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싱캐어」
굳이 문제의 본질을 붙잡으려 하지 않고, 마치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듯이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것, "아무렇지도 않은 듯 피하기, 알아채지 못하게 놓치기, 상처받지 않도록 말 돌리기, 그냥 받아넘기기와 같은 형식으로 삐걱거리는 순환을 빠져나가는 방편", 이것이 바로 패싱캐어다.(《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p229)
J는 책을 읽다 생각에 잠겼다. 책에 나온 이야기가 마치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경증 뇌졸증을 앓고 있는 J의 엄마는 말과 행동이 어눌하시다. 17년 전, 화장실에서 넘어진 이후 뇌의 혈관이 터졌다. 처음에는 뇌졸증인지도 몰랐다. 어느 순간부터 발음이 어눌하고, 음식을 먹을 때 자꾸 흘리기 시작하셨다. 그러기를 약 5년 정도 지난 어느 날, 아침 출근하기 전 부모님께 인사를 하려는 데 어머니의 눈동자가 보이자 않았다. 마치 뒷통수로 눈동자가 넘어간 것 같았다.
너무 놀라서 아빠께 "꼭 엄마 모시고 병원에 가세요!"라고 말한 뒤 출근했다. 출근하고 2시간 뒤, 큰 병원으로 가는 길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너무 놀라 바로 연차를 내고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진단은 뇌졸증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도대체 5년여동안 혈관이 안 터지고 버텼다는 게 신기하다."라고 말씀하셨다. 뇌졸증인지도 모르고 그동안 '발음 제대로 해라, 음식 흘리지 마라, 똑바로 걸어라.' 얼마나 구박을 했는지! '자식키워봐야 소용없다'는 말이 정말이구나 싶었다. 엄마한테, 그리고 아빠한테도 너무 죄송했다.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지만, J에게는 집은 그저 하숙집일 뿐이었다. 매일 운동이며, 공예며, 취미활동을 한다고 밤 10시가 넘어야 집에 들어갔고, 아침에도 출근하기 바빴다. 그동안 엄마 혼자서 그 구박을 다 안고 계셨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래, 이제부터라도 잘하자!"
말은 쉬웠다. 엄마의 어눌한 말과 행동을 볼 때마다 J는 모든 게 자신 때문인 것 같았다. 조금 더 살폈다면 뇌졸증을 빨리 발견할 수 있었을텐데, 그러면 저렇게 한 웅큼이나 되는 약을 안 먹어도 되었을텐데! 저 정도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렇다고 안타까운 마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픈 엄마의 모습을 받아들이기는 것이 J는 너무 힘들었다.
J는 자신의 욕심임을 알고 있었다. 더 나빠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패싱캐어-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냉장고를 열어보니 엄마가 좋아하시는 참외가 있었다. 엄마가 참외를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얼마되지 않았다. 그 뒤로 가격은 비싸도 맛이 좋은 참외를 사서 엄마께 드렸다.
'그렇게 구박해 놓고는, 먹는 걸로 퉁치네! 앞으로는 좀 더 잘해 드려야겠다.'
항상 똑같은 다짐을 하면서 J는 엄마가 드실 참외를 깍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