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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에세이] J의 일상-내비게이션 없는 삶을 시작하며

by 조카사랑

J의 차에서 내비게이션 거치대가 떨어졌다. 2013년 4월부터 줄곧 그 자리를 지켜온 물건이었다. 처음 이 차를 몰기 시작할 때부터 있던 녀석이니, 벌써 10년이 넘었다. T-map을 쓰기 시작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무용지물이 됐지만, 시야 한편을 채우던 익숙함이 사라질까 두려워 그냥 두었다.


새로 개통된 도로를 지날때면 내비게이션 속의 내 차는 ‘날아라, 슈퍼보드’였다. 새로 생긴 속도제한 카메라와 신호위반 카메라를 반영하지 못해 과태료가 날아오기도 했지만, 그래도 J에겐 항상 얼굴을 마주보던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리던 어느 날, 속도 방지턱을 넘는 순간 '툭' 소리와 함께, J의 차량 앞유리에서 그가 사라졌다. 자주 가는 카센터에 가면 쉽게 교체할 수 있지만, 그것도 귀찮아서 글로브박스 안에 넣어두었다.


‘이제 안 쓸까? 버릴까? 그래도 후방카메라 연결하면 아직 쓸 수는 있을 텐데…’


결정은 쉽게 나지 않았다. 그건 단순한 물건의 문제가 아니라, J의 운전 습관을 다시 세우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전에는 내비게이션이 일종의 안전 벨소리였다. 경고가 울리면 브레이크를 밟았고, 습관처럼 신호를 확인했다. 그 시스템에 길들여진 운전은, 조금만 방해를 받아도 날카로워졌다. 앞차가 정속 주행만 해도, 마음속 불만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렇게 운전할 거면 집에 있어!"

"일차선을 막지 말고 빠지라고!"


내비게이션 없는 일주일을 보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이 없으니, 조금씩 J 자신이 보였다. 낯설지만, 새로웠다. 속도를 줄이고, 표지판을 눈여겨보고, 카메라 위치도 기억하려 애썼다. 무엇보다 변화된 건, J의 ‘삶의 속도’였다. 예전의 70-60-70km로 달리던 속도가, 60-55-60km로 바뀌었다. 표지판 하나하나 유심히 보고, 속도방지턱, 어린이보호구역 같은 도로 위의 경고를 하나하나 의식하며 누가 정해준 ‘속도’가 아닌 자신만의 속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뭘 그렇게 바쁘게 살았을까?”


집에서 회사까지 10km, 보통 15분~20분 정도 걸렸다. 출근 시간을 5분이라도 줄이기 위해 정신없이 밟았던 엑셀과 브레이크, 그게 뭐라고, 몇 분 단축한 시간에 스스로 대견해하던 지난 날이, 이제는 쑥스러웠다.


J는 이제 안다. 내비게이션 하나 없이도 출근길 10km는 충분히 안전하게 달릴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깨달았다. 내비게이션이 있어야만 달릴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자신의 인생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고! 자신이 혼자 잘 해내고 있다고 착각했을 뿐임을!


지금의 J는, 더 천천히 가지만 훨씬 멀리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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