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서로 다르지만 결코 다를 수 없는 영적 여정에 관해
추석이 지나고 난 후 머리와 몸이 너무 분잡스러워 친구와 바다에 갔다. 우리는 서로 각자 할 일을 보고 모이는 지라, 그날도 늘 그렇듯 서로 볼일 보고 다시 만나기로 하고 나는 반대쪽으로 건넜다.
바다의 에너지에 푹 빠져 머릿속이 걷히고 뒷목이 저려올 때쯤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저 멀리 내가 앉은 바위 왼쪽 큰 바위 끝에 황금색 석양과 강한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눈을 감은 채 서서 바다를 향해 똑바로 선 친구가 보였다.
그 찰나에, 마치 압축파일에 머리를 담근 것처럼 아주 많은 생각과 감정이 일순간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친구의 삶이 지금 엄청난 과도기이자 변환기에 있음을 다시금 느꼈다. 사실, 그 변화는 오래전부터 감지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더욱 분명해졌다.
세상에는 지식을 얻는 방법이 많지만, 지식과 실제로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은 다르다. 그래서 항상 그 둘을 구분하며 살아가려 한다. 그 여정에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어떠한 독특한 에너지들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생각을 완전히 존중하여 인간이 원하지 않으면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정해진 시간이 되면 그들은 떠난다.
그 에너지들이 무엇인지 일반인인 나는 지금도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무속에서 이야기하는 신, 혹은 자연의 령 같은 것과 비슷한 결이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눌려지지 않는 운명처럼 정해진 신명이랑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장단점이 있는, 언젠지는 모르지만 친구와 함께 있다가 앞으로의 남은 몇 년의 시간 동안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으면 두말 않고 그대로 떠날 존재들.
그런데 그 순간 똑바로 선 친구가 제자리에서 눈을 감은 채 통통 뛰기 시작했다.
규칙적으로 날아오르는 걸음은 가볍고,
친구의 머릿결에 반사된 눈부신 황금빛,
바다의 반 이상을 적시고 하늘에 퍼진 오렌지빛 석양들과 함께
그 순간에는 절대로 친구에게 다가가지도, 말을 걸어서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아름다웠다.
아름답고 신성한 느낌이 드는 가운데 친구는 가볍게 뛰면서 자연과 어떠한 아름다움과 그저 물아일체가 되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자연의 신과 완전히 물아일체가 된,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자연과 함께가 아닌 완전히 일부가 된 인간의 형상을 내 눈으로 보았다.
친구에게 다가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한 아저씨가 나타나 친구 뒤쪽 바위에 걸터앉는 모습이 보였다. 이 아저씨의 시간을 방해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쪽을 보지 않고 크게 빙 둘러 친구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친구는 이미 펑펑 울고 있었다.
"저 아저씨, 아내의 유해를 이 바다에 뿌렸나 봐. 지금 아내를 생각하고 있어. 그리워하는 그 마음이 너무 잘 느껴져서 너무너무 눈물이 나." 친구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 않는 게 맞으니까.
조금 진정한 후 친구가 말했다. "내 눈 좀 봐봐. 이제 내 앞을 가리는 게 많이 사라졌어." 고개를 들어 보니 정말로 친구의 오른눈을 가리던 것들이 사라져 본연의 눈동자가 느껴졌다.
앞으로 삼일이 지나면 친구는 자신을 찾고, 눈앞과 머리 위로 휘두르던 에너지들을 정리하는 여정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게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그 길이 끝나고 난 후 그토록 원했던 것을 스스로 찾아내길 바란다. 친구의 삶에 그가 주인이 되어 살아갈 그날을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