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 만에 하는 얘기
2003년 11월! 지금 직장에 처음 출근했다. 처음 들어간 사무실은 사방팔방 선배님들도 가득 차있었다.(당시 같은 사무실에 60명이 있었다. 지금은 두 1과, 2과로 나누어졌다) 대학교 선배도 있었고, 같은 공부했던 친구의 선배도 있었다(공부할 때 도움을 많이 받았다. 감사합니다) 업무를 받고 내 자리를 찾아갔다.
앞, 뒤, 좌, 우, 사람들을 소개시켜 준다.
"안녕하세요, ○○○입니다. 잘부탁합니다."
하루종일 인사만 했던 것 같다. 사수가 책 한권을 주면서 공부하라고 한다. 하긴 출근 첫날인데 무슨 일을 하겠나? 우선 분위기 파악부터! 오른쪽 옆에 앉은 사람이 내랑 갑장이다.
"많이 가르쳐줘요!"
첫 만남이라 다른 말은 못하고 이렇게 인삿말만 건넸다. 자리에 앉고 두리번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야!!!"
누가 내 등을 때린다. 엉? 돌아봤다! 내 또래 누군가 서있다. "야?" 나 여기 아는 사람 없는데?
"이봐라. 내 기억안나나? 내 ○○○다. 중학교때 친구! 그만큼 같이 다녔는데 어떻게 기억이 안나노??"
이런~ 중학교 동기생이다. 중학교때 집에서 제법 먼 여학교를 배정받았다. 30분 걸어가서 30분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야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다녔나 싶지만 그땐 다 그랬으니까 멀다말다 생각하지 않았다. 학교갈 때 버스안은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였다. 학생들의 시끄러운 수다소리(버스기사님께 조용히 하라고 혼나기도 많이 했다), 짝사랑(?)하는 남자애가 오늘 탔나 찾아보고, 선생님흉부터 친구흉까지 모든 얘기들이 버스안에서 이루어졌다.
버스 안에서 친구들과 수다떨고 웃었던 기억은 난다. 단지 그 친구가 누구였는지 얼굴이 기억나지 않을 뿐이지! 기억나는 척 할 수도 없다. 그 친구 이름도 그 친구가 어땠는지 그 친구와의 추억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으니까! 어쩔 수 없이 얘기했다.
"미안, 내가 기억이 하나도 안난다. 중학교때 단편적인 기억만 있고!"
"■■와 ●●는 기억나나? 내 걔들이랑 친하다"
"어! 걔들은 기억난다. 근데 왜 너가 기억이 안나지?"
"잘한다. 하나도 안 변했네!"
이게 중학교 졸업후 처음 본 친구와의 첫 대화였다. 그렇게 내 옆자리 갑장까지 우리는 동갑내기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나서 10년뒤 또 한명의 중학교 친구가 우리 직장으로 왔다. 역시나 나는 기억을 못했지만 내 친구가 기억을 했다. 나빼고 모두가 나를 기억하는 이상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4인방 모임'을 만들었다. 1년에 4번 정도는 꼭 얼굴을 보고 오키나와, 대만 여행도 같이 갔다. 사람 사는게 다 똑같은지 만날때면 하나씩 가슴에 품은 얘기를 했다. 이 얘기, 저 얘기, 같지만(시댁, 친정 얘기) 서로 다른 얘기(사람마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주고 다독여 줬다. 그렇게 같이 10년의 세월을 보냈다.
2024년 송연회를 했다. 특별한 건 없었다. 비싼데 가서 맛난거 먹고 2차로 맥주 한잔 더! 와인 반잔 먹었으니 술기운은 아닌데 내 얘기가 술술 나왔다. 이상했다. 얘기하면서도 오늘 나 왜 이러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오늘 왜 이렇게 내 얘기를 많이하지?
나는 객관적이다. 공감능력도 없다. 그래서 우리 집 얘기를 할때도 사실만 얘기했다.(절대 의도한건 아니었고 나도 그런지 몰랐다) 우리 집에 이런이런 일이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이렇게 했다. 20년넘게 본 친구들이니 우리집 얘기는 다 안다. 단지 내 마음이 어떤지 몰랐을 뿐!!
내 속마음을 얘기하자 친구들이 더 놀란다.
"얘, 자기 얘기하는 거 처음이다. 매일 부모님 얘기, 조카 얘기, 형제자매 얘기만 하더니!"
그랬다. 나는 내 얘기 빼고 다 얘기했다. 전에도 다른 친구가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너는 너 얘기 빼고 전부 얘기해! 왜 너 얘기를 안해?"
이땐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내 얘기를 안하긴, 우리 집에 숟가락 몇개있는지도 다 알겠구먼! 나의 착각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둔한만큼 내 감정에도 둔했다. 나 스스로가 내 감정과 얘기한 적이 없으니 내 감정을 표현할 줄도, 얘기할 줄도 몰랐다.
그랬던 내가 20년만에 내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라고?! 아니다.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내가 글을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성격에, 내 자존심에 다른 사람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운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고 정신차리면 유난떨었다고 혼자 자책할테니까! 그런 내가 친구들에게 내 얘기를 하는 건 글을 쓰면서 벌써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 생각의 정리도 하고 그때의 내 감정을 들여다 보기도 했다. 아마 그래서 이제 내 얘기를 말로 하는게 자연스러웠을 수도 있다.
그렇게 20년 만에 친구들에게 내 얘기를 했다. 지금 생각하니 한번도 끼어들지 않고 들어준 친구들이 너무 고맙다.(갑자기 가슴이 뭉클! 눈물이 날려고 한다) 글을 쓰는 지금 말한 것에 대한 후회도 없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 했다. 친구들이 얘기하는 만큼 내 얘기도 했어야 했다.
힘들 때 글을 쓰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다음에 그 글을 보는게 힘들어 좋은 일만 쓸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내가 느낀 그대로 글을 쓰다 보니 정말 마음의 정화가 되었다.'치유의 글쓰기'!! 이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구나! 다들 말못한 사연 하나씩은 가슴에 품고 있을테다. 그러면 글을 써라. 시나브로 마음이 정화되고 있음을 어느 날, 나처럼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