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온 세상이 시비를 거는 날!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날! J는 오늘이 자신에게 그런 날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없이 말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J가 한 일이 아닌 일로 깨지고, 결국 모든 책임은 J에게로 돌아왔다. 이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상사에게 혼나면서 J는 생각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상사에게 이렇게 혼난 게 언제였지? 그동안 직장 생활 편하게 했구나!"
예전 다른 직원이 상사에게 깨지고 있을 때, J는 남의 일이라 여겼다. 직원이 일을 제대로 못했거나, 상사의 기분이 별로인 날 잘못 걸린 거라고 생각했다. J에게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상사들은 갑질한다고 생각했다. 알아서 일 잘하고 있는데, 상사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직원들을 닥달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본인이 막상 다른 사람의 부주의로 깨지고 보니, 그때 자신이 왜 그랬을까 후회가 되었다. 좀 더 눈치껏 일할 걸! 아마 그때 자신때문에 다른 누군가 혼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벌을 받는가 보다! 지금 상황이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생각되었다.
J는 본인이 혼난 건 상관이 없었다. 일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고, 지금 자리에서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책임져야 되는 경우도 생길테니까! 본인을 혼낸 상사도 그렇기 때문에 화를 낸 것이겠지! 하지만 싸늘한 사무실 분위기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혼난 상황에서 혼자 웃고 떠들 수도 없었고, 괜찮다고 말하는 것도 어색했다. 상사의 눈치를 보는지, J의 눈치를 보는지 직원들 조차 말이 없다.
앙숙인 동기가 점심 사준다고 사내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항상 J에게 밥사달라던 친구였다.
"오늘 내가 제대로 깨지긴 했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깨져도 주말 동안 잊고 지낼 수 있다. 물론 월요일 출근하면 2차전이 시작되겠지만, 숨돌릴 틈이라도 있는 것이 어디랴! 주말엔 절대 출근하지 말아야지!
결국 J는 밤 11시가 다 되어 퇴근했다. 오늘안에 퇴근하는 걸 다행이라고 여겼다. 예전에는 밤 12시에 퇴근하고 새벽 4시에 출근하는 생활을 한 달 가까이 한 적도 있었다. 그땐 무조건 일을 마무리해야 된다는 생각에, 힘들다는 생각도 못했었다. 한 달을 그렇게 하고 일을 마무리했을 때, 500원짜리 동전만한 원형탈모가 생겼었다. 가끔 그때처럼 열정을 불살라보고 싶을 때도 있지만, 지금은 밤 9시만 넘어도 체력이 딸린다. 그때처럼 했다간 다음 날부터 2~3일을 앓아누워야 하니 지금처럼 할 일이 많을 땐 모험을 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다.
늦은 밤! 도로에 조차 차들이 없다. 그래! 어짜피 또 겪을 일이니 오늘 일은 잊어버리자. 지하 주차장으로 가는 J의 발걸음이 마음과는 다르게 점점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