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편집자의 취향 확립 프로젝트
물건을 주문하려던 나는 주소의 상세주소 입력 페이지에 '단독 주택'을 적어 넣었다.
서울시 oo구 oo로 oo길 oo-oo, "단독 주택"
단독 주택이라는 단어를 상세주소에 입력하기 시작한 건 한창 도로명 주소로 주소 체계가 정비되던 무렵부터였다. 도로명 주소에 맞춰 주소 입력 페이지가 전체적으로 바뀌었고, 바뀐 페이지에서는 꼭 상세주소를 입력해야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처음에 나는 의아했다. 이미 우리 집 주소 전체를 적어 넣었는데, 상세주소라고 할 게 뭐가 있다는거지? 넘어가지 않는 페이지에서 이것 저것 눌러보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리고 그 무렵쯤 서울 한복판에서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또래와 조금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변의 친구들은 삼삼오오 아파트 단지로 함께 하교하였고, 처음에 만나 어디 사는지를 서로 물을 때면 같은 아파트라는 사실을 알고 반가워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뒤에 으레 이어지던 질문이 이거였다.
"그럼 너는 몇동에 살아?"
그때 나는 깨달았다. 저게 상세주소겠구나.
그 뒤로 나는 상세주소란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단독주택"이라고 적었다. 우리 집은 이 주소지의 유일한, 우리 가족만 사는 집이니까.
31년을 단독 주택에 살았다. 단 한번의 이사를 했지만 이사 전에도, 이사 후에도 우리 집은 단독 주택이었다. 이사 전에는 제법 큰 마당이 집 한 가운데에 있었다.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 대추 나무도 마당의 정 가운데에서 나와 세월을 함께했다. 마당 한켠에는 작은 화단이 있었고, 아빠는 거기서 담배를 피고 풀을 가꿨다. 아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 닥쳤던 그 날들에, 내가 기억 못하는 그 시절의 아빠는 그 화단 앞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연거푸 피워댔을 것이다. 그리고 올려다 보면 아직 아파트에 둘러쌓이지 않아 동네에서 가장 높은 집이던 우리 집 위로 드리운, 그 막막한 까만 밤하늘만 보였으리라.
이사 전 우리 집에서 우리는 날 좋은 계절엔 한 켠에 돗자리를 깔고 삼겹살을 구워먹고, 자전거를 배울 때는 대추나무를 가운데 두고 빙빙 자전거를 타고, 친구들과 생일 파티를 한 날에는 친구들과 누가 대추나무를 더 높이 올라타나 내기를 하고, 여름 날 계곡에서 잡아온 올챙이를 마당에서 개구리까지 키우고, 그 개구리와 함께 키우던 거북이가 밤새 어항을 탈출해 도망쳐 버리는 와중에도,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갔다.
아빠와 엄마와 나와 동생을 꾸역꾸역 길러낸 우리의 집, 그 동네는 재개발이 되었다. 우리는 이사를 가야했다. 그리고 아빠와 엄마는 단독 주택과 아파트의 갈림길에서 단독 주택을 다시 선택했다.
선택이라기보단 고집에 가까웠다. 아빠는 아파트에 살 수 없다고 스스로를 단정했다. 답답하다. 숨막힌다. 마당 한켠에서 자신이 기르는 풀을 보며 담배를 피우던 아빠는 자신의 안식처를 잃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아주 조금 떨어진 동네의 또 다른 단독 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새로운 곳에서도 우리들은 꾸역꾸역 자랐다.
몇 번을 싸우고 몇 번을 화해하고 몇 번을 울고 몇 번을 웃었는지 모를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전보다 작아진 마당에서도 감나무가 매년 감을 틔워냈다. 작아진 마당에서도 꿋꿋하게 삼겹살을 구워먹고, 후식으로 냉동고에 얼려둔 홍시를 꺼내와 나눠 먹으면서 아빠도, 엄마도, 나도, 동생도 자랐다.
어느 때는 대문을 열고 마당을 거쳐 현관에 다다르는 우리 집이 꼭 요새같았다. 남들과 닿지 않는 어느 한 구석에 숨어있는 우리만의 작은 성. 우리만의 작은 성에서 정말로 우리는 똘똘 뭉쳐서 고비를 넘기고 또 넘겼다. 그럴때마다 성벽은 더 단단해졌고, 그 안의 우리는 서로의 체온으로 성 안을 더 따뜻하게 채웠다.
그런 우리의 작은 성에서 내가 나오게 된 건 결혼 때문이었다. 결혼을 하게 되었고, 오늘날의 서울 사는 신혼 부부가 으레 그러하듯 단독 주택보단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알아보았다. 그리고 혼자만 이사해 나오게 되었다.
처음 신혼집에 들어서면서 엘레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의 생경한 기분이 떠오른다. 윗집의 은은한 발걸음 소리를 신경쓰고, 혹여나 아랫집에 피해를 줄까 층간 소음 방지 슬리퍼를 사서 신은 나날이 벌써 3년이 되어간다. 그런데도 물건을 주문하며 상세주소에 oo동 oo호를 적을 때는 아직 어색하다. 주소를 제대로 쓴 게 맞나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그리곤 더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묘하게 씁쓸한 미소를 짓곤 한다.
값이 오르지도 않고, 직접 손보고 고치며 살아야하고, 관리할 것도 많은 데다가, 생활 편의 시설도 적은 단독 주택.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이유들도 단독 주택 살이를 주저하거나 싫어한다. 그런 단독 주택을, 아직도 이렇게나 애정하고 그리워하면서 다시 돌아갈 날을 호시탐탐 노리는 건 어쩌면 그 공간에서 함께 자라온 아빠와 엄마와 동생 때문 아닐까? 그런 기억 때문일지라도, 아니 그런 기억 때문에라도 내겐 아파트보단 단독 주택이 더 좋다.
문득, 학창 시절에 되려 나는 남들과 좀 다르다며 뽐내는 느낌으로 발표하던 그 날이 떠오른다.
"아, 우리 집은 단독 주택입니다. 저희 가족만 사는 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