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반 일치지의 죽음> - 똘스또이
이 책은 언제부터 내 책장에 꽂혀있었을까? 한 때 톨스토이 작품을 읽어보려고 애쓴적이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 단편선>! 얇은 책부터 시작하자고 구입했던 책이다. 이때 샀나? 기억이 안난다. 그래, 이제 톨스토이 작품 하나 정도는 읽어줄 때도 됐지!(<안나카레리나>는 추석때 도전했다 실패했다)
그런데 작가 이름이 '똘스또이'!! 엥? 이게 뭐야? 순간 다른 작가인가 싶었다. 출판사가 창비네! 창비에서 그럴 리가 없는데! 영어식 발음과 러시아식 발음 차이겠구나!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다. 150페이지 정도의 얇은 책이라 주말에 읽어야지 했는데 주말에 마무리 못할까 걱정되었다.(토ㆍ일 가족여행이 잡혀있었다. 여행 후 읽을 계획이었는데)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사람 이름부터 적응이 안된다.
사람 이름을 한자한자, 또박또박 읽다보니 진도가 안나간다. 러시아 사람들은 이 이름을 어떻게 매일 부르지? '아냐스타샤'를 '아샤'처럼 애칭으로 부르는 건가? 여기서 잠깐! '아냐스타샤'의 애칭은 '안나'가 아니라고 한다. [더위키]에 재미있는 글이 있어서 첨부한다.
아나스타샤(애니메이션)이 유명하여 '아나스타샤'라는 한글표기가 널리 퍼졌으나, 실제 러시아어 발음은 아나스타시야(Анастасия)에 가깝다(я가 합쳐지지 않는다). 그리스어 원어는 외국어의 한글 표기법상으로는 '아나스타시아'가 맞고, 한국 천주교에서 성인명이나 세례명으로 표기할 때에도 '아나스타시아'라고 한다. 영어권에서의 발음은 '애너스테이지어'에 가깝다. 러시아식 애칭은 나스티아, 스타샤(Стася), 아샤(Ася), 나스타/나스탸(Наста/Настя) 등등 다양하다. 단 나타샤(Наташа)나 아냐(Аня)는 아나스타샤의 애칭이 아니다. 나타샤는 나탈리야(Наталья)의 애칭이며, 아냐는 안나(Анна), 아니시야(Анисия/Анисья), 안토니나(Антонина) 등의 애칭이다.
각설하고, 그래도 읽었다. 끝까지 읽었다. 타이머도 사용하고, 쏟아지는 잠을 거부하면서까지 읽었다. 역시 책을 끝까지 읽어야 진정한 재미를 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작품보다 작품 해설이 더 어려워 이해하는데 애를 먹었다는 사실을 미리 밝혀둔다.
작품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는 2002년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병원에서도 포기할 정도로 치매가 심하셨던 할머니! 당시는 치매 어른을 집에서 모시는 게 당연하다는 분위기였고, 요양원말만 꺼내도 세상 둘도 없는 불효자가 되던 때였다. 시도때도 없이 없어지는 할머니 때문에 아파트로 이사도 가고, 자해까지 하셔서 부엌 씽크대에 잠금장치를 달기도 했다. 한번은 조카가 컴퓨터하고 있는데 창문은 깨고 밖으로 나갈려고 해서 온 집안이 난리가 났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았지 싶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는동안 이반의 심적변화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모시던 당시 내 기분이 그대로 대입되었다.
주인공 이반은 자신이 중병에 걸린 것을 알고 처음에는 의심을 한다. 내가 그런 병에 걸릴리가 없다! 그 다음은 죽음을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내가 왜?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마지막! 임종의 순간이 오면서 죽음을 받아들이고 가족들에게 미안해한다.
게라심이 옆방으로 물러나기를 기다렸다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한없는 무력감과 끔찍한 고독이, 사람들과 하느님의 냉혹함이, 그리고 하느님의 부재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p100
할머니의 치매 진단을 받고 처음든 생각이 '그래도'였다. 남한테 헤코지 한번 하지 않고, 세상 사람 좋은 우리 부모님! 절에도 열심히 다니시는데 부처님이 도와주시겠지!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할머니의 경과를 지켜봤다. 하지만 병원에서조차 이렇게 심한 치매는 처음 봤다고 할 정도로 할머니의 증세가 심해지자 이젠 세상 모든 것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왜 내게?' '내(우리)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기억못하는 전생에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길래 우리집이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지?' 라는 생각에 감당할 수가 없었다. 전쟁같은 집이 너무 싫었다. 하지만 나마저 외면하면 부모님, 특히 엄마가 너무 힘들었다. 하루종일 할머니옆에 있어야 하는 엄마는 무슨 죄일까?
'어쩌면 내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난 정해진 대로 그대로 다 했는데 어떻게 잘못될 수가 있단 말인가?' - p103
그렇게 1년이 지나고 기력이 다하셨을까? 할머니는 거동을 못하셨다. 누워계신 할머니를 보면 차라리 당신 하고 싶은대로 하시는게 내 맘이 더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끔 눈을 뜨고 가족들을 보는 할머니를 보며 할머니는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했다. 긴 병에 효자없다고 이쯤에서 마무리 하시는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여겨졌다. 12월의 어느날!(2주전 할머니 제사였다) 자식 욕심 많은 할머니는 당신 자식들,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 정말 온 식구들이 다 모였을 때 눈을 감으셨다.
돌연 모든 것이 환해지며 지금까지 그를 괴롭히며 마음속에 갇여 있던 것이 일순간 밖으로, 두 방향으로, 열 방향으로, 온갖 방향으로 한꺼번에 쏟아져나왔다. 가족들이 모두 안쓰럽게 여겨지고 모두의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 이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신도 벗어나고 가족들도 다 벗어나게 해주어야 했다. -p118
돌아가시는 순간 할머니가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알지 못한다. 이반 일리치가 죽음을 직면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아마 돌아가신 할머니도 느끼셨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죽음의 순간, 자신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는 글을 어디서 본 적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한번씩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있다.(유언장을 써보라는말도 있지만 아직 그렇게 진지하게는 생각하지 못한다) 그 삶이 후회가 될지 만족이 될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이정도면 잘 살았다'라고 느낄 수 있다면 잘 산 것이 아닐까? 삶에 정답은 없다. 지금의 내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최선의 선택이라면 내가 후회하지 않으면 그건 잘 산 삶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계속 노력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