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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에세이] J의 일상 - 첫 눈이 불러온 기억

by 조카사랑

눈이 온다. 직장 동료들이 전부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 올해 첫 눈이다. 새벽부터 ‘안전안내문자’에 잠을 설쳤다. 그렇게도 울어대더니 결국 눈이 온다. J는 ‘안전안내문자’가 보험과 같다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별로 필요 없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에 자신을 구해 줄 수도 있으니까, 겨울이라 특히 더 많은 거겠지 생각했다.


어릴 때는 눈이 참 많이 왔던 것 같은데 요즘엔 1년에 한 번 제대로 된 눈을 보기 어렵다. 눈밭을 뛰어다니며 ‘나~ 잡아봐라~’해 보는게 소원이었는데! 하지만 지금의 직장을 다니면서 포기했다. 눈만 오면 비상에 걸릴까 계속 핸드폰만 보고 있다. 공무원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억울하기도 했다. 퇴직하기 전에는 눈이 오면 항상 비상에 걸릴까 걱정하겠지.


J에게는 눈이 오면 항상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몇 년 전, 눈이 내렸을 때다. 발이 잠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늘진 곳이나 비탈진 곳은 눈이 얼어 사고가 날 수 있어 빨리 눈을 치워야 했다.


비상이 걸렸을 때 J가 하는 일은 살얼음 같은 눈을 치우는 것이다. 삽과 빗자루를 들고 비탈진 곳의 눈을 치우고 있을 때, 2층 창문에서 건물주가 고개를 내밀었다.


“대충대충 하지 말고 제대로 치워줘요.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안되니까!”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자기집 앞은 자기가 치워야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일까지 우리가 하는 건 세금 낭비지. 자기 집 앞 눈을 안치우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곳도 있다는데, J가 사는 곳도 도입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건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내가 이럴려고 그렇게 공부했나 회의감도 들었다.


그래도 최근 새로운 기억이 추가되었다. 이제는 내리는 눈을 보면 크리스마스 때 갔던 서울여행이 생각난다. 재작년부터 크리스마스에 서울 여행을 갔다. J가 자신에게 주는 작은 사치 중 하나다. 작년 크리스마스 날 아침, 창밖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온 세상이 정말 하얗게 변해있었다.


J가 사는 곳도 눈이 왔을까? 날씨를 검색했다. 햇님이 웃고 있었다. 서울의 공무원들은 비상이 걸렸을래나?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서울 공무원들에게 의문의 1승을 했다. J는 겉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제대로 된 눈을 밟아보고 싶었다. 동네 똥개들만 눈이 와서 좋은 건 아니었다.


눈 사람을 만들어 볼까? 벌써 누군가 나와서 만들어 놓았다. 부지런하기도 하지! 눈오리 집게라도 샀어야 했는데! 집에 가면 다시 사용할 일은 없겠지만, 괜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눈이 많이 와도 할 수 있는 건 눈사람을 만들거나, 눈싸움을 하거나 둘 중 하나다. 스키라도 배울 걸! 추운 날씨 싫어하면서 스키는 무슨! 이렇게라도 핑계를 만들면 그나마 맘은 편하다. 못한 게 아니라 안 한게 되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눈이 그쳤다. 내리면 바로 없어졌지만, 그래도 첫눈으로 기록될 터이다. 내일부터 날씨가 풀린다고 하니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 눈이 되겠지! 금방 그친 눈을 아쉬워하며, J는 사무실 책상으로 돌아가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 하고잽이 생각, 세상 최고 하고잽이(!!) 일상 : 네이버 블로그이] J의 일상 - 끝

나지 않는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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