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 인간이 된다면 뭘 할까?”
J는 어릴 적 이런 생각을 곧잘 했다.
‘남탕에 가볼까? 시험지를 미리 훔쳐볼까? 은행 금고를 슬쩍 열어볼까?’
상상은 자유였고, 그 자유 안에서 J는 마치 영화 속 투명 인간처럼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렇게 무적일 것 같은 절대자들이 영화속에서 불행한 결말을 맞이했다. 파멸, 혹은 고독. 왜일까? 그런 능력이 있다면 누구보다 행복할 것 같은데, 왜 그들은 결국 비극을 향해 걸어가는 걸까?
얼마 전, J는 할란 엘리슨의 책을 읽었다. 《돌로 만들어진 남자》. SF소설의 거장이라 불리는 작가의 작품답게, 한 장 한 장이 놀라울 정도로 참신하고 도발적이었다.
J는 원래 옛날 이야기, 귀신 이야기, 판타지, 추리를 좋아했다. 한때 '환상특급', 'X-파일', 'V' 같은 시리즈에 빠져 살았지만, 언제부턴가 SF를 멀리하고 있었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았다.
'외계인이나 우주선 같은 건 내 취향이 아니야.'
그렇게 생각해 왔고, 그렇게 멀어졌던 장르였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드려주었다. 잊고 있었던 미지의 세계를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SF가 이토록 인간 내면을 날카롭게 비출 수 있는 장르였던가?
주인공 루디는 남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조종도 가능하다. 심지어는 영혼을 다른 몸으로 이동시키며 불멸의 삶을 살아간다. 그 설정은 익숙한 듯 낯설고, 놀라운 듯 쓸쓸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떠올렸다. 수백 년을 살아가야 하는 도민준, 또는 드라마 <도깨비> 속의 주인공처럼 영원한 삶 속에 끝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외로움, 그리고 <반지의 제왕>의 아르웬처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지켜보는 존재의 고통.
J는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과연 불멸은 축복일까?
“나는 불멸의 삶을 꿈꾸지 않는다.”
J의 꿈은 불멸보다 바라는 것은 ‘멋지게 나이 드는 것'이다. 세상에 이름 석 자 남기지 못하더라도, 죽는 순간 ‘이 정도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좋았다. 가족 몇 명, 친구 몇 명. 그들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돌로 만들어진 남자》는 단순한 SF소설이 아니었다. J에게는 기억, 존재, 관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책이었다. 그리고 결국 J는 이 짧은 여행 끝에 다시 삶의 온기를 돌아보게 되었다. 불멸보다 나은 건, 지금 이 순간을 따뜻하게 살아내는 것. 그래서 결국 누군가의 마음에 사라지지 않을 온기로 남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