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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이야기 7

용서와 분노는 어떤 관계일까?

   1) 분노라는 감정

  분노는 좌절당하거나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거나 혹은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일들이 자신에게 일어났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인간은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기 위해서 분노를 필요로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면 깊숙이 존재하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분노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경우의 분노는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상처를 입거나 감정이 상하거나 거부당한 느낌이 들 때 분노는 우리를 보호해준다. 분노는 내면의 고통을 덮어두고 지나칠 수 있게 해주며 무력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분노를 표현함으로 해서 심리적인 짐을 벗고 편안해질 수도 있다. 분노표현이 안전한 범위 내에서 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분노를 허용하고 표현하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따라서 분노를 억누르지 않고 자신의 분노를 다루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즉 분노의 감정을 감지하고 인정하며 또 그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맹목적이고 파괴적으로 분노를 폭발시키지 않기 위해 분노를 품는 방법도 배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보다 자신있게 분노를 다룰 수 있다.


  분노를 비롯해 자기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은 몸과 정신에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준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당연히 몸 전체에 영향을 주게 된다. 억제된 분노는 일종의 지속적 흥분상태를 유발하기 때문에 몸에는 아드레날린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많이 흐르게 된다. 분노를 떨쳐버리지 못하면 혈압이 오르고 고혈압 상태가 지속될 수도 있다. 또 끊임없이 화를 잡아두면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감정표현을 충분히 못하면 신체적, 정신적 질환이 생길뿐만 아니라 그러한 질병상태가 계속된다. 그동안 만성적으로 억제된 분노가 신체적 질병을 야기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수없이 증명되었다.


한번 제대로 화를 내본 사람이라면 분노를 표출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지 잘 알 것이다. 그것은 마치 뇌우와도 같아서 분노를 표출한 후에는 상쾌함과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감정이 더욱 강렬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감정과 분노를 털어놓으면 인간관계 또한 더욱 깊어지고 솔직해진다. 


  2) 용서와 분노와의 관계

  억울하게 피해를 입으면 우선 분노가 생긴다. 그 분노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수도 있지만 제대로 표출하지 못한 억압된 분노는 증오심으로 변하여 부정적인 정서로 내 안에서 자리잡게 된다. 분노를 계속 품다보면 결국 분노가 당사자를 죽이게 된다. 


  높은 수준의 분노가 오래 지속되거나 부적절하게 표현될 때 분노는 개인의 신체적 및 심리적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나 직업생활에 악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생존가능성을 높여주는 긍정적인 분노와는 달리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이러한 부정적인 분노는 용서과정을 통하여 드러냄으로써 치유되어야 한다. 용서하는 것은 분노를 억압해서 지속적으로 품지 않도록 분노를 폭발적으로 표현해내는 과정이다.  

  용서과정은 분노를 치유하는 과정이다. 분노를 억압하지 않고 분노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악행을 전체적으로 기억하면서 분노하고 자기감정을 세세하게 정직하게 느끼는 과정이 용서과정이다. 


  상처를 기억하고 분노하면서 드러내지 않고 억압하면 플래시 백 현상이라는 정신병리로 진행될 수도 있다. 어린 시절 상처받은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그 상처로 인해 좋은 작품을 창조하기도 하지만 젊은 나이에 자살을 많이 하는 이유가 상처를 햇볕이 잘 드는 마당에 펼쳐놓고 말리면서 치유하지 않고 억지로 내면에 밀어넣고 억압하면서 단편적으로 기억하고 분노하는 플래시 백 현상(과거를 떠올리는 ‘회상’과는 다른 의미이다. 심리적 용어이며 현실과 격리된 채 다시 한번 그 상황으로 돌아가 괴로운 상황을 겪는 것이다)을 나타내며 그 감옥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용서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용서하기를 결정하기 전에도 충분히 분노해야 한다. 분노없는 용서는 성급한 용서이고 성급한 용서는 지극히 위험하다. 특별히 사회적 약자들이나 여성들의 용서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용서학자 머피(Jeffrie G. Murphy)는 분노가 없는 성급한 용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 도덕질서에 대한 존중, 가해자에 대한 존중 심지어는 용서자체에 대한 존중마저도 훼손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분노에 의해서 지켜질 수 있는 반면 성급하고 무비판적인 용서에 의해서 위협당할 수 있는 가치로 그는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즉 자기 존중, 자기 방어, 그리고 도덕질서에 대한 존중이다. 그는 분노란 자기 자신과 자신의 권리를 돌본다는 정서적인 증거 혹은 선언이라고 말한다. 


  스머즈(Lewis B. Smedes)는 분노없는 무분별한 용서는 가해자의 명백한 잘못을 잊기 쉽게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명백한 잘못을 쉽게 용서하고 쉽게 잊는다는 것은 그런 잘못들이 또 다시 반복되도록 암시적으로 승인한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분노를 하고 그 분노를 오랜 세월 품고 용서하지 못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지만 이렇듯 분노없이 쉽게 용서해버리는 것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자기존중감, 자기방어력을 떨어뜨리고 똑같은 악행이 반복되도록 허용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여성의 본능으로 간주되는 스트레오타입의 여성들이나 사회적인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분노없는 성급한 용서를 하고 성급한 화해를 할 경우 자신들을 지속적인 위험 속에 내던지는 것이 될 수 있다. 올바른 분노는 개인적인 가치, 필요 그리고 신념을 보호하는 것이며 건강한 분노없이 관계 속에서 균형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분노를 바르게 표현하는 것은 관계의 경계를 세워가는 길이 된다. 용서과정에서는 이러한 분노를 안전하게, 바르게 표현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분노는 용서의 필수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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