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1층에서 3층까지 1800석 가까이가 매진이었는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수 있는지 J의 가슴은 벅차올랐다. 배우와 관객이 그야말로 하나로 된 순간! 공연이 끝나고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박수가 끝날때까지 오케스트라조차 연주를 멈췄다. 30년 가까이 뮤지컬을 봐왔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건 마약같아!“
J는 생각했다. 영화를 안본지 10년이 넘었다. 폐쇄된 공간에서 공연이 이루어지는 것은 영화나 뮤지컬이나 똑같지만 스크린만 보는 영화와는 달리 뮤지컬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배우들의 목소리가 갈라지거나 에드립 때문에 공연이 썰렁해지거나 등등) 항상 조마조마했다. 극을 무사히 마쳤을 때 뮤지컬 배우들도 안도감과 성취감에 가슴이 벅차겠지만, 관객인 J 역시 그들과 같은 안도감과 성취감을 느꼈다.
이번에 본 뮤지컬은 홍광호배우 주연의《지킬앤하이드》였다. 역시 홍광호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이번 공연은 까고 싶어도 깔 곳이 없을 만큼 완벽한 공연이었다.
J는 뮤지컬 덕후였다. 지금까지 본 뮤지컬만 50편 넘었다. 지방 공연이 많지 않은 뮤지컬 공연의 특성상 지방에서 서울까지 기차값, 식대, 20만원 가까이 하는 뮤지컬 티켓값까지 합하면 통장이 비는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가끔 숙박도 하는 구나!) 지난 2년동안 서울에 간 횟수만 해도 15번이 넘었다. 거의 두달에 한번꼴로 서울에 올라갔다.
하지만 J는 그래도 남는 장사라고 여겼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뮤지컬을 큰 조카랑 보러 갔었기 때문에 조카와의 유대감이 깊어져서 좋았다. 뮤지컬을 주제로 끝도 없이 계속 얘기를 했다. 어디 그뿐이랴! 극 T에다가 극 I인 J는 관극을 통해 공감 능력도 향상되었다.
J는 배우들의 연기며 노래를 듣는 것도 좋았지만, 무대 장치를 보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뮤지컬마다, 제작 사마다, 표현하는 무대 장치가 달랐다. 《오페라의 유령》이나《데스노트》,《스위니토드》처럼 화려한 무대 장치가 올라오기도 하고, 《드라큘라》처럼 무대 조명을 멋들어지게 활용하기도 했다.《하데스타운》이나 《프랑켄슈타인》처럼 무대 바닥을 회전하기도 했다. 각각의 무대가 너무 멋져서 우위를 가릴 수가 없었다.
단지 걱정되는 것은 요즘 뮤지컬 티켓 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는 것이다. 아마 조만간 티켓 한 장의 가격이 20만원을 넘어설 것이다. 그렇게 되면 관람 횟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 결국 뮤지컬은 여유가 있는 일부 사람들의 문화로 자리잡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J는 제작사의 경영 악화를 탈피하기 위해 무조건 티켓값을 올리는 것보다 배우들의 티켓 파워에 따라 티켓값을 차별화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결국 혼자만의 생각일 뿐 누가 귀기울여 들어줄 얘기는 아니었다. 결국 ’가장 쌀 때 가장 많이 보는 수밖에 없겠다’ 생각하며 J는 예매 사이트에서 다음 관람 작품을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