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는 평생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믿고 살았다. 못한다는 것은 의지가 약해서이고,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하지 않아서 그렇지 제대로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없는 것이 없다는 확신으로 세상이 쉬워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J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멀미하는 것처럼 속이 메스껍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처음에는 단순히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지 몇 달 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다리인 이순신대교가 개통되었다. J는 부모님을 모시고 전남 광양으로 향했다. 고가도로 쪽으로 올라가는데 다리에 힘이 빠졌다. 가속페달을 밟을 수가 없었다. 그제서야 J는 자신이 고소공포증에 걸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가 뒤로 밀리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운전석이 왼쪽에 있어서 바다 쪽으로는 눈을 돌리지 않고 앞만 보며 운전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안전하게 내려왔다.
J는 다리에서의 일을 애써 잊으려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더욱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다. 산을 무척 좋아했던 J였다. 산 정상을 목표로 아무 생각 없이 올라가기만 하면 되었고, 산 정상에서 발아래 보이는 풍경은 마치 세상을 정복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한창때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산에 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 동료 몇 명과 주말 등산에 나섰다. 집에서 멀지도 않고 산도 그리 높지 않은 곳이었다. 왕복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로 산책하기에 적당한 높이였다. 그런데 J는 산 정상을 앞에 두고 포기해야 했다. 산 정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산에서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이제 좋아하던 산도 마음대로 갈 수 없게 되었다.
그 이후로 J는 사방이 막힌 곳이 아니면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없게 되었다. 롯데타워처럼 사방이 막힌 엘리베이터가 있다면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투명한 유리벽의 엘리베이터는 탈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후, J는 부모님과 함께 소백산전망대에 갔다. 언제나처럼 운전은 작은 오빠가 맡았고, 비가 온 뒤의 날씨라서 하늘이 너무 맑았다. 이런 날 전망대에 오르면 멀리까지 볼 수 있다는 작은 오빠의 말에 기대를 품고 목적지로 향했다. 하지만 J는 전망대의 절반도 올라갈 수가 없었다. 설마 이 정도 높이도 올라갈 수 없을까 생각하며 의기양양하게 걸음을 옮겼지만, 중간에서 다시 내려와야 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하나둘, J의 의지와 상관없이 할 수 없는 일이 자꾸 생겨났다. 그런 일이 많아질수록 점점 소심해지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 욕심을 버리라고 하는데, 주변 상황이 버리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욕심을 줄이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고소공포증이지만 또 어떤 것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큰 욕심을 부리는 것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인지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조금 덜 움직이라는 충고 같기도 했다. 혹사한 몸을 이제 조금 덜 혹사하라고, 되지 않는 것도 순리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라는 말처럼 여겨졌다. 작은 오빠가 찍어온 전망대에서 본 풍경 사진을 보며 J는 이렇게 누군가가 대신 해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굳이 모든 것을 다 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다보면 다음에는 작은 오빠가 못하는 것을 J가 해 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조금씩 보완해 준다면 세상은 살 만하지 않을까 싶었다. 세상은 더불어 사는 것이라는 걸 또 한번 일깨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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