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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한 새벽빛 Feb 11. 2017

신포도의 맛

합리화, 달콤한 거짓말

우화 <여우와 포도>, <배부른 여우>를 각색한 것입니다.


같은 날 두 마리의 여우 형제가 먹음직스러운 포도가 잔뜩 열린 포도밭을 발견했다. 첫째가 발견한 방향에서는 포도나무에 포도가 아주 높게 달려있었다. 첫째는 온갖 수단을 써서 따려고 애를 썼지만 거듭된 실패에 포도를 먹는 것을 포기하였다.


한편 작은 구멍을 빠져나가 낮은 포도나무를 발견한 둘째는 실컷 배를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배부른 둘째가 왔던 길을 돌아가려고 할 때는 구멍에 몸이 들어가지 않아서 홀쭉해질 때까지 굶은 채로 기다려야 했다.


두 여우는 똑같이 그것이 '신포도'였다고 말하고 미련없이 가던 길을 갔다. 그리고...




어느 날 첫째는 집으로 가는 길에 다친 까마귀를 도와주었다. 그러자 까마귀는 감사의 표현으로 여우에게 작은 포도 송이를 내밀었다.


"저쪽 포도밭에서 딴 포도인데 이거라도 받으세요."


"아이고, 그 포도밭에 달린 건 신포도가 아닙니까요."


여우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신포도라니요. 얼마나 맛있는데."


까마귀가 포도를 다시 거둬가려고 하자 여우는 냉큼 낚아채서 맛을 보았다.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맛보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을까요.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하지요."


첫째는 아우 생각에 남은 포도송이를 집으로 가져가서 둘째에게 건넸다. 그러나 둘째는 도리어 화를 내었다.


"포도는 됐어!"


"웬일이야? 포도라면 사족을 못 쓰던 녀석이."


"형이나 많이 먹어. 내가 잔뜩 먹어봤는데 엄청 시더라. 이젠 안 먹을꺼야."




첫째신포도라고 믿어버린 그것이 알고보니 신포도가 아니었다고 한들, 포도가 높은 곳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합리화는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으니 좋은 것일까.


그러나 그것이 합리화인 줄도 모른 채, 먹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믿어버린다면 기회가 생기더라도 진짜 포도를 맛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포도는 언제 어떻게 내 앞에 다시 놓이게 될지 알 수 없다.


지금 포도를 못 먹는 것보다 기회가 다시 와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더 안타까운 일이다. 사다리가 생겨 포도를 딸 수 있게 되어도, 까마귀가 내밀어서 먹을 수 있게 되어도 먹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둘째는 먹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자신의 상황을 곤란하게 바꾸자 자신이 먹은 것을 신포도로 둔갑시켜 버렸다. 과욕으로 인해 이미 맛을 보아도 그 가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스스로에게 속지 말아야 하겠다.


애초에 포도는 그냥 포도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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