쓸 줄만 알았지 쉬어주고 운동도 시켜주고 챙겨주는 데에는 소홀했던 나를 반성해본다.
최근에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서 절박한 심정으로 네 달 정도 직장을 쉬고 오롯이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게 됐었는데, 이번 기회에 운동도 하면서 10년째 안 찌던 살이 쪘다. 전과 후를 아는 사람들이 이제 좀 건강해 보인다고 말해주었다. 쉬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내가 이제 과연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다시 일을 할 수나 있을까 두려웠는데, 희망이 조금 생겼다. 다시 일을 시작하더라도 가벼운 운동부터 시작해서 꾸준히 건강관리를 해야겠다 싶다.
이제는 나를 억울하게 만드는 잔소리로부터도 좀 자유롭다. 첫째로는 겉모습만 보고 걱정하시면서 "안 먹으니까 비실비실하지" 하는 잔소리. 이건 친구들도 어이없어할 정도로 사실이 아니다.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하고 매운 음식 빼고는 골고루 다 잘 먹기도 한다. 둘째로는 "운동을 안 하니까 그렇지"라는 잔소리. 너무 맞는 말인데 운동을 하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라 나도 답답하다는 걸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답답한 건 나인데 내가 약한 걸 내 의지 문제로만 여기는 게, 걱정해주는 건 고맙지만 반갑지만는 않았다. 그래도 맞는 말씀이다. 무엇이 먼저였든 저질정신력이 저질체력을 만들었다. 그걸 인정하니까 이제는 억울하지도 않고 태연하게 웃으면서 받아친다.
올해는 보다 더 건강한 한 해를 보낼 수 있도록 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가꾸는 데 더욱 힘써야겠다. 내가 건강하지 않으면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민폐를 끼치고 만다. 그것이 너무 가슴이 아프다. 나는 내 몸이 축나도 무리해서 일을 하는 것이 책임을 다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큰 민폐를 끼치기 전에 휴식을 취하고 회복하는 게 차라리 더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내가 나 자신을 챙겨야지 다른 사람도 챙길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남이 나를 챙겨줄 것이라는 기대는 말자. 내가 없으면 남도 없고 내가 있어야 남도 있다. 그래서 몸은 운동으로, 마음은 명상으로 다질 것이다. 몸이 없으면 마음도 없고 마음이 없으면 몸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