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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래하는 짱쌤 Mar 21. 2022

주차 프로젝트

학교 안에 주차를!!

학교의 담과 급식실 쪽 벽으로 차들이 질서 있게 주차되었다.

운전이 미숙한 사람도 있어 쉽지 않았지만 발전을 거듭하는 차량의 뒤쪽의 센서가 도움이 되었다.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주차가 모두 가능하고 출근 전쟁과 외부로 되돌려 나가지 않는 것에 직원들은 만족하고 있다. 가운데 통로를 확보하여 급식, 택배 등의 외부 차량의 출입이 가능하고 돌리는 차의 공간도 확보되어 불편함이 훨씬 줄었다. 이렇게 주차 질서를 확보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바로 하루 만에 짜잔~~? 땡!!. 

몇 번의 안내와 협조 끝에 이루어 낸 결과이다. 개인적인 습관을 바꾸고 공동 규칙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주차 프로젝트를 하며 알게 되었다. 서로 그 문제에 필요성에 합의했지만 이해하고 깨달은 것을 몸으로 실천하여 체득하기까지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교사 직업의 특성이 빠른 시간 내에 가능하게 하였을 것이다. 학교를 한 바퀴 돌며 주차된 모습에 감탄이 나온다. 그동안 협조해준 교직원들이 참으로 고맙다.      



 우리 학교 본관 뒤쪽에 있는 주차장은 교직원 수에 비해 턱없이 좁았다. 

부임 당시에는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차량 5부제를 운영하고 있었다. 많은 예외 차량들로 5부제의 효과도, 좁은 주차장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만차와 이중 주차로 다시 나가려면 쉽게 차를 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 나와서 빼주어야 하고 촉박한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교사들의 불만은 상당했다. 평택과 인접해 있는 학교 위치도 한몫을 담당했다. 대부분의 교직원들이 관외에서 출퇴근하고 시내가 길도 좁은 구도로여서 학교에 도착까지 교직원들의 분노를 유발하는 상황이었다. 학교에 도착하면 주차의 부담까지 있으니 삼중으로 스트레스받을만했다. 


 ‘우리 학교는 주차 문제만 해결되면 최고예요. 학교에 주차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주차 문제만 해결되면 우리 학교가 최고라는데 어느 교장이 마다하겠는가? 주차 문제는 꼭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코로나로 원격수업을 하는 동안에 운동장 한쪽에 주차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하였다. 어느 날 창밖으로 보니 코로나로 답답했던 학생들 몇 명이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노는 것을 보았다. 놀라서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학생들에게 ‘운동장에 주차가 되어 있어서 공을 차기는 어려우니 다른 놀이를 하면 안 되겠니?’ 했더니 알았다고 하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더니 이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에는 오후에 운동장에서 놀던 중학생들이 주차된 차량을 공으로 차서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고 수리비를 배상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 학생들은 우리 학교 졸업생으로 해결 과정이 너무 속이 상해 마음이 무거웠다. 


더구나 주차를 위해 운동장을 개방했더니 학교 안의 스포츠센터를 이용하는 주민들과 강사들이 편하고 개방된 운동장에 주차를 하였다. 잠시 동안 교직원들을 위한 배려가 주객이 전도되면서 운동장이 주차장이 되는 엉뚱한 상황이 되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겪으며 교장으로서 주차장은 지어주지 못할망정 무슨 방법을 빨리 찾아보아야 했다.       

 무엇보다도 교사들이 행복하고 즐거워야 아이들의 학교생활도 즐겁고 행복해진다. 교사들이 출근부터 주차로 스트레스받는다면 그 불편한 감정이 결국 누구에게 가겠는가? 화나고 기분 나쁜 감정은 결국 우리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재보다 10여 대 정도의 주차공간이 더 필요했다. 

학교 공사가 마무리되자 교사들의 협조를 얻어 학교 내 주차가 가능한 공간을 찾아보았다. 교사들의 추천한 곳 중 부장들과 그 공간을 주차장으로 활용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협의하고 3곳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교직원들에게 학교 주차에 관하여 합의된 규칙 세 가지를 안내하고 일주일간의 시범기간 동안 자율적으로 주차문화를 잘 세워보자고 부탁드렸다.       


 출근하는 순서대로 분리수거함의 안쪽부터 주차하고 퇴근 시에는 반대쪽부터  차 빼주기

 현재 주차선에 신경 쓰지 말고 뒤차와의 간격을 50센티로 좁히기 

 출장이나 조퇴 등 일찍 나가는 차는 따로 지정된 주차구역에 대기 



 

 시범기간 중 출근이 이른 편인 내가 주차장에 도착하면 이미 출근해 있는 차들이 있었다. 차를 빼기 쉽도록 규칙에서 벗어나 바깥쪽에 주차를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말해줄까? 하다가 '시범 기간 동안 잘 해결되겠지’ 하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며칠쯤 지나 담당 주무관이 주차가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하소연을 했다. 나가서 살펴보니 주무관이 말한 대로 몇 대의 차가 규칙을 위반하고 있었다. 바깥쪽부터 주차를 한 차량으로 인해 중간과 맨 안쪽 공간이 어정쩡하게 비어있었고 주차 간격도 좁히면 주차가 몇 대는 충분히 더 가능할 텐데 아쉬운 상황이었다. 우리 학교 소통의 문제일까? 교직원의 진심을 확인할 길도 없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주차상태를 보며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다. 자신이 가르치는 대로 사는 교사라 믿고 교직원들도 당연히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주차 질서가 바로 잡힐 줄 알았다. 


심리학자 허태균 교수는 우리나라의 법질서 준수 지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인데 이는 한국인의 심리 특성인 ‘한국인의 강한 주체성’에서 기인한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법을 준수하려는 마음보다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아니, 교사가? 목사가? 하고 직업 특성으로 규정하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자율적인 시범 기간이 끝난 뒤 드러난 문제점을 가지고 부장들과 협의를 하였다. 그리고 우리 학교 비전이 ’ 서로 배려하며 꿈을 키우는 행복한 학교‘ 아닌가? 개인적인 불편을 조금씩 감수해야 우리 모두가 행복한 학교생활이 되지 않겠는가?‘ 하고 2차 주차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간곡하게 다시 한번 직원들에게 협조를 부탁했다.     


 주차 규칙을 위반한 교직원에게는 연락을 했다. ‘죄송합니다. 잠깐 주차장으로 나오셔서 주차를 다시 부탁드립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다. 지적이라고 받아들였는지 어색하게 나와서 쌔앵~하고 찬바람이 불었다. 간격을 넓게 주차하신 분들께는 ‘ 내일 주차하실 때 뒷 차와의 간격을 좀 줄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이모티콘과 함께 메시지를 남겼다.  

교장이 직접 챙긴다는 입소문이 났는지 어느 정도 주차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 교사가 '주차하기가 너무 힘든데 다시 5부제를 하면 안 되겠냐.'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이구야... 이 일을 어째.” 깊은 한숨이 나왔다. 교직원들이 원하는 일이고 주차 프로젝트를 위해 협의와 안내도 했건만 조금 불편하다고 다시 투덜이가 되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자고 하다니...

갑자기 듣게 된 교사의 그 한마디로  마음이 힘들어지고 무기력해졌다. 그리고 한없이 우울해졌다.       


  사람은 자신의 그릇만큼 보이고 자기 그릇만큼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 깊이와 넓이, 즉 생각의 틀인 프레임을 확장시키고 성장을 위해 평생을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참을성에 한계가 느껴졌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다.


 해마다 직원들이 바뀌면 불평을 할 것이고 또 설명을 해야 한다. 주차가 좀 불편하네? 무슨 이유가 있나? 하고 생각이나 질문을 해야 함에도 편하게 주차한 사람들로 인해 반복되는 학교생활이 벌써부터  피곤하다.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교직원에 대한 신뢰가 불신으로 바뀌면서 ’그동안 노력한 나의 진심도 모르면서.‘로 확장되며 묵묵히 해왔던 일들에 갑자기 섭섭함이 몰려왔다. 선배 교장들이 경험으로 얻은 주옥같은 조언대로 ‘학교를 옮겨서 환경을 바꿔야 할까? 

      

며칠이 지났다.

주차장으로 들어섰는데 경력 교사 두 분이 서로의 주차를 돕고 있었다. 한 분이 내려서 뒷 차와의 간격을 최대한 붙여서 댈 수 있도록 연신 '오라이~ 오라이~'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들의 이런 모습으로 보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군가의 확인되지도 않은 이야기를 듣고 혼자 분노하고 섭섭한 생각으로 동기도 잃고 날개도 꺾였다. 서로의 주차를 도우며 협력하는 많은 교사들을 보지 못하고 어디에나 있는 2% 투덜이의 한마디에 스스로를 하얗게 불태웠다. 한순간에 무너진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묵묵히 할 일을 하며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지만 나의 열심을 알아주지 않아서 속상했구나.' 직원들의 말 한마디, 싸늘한 눈빛, 쌩~ 하고 지나가는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고 스스로 작아지고 소심해졌다. 여전히 연약하고 부족한 나를 보게 된다. 교장도 상처를 받는다.      


 교사 시절, 나의 부족했던 어리석음도 누군가 품어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오뚝이처럼 일어나 이 자리에 있지 않는가? 이제는 내가 우리 직원들을 품어주어야 하건만 이 작은 가슴을 어찌해야 하나?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잠 4:23)     


 두 교사로 인해 마음이 충전되고 다시 회복되었다. 

가끔 주차 질서를 위반하는 차들도 있지만 곧 우리 학교만의 예술적인 주차 질서가 회복되었다. 주차 프로젝트를 통하여 부족한 교장도 한 뼘 더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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