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엽편소설 - 다시, 영어책 앞에 선 J

by 조카사랑

J는 가끔 자신이 천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교과서의 페이지가 머릿속에서 슬라이드처럼 넘어가던 때에 그랬다. 고려시대 정치 파트를 공부하면, 교과서 페이지가 눈앞에 떠올랐고, 마치 투명한 손이 교과서를 넘기듯 머릿속에서 장면이 전환됐다. 그땐 몰랐다. 그게 ‘천재성’이 아니라 단순히 반복 학습의 결과였다는 걸.


교육학과 심리학을 공부하며 그 환상은 조금씩 깨져갔다. 사진처럼 보였던 건 교재를 반복해서 본 결과였고, 기억의 마술이 아니라 노력의 흔적이었다. 슬라이드 효과! J는 그 현상에 자신만의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그 슬라이드는 어느 순간 멈췄다. 특히 영어 앞에 서면, 그녀의 머릿속은 뿌연 안개로 뒤덮였다. 매년 목표를 세웠고, 매번 다른 방식으로 도전했다. 토플 문제집, 챕터북, 원서, 애니메이션, 유튜브. 조카에게 과외를 받기도 했고, 이러한 반복에 지쳐 가끔은 스페인어나 독일어로 도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는 건 늘 ‘영어’였다. 기본이라는 이름으로, 손에 익지 않는 언어가 발목을 붙잡았다.


지난 주말, 책장을 정리하던 J는 영어 관련 책들만 따로 쌓아놓았다. 언젠가 읽고 책장에 전시해 두었던, 혹은 읽다만 책들이 다시 그녀 앞에 쌓였다.《영포자 문과장은 어떻게 영어 달인이 됐을까》,《영어는 못 하지만 영어 원서는 읽고 싶어》,《1분 영어 말하기》…


“근데... 얘네는 어떻게 잘하게 된 거지?”

책을 넘기다 문득 손이 멈췄다. ‘이미지 연상’! 익숙한 단어였다. 자신이 고등학교 시절 했던 바로 그 방식.


“내가 몰라서 못한 게 아니네.”


J는 피식 웃었다. 그저 예전처럼 충분히 반복하지 않았던 것뿐. 챕터북 한두 권 읽고, 실력이 늘기를 기대했던 나태함.


눈을 감고 상상했다. 어딘가 외국의 햇살 좋은 리조트, 그늘진 파라솔 아래에서 원서를 읽는 자신을.

그 순간, 다시 슬라이드가 넘어갔다. 잊고 있던 페이지가, 오래전의 습관이, 느릿하게 돌아왔다.


‘이건, 다시 시작하라는 이야기야.’


J는 책장에서 《DRAGON MASTERS #1》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 이번에는 J의 일상 대신 제가 쓰고 싶었던 엽편소설을 올려봤습니다. 지금은 챗GPT의 도움을 받았지만 조금 더 노력해서 멋진 소설을 써볼게요! 감사합니다.


# 하고잽이 생각, 세상 최고 하고잽이(!!) 일상 : 네이버 블로그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상에세이] J의 일상-책장을 비우며, 마음을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