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죽음의 단상

- 타인의 죽음이 가져온 트라우마

by 조카사랑


독서모임에서 선정된 책 <이반 일리치의 죽음(똘스또이)>을 읽고 후기를 올렸었다.([북에세이]죽음을 기억하라 참고(2024.12.18.게시)) 죽음을 맞이하는 당사자의 심정이 옆에서 보살피는 사람의 심정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치매를 앓으신 할머니를 모셨던 당시의 내 심정은 이반과 흡사했었다.[


동시에 죽음에 관한 나의 여러가지 상념들도 동시에 떠올랐다.(이 글은 극히 주관적인 경험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20대 초반까지의 나는 내가 29살에 죽을 것으로 생각했다. 30살이라는 나이는 나에게 너무나 먼 나이였고, 제일 이쁜 20대에 사고나 지병으로 멋지게(?) 죽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마치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고등학교때 순정만화를 너무 많이 봤군) 하지만 그때 나이의 두배 가까이가 되도록 나는 여전히 건강하게 살아있다.


죽음은 나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다. 내가 직접 죽음을 목격한 것은 고등학교 연합고사를 며칠 앞둔 때였다. 나는 비평준화지역에 살았다. 당시는 연합고사를 위한 야간 자율학습이 당연했고(학원금지! 개인과외금지!)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시험일까지 조심 또 조심했던 기억이 난다.


연합고사를 며칠 앞둔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동네 입구 버스정류장에 내렸다. 시골이라 가로등은 없고 주변은 전부 논밭이었다. 다행히 동네 어른 몇분이 같이 내려서 짧은 다리로 따라가기위해 어른들 뒤에 바짝 붙어있었다.


"끼~ 익!!! 꽝!!"


사람 몸이 그렇게 날아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마치 종이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어두운 시골길에서 달리던 차가 우리를 늦게 발견했다. 급정거를 했지만 결국 사고가 났다. 다음날 사고난 아주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뉴스에도 나왔던 것 같다. 나는 어땠냐고? 나는 그때도 극T 였던 것 같다. 한며칠 손발이 떠리고 차소리가 무섭기도 했었겠지만(기억이 안난다) 그게 끝이었다. 사고 며칠뒤 시험을 쳤고 합격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대입시험 한달여를 남겨놓고 어머니가 강아지를 데리고 오셨다. 내가 어릴 때는 마당에 풀어놓고 개를 키운적도 있지만 개를 안키운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너무 기뻤다. 꼬물꼬물한 것이 얼마나 귀여운지 하루종일 데리고 놀아도 지겹지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강아지가 안보였다. 화장실에도 빠졌나(당시 우리집은 푸세식 화장실!) 집뒤 대나무숲도 뒤지고 했지만 찾지를 못했다. 멀리가면 안되는데....


하루나 이틀 뒤로 기억한다. 어머니가 강아지가 죽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아마 큰 개에 놀란 것 같다고! 너무나 작던, 너무나 귀엽던 강아지는 그렇게 며칠만에 떠나갔다. 그리고 그해 나는 대학에 합격했다.


2002년 7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연장이 가능했지만 지금 직장에선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그만두긴 했지만 막막한 것은 같았다. 뭘해야 될지 몰랐다. 나이도 많고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이 아니었고 집안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친한 동생의 권유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대학교 1학년때 공무원 준비를 하라는 부모님의 권유를 메몰차게 거절했던 터라 부모님께 눈치가 보이기도 했지만 여자 직업으로 공무원만한게 없다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다.


그해 12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삼세번이면 운명이라고 했던가! 중학교 연합고사, 대학교 입학시험, 그리고 공무원 시험까지! 큰 시험을 앞두고 내 앞에 항상 죽음이 나타났다. 그리고 세번째 죽음은 또다시 나에게 행운의 징표가 되었다.


이게 이유일지도 모른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만 시도했던 이유가! 공무원을 그만두려고 했을 때, 하기 싫다는 마음보다 내가 직장을 바꾸면, 내가 뭔가 다른 것을 한다면, 또 누군가의 죽음을 보는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큰 시험일수록 나에게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 그게 혹시나 내 가족일까봐 두려웠다.


'등가교환의 법칙' 이란게 있다. '무언가를 얻기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며 욕심부리지 말고 되는대로 살아라는 부모님 말씀이 너무나 섭하고 이해가 안되기는 해도 내 욕심껏 뭔가를 할 수 없었던 것도 어느 정도는 이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한 직장을 다녔다. 물론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는 없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나는 삶의 전환을 시도중이다. 직장을 그만두거나 큰 시험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내 삶의 방향을 좌우할 크나큰 도전을 하고 있다. 솔직히 겁도난다. 이번에도 누군가의 죽음을 보는 것이 아닌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삼세번을 겪었는데 또 겪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신도 양심이 있다면 이제 그만하겠지!


앞서 글로 적은 죽음들은 내가 관여한 부분은 없다. 단지 내가 그 죽음옆에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일들로 인해 나는 죽음과 관련한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다. 새로이 뭔가를 하는게 아직도 두렵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같은 자리에만 머무를 수는 없는 법! 내가 직장을 옮기는 것도 아닌데 뭐! 그러면서 기대해 본다. 이번에는, 제발 이번에는 죽음과 관련된 트라우마를 깰 수 있기를 말이다.


# 멋지게 나이들기를 꿈꾸며, 오늘의 경험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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