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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에세이] J의 일상 - 시간이 만들어준 오랜 인연

by 조카사랑

파랗고 청명한 하늘이 내 마음까지 씻어주는 듯했다

“J씨, 오늘 공방 같이 갈래?”


토요일 아침! 혼자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데, 반가운 이에게서 카톡이 왔다. 같이 가죽공방을 다니는 A였다. J는 작년 갈비뼈 부상이후 8개월정도 공방을 못나가고 있다. 가죽 재단에 힘이 많이 들어 갈비뼈 골절인 상태로는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두세 달이면 갈 수 있을 줄 알고 쉬었는데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버렸다.


8개월 만에 가는 공방은 어딘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졌다. 5년 동안 다니던 공방인데 이렇게나 어색하다니, J가 사용하던 가죽이며, 도구며 모두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J는 언제든 돌아오라는 신호로 생각되어 가슴이 뭉클해졌다. 새로운 가방이 진열된 걸 보니, 바쁜 수업 일정 속에서도 꾸준히 샘플 작업을 해왔나 보다.


"하고 싶제?"


말해 무엇하랴? 너무 하고 싶었다. 공방에 오기 전까지는 이렇게까지 가죽공예를 그리워했는지 몰랐다. 그런데 자신이 작업하던 공간에 들어오자 J는 이 순간을 너무 그리워했음을 깨달았다. 퀘퀘한 가죽 냄새와 코가 쎄한 본드 냄새, 재봉틀와 피할기(가죽을 얇게 가공하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 그 모든 것이 그리웠었다.


J와 A와 15년 이상 알고 지냈다. J가 배드민턴을 배울 때, 혼자 클럽에 가입한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두 살 위인 A는 친언니처럼 J를 챙겨줬었다. 솔직히 A가 없었다면 J가 진즉 배드민턴을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코로나로 배드민턴을 못하게 되었을 때, J가 A에게 가죽공방을 다녀보라고 얘기했고, 자신이 다니던 공방에 보조교사로 소개를 해 줬었다. 그게 벌써 2년 전이었다.


A는 대학교 때 한국화를 전공했다. 언젠가 A의 집에 있는 졸업 작품을 보고, 어떻게 이렇게 큰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는지 A씨의 인내심과 노력에 감탄을 했었다. 저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자했는지 그림을 잘 모르는 J도 짐작이 갔다.


그림 배우기 열픙이 부는 요즘 전공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J가 A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림 다시 하고 싶지 않아요? 열심히 했는데 그냥 묵히기엔 아깝잖아요!”

"아니,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원없이 그렸기 때문에 더 이상 미련이 없다!"


J는 A의 말에 완전히 공감하는 자신이 더 신기했다. J가 배드민턴을 그만둘 때 주위 사람들이 같은 얘기를 했었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그만두기 아깝지 않냐고. 하지만 J는 전혀 아낍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이 무언가를 그렇게 열심히 했다는 게 뿌듯할 뿐이었다.


A와 얘기하면서 두 사람이 공유했던 15년간의 추억이 지나갔다. 그러면서 J는 자신이 매우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여겨졌다. 무심하고, 공감 능력도 없고, 개인주의인 자신 옆에 15년간을 한결같이 옆에 있어준 A가 너무 고마웠다. ‘자신이 A에게 섭섭하게 한 것은 없을까?’ '더 잘해주고 싶은데 뭘 해주면 좋을까?' 고민되었다. 결국 다음엔 비싼 밥 사주기로 하고 공방을 나왔다. 공방을 나오며 본 하늘에 눈이 부셨다. 파랗고 청명한 하늘이 J의 마음까지 닦아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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