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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Jan 25. 2019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지만, 열심히는 살고 있어요.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직장을 그만둔다고 말했을 때 대부분이 제일 처음하는 말은 "부럽다. 이제 쉬겠네?"다.


 그럴리가. 어기여차 일하고 공부하며 살아온 인생, 맘편히 놀아지겠냐고. 입시경쟁부터 학점경쟁, 취업경쟁 그리고 실적경쟁까지 남들이 겪는 경쟁이란 경쟁은 나도 다 겪었다. 심지어 자기계발도 경쟁적으로 하는 사람들 틈에서 내가 뭘, 어찌 쉬겠어.

 

 '공간'이라는 거대한 영역에 관심을 두니, 배워야 할 게 산더미다. 오프라인 공간 하나만 놓고 보아도 알아야하는게 백두산이다. 그중 내 딴엔 가장 쉽게 시작할수 있을거라고 착각한 가능한 목공을 배워보기로했다. 열번의 짧은 수강 기간이지만 적어도 용어나 단어는 좀 익히겠지하는 기대감이 한 20프로, 내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는 설렘이 80프로. 할줄 아는 게 말과 글이 전부인 나로서는 - 그마저도 잘 못하지만 - 손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게 그렇게 멋지고 부럽다. 이 로망을 자극하기도 딱 좋았다, 목공은.

 

 시작은 언제나처럼 호기로웠다. 다달이 월급 나오는 직장인이 아니라는 걸 자각하기 전까진. 월요일과 수요일마다 용돈벌이하러 서울에 가는데 목공 수업이 인천에서 9-6다. 직장 끝나고 투잡 뛰는 기분이다. 


처음 경험하는 연장들


 물론 수업은 매우 재미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데도 베시시 미소가 나올 정도. 미세먼지 농도와 상관 없이 아침 공기가 상쾌한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 


 목공이란 세계는, 처음 겪는 세상이 늘 그렇듯, 신기하고 새롭다. 특히 난생 처음 만져보는 톱이라든지, 끌이라든지, 커다란 콤파스 같은 도구들이 마음을 부풀린다. 톱이 가지런하게 놓인 수납장도 괜히 멋져 보이고 여러 종류의 끌이 놓인 광경도 괜히 행복하다. 연장 보러 학원 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업은 겨우 겨우 따라가는 정도다. 톱으로 자르거나 켜는 건 하겠는데, 끌로 홈 만드는 건 아직도 가관이다. 아저씨 수강생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하루종일 긁다가 가는 지경(....) 나름 최선을 다해 망치로 끌을 내리쳐도 푹 파이지 않는다. 그냥 힘줘서 긁은 느낌...?


 무엇보다도, 나는 도대체가 생각이라는 게 없다. 홈을 왜 파는지, 여기 홈을 파서 뭘 할건지 이해를 못한다. 톱질 잘못해서 삐꾸되면 그제서야, '아. 이게 여기에 이렇게 맞추려고 자르는 거였구나'한다. 


의자 니스칠 작업중

 

 며칠 간 톱질부터 짜맞춤, 주먹장까지 기초 연습을 다 끝내고 어제 드디어 의자 만들기를 시작했다. 집에 가져갈 만한 결과물이 나온다니, 감격스럽기 그지 없다. 비록 샤프심 자국도 다 갈지 않은 원초적인 결과물이지만 뭐, 내 마음에 드니까 됐어.


 마침 엄마한테 뭐라도 보여주고 싶을 찰나였다. '나 이거 배워' 라고 말로 떼우기보다 결과물로 딱. 엄마는 '백수 딸이 뭐라도 하나보다'고 생각하시겠지. 허투로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현재 시점의 결과물이기도 하고. 일상 생활에서 성과가 없는 건, 월급이 없는 거 만큼이나 마음을 괴롭게 만든다. 의자는 그런 의미에서 가뭄에 단비다.


 요 며칠 간 마음이 조급해, 모자라는 체력을 부추겨 뭐라도 하기 바빴다. 진짜 웃기지. 나도 안다. 이건 이제 막 톱의 켜는 날, 자르는 날 배워놓고 바로 의자 만들겠다고 땡깡 부리는 거라는 걸. 그래도 어쩌겠어. 내 실력을 알리 없는 걱정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정신 차리면 바다 한 가운데다.


 내 조급함이 나를 갉아먹는다. 이번 주엔 두 시간 자고 톱질하러 가고, 세 시간 자고 피피티 만들었다. 백수로 넋 놓고 사느니 차라리 몸이 갈리는 게 심적으로 편하다. 올해 일 년은 뭐하는지 몰라도, 뭐라도 하느라 엄청 바쁘겠지. 안 봐도 훤하다.


 그러니 일 년 뒤 결국 어느 한 길의 문을 닫아 내더라도, 혹은 내세울만한 결과물 하나 못 남기더라도 나는 알아주자.


 나는 열심히 살았고, 살고 있고 살아낼거다. 

 

보여줄게 없고, 내세울 게 없고, 남들은 아무도 몰라 주더라도 나는 기억해야줘야지. 의자는 커녕 주먹장 하나조차 못 만들고 끝내는 일 년일지라도 꼭 기억하자. 내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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