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이 이미 포화 상태였다. 이중 삼중으로 꽂힌 책들, 바닥이 주저앉을 정도의 무게, 그리고 침대 옆 협탁과 책상 위에까지 쌓여 있는 책들. J는 책을 버리는 일보다 사는 일이 많았고, 절판된 책이나 소중히 여기는 책도 많아 정리를 쉽게 시작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속을 찌르는 한 문장이 머릿속에 울렸다.
“책 하나도 정리 못하는데 무슨 삶을 정리하겠냐.”
그 말에 이끌려, 결국 J는 책장 정리를 시작했다. 언젠가 읽어야지 하며 미뤄둔 책들을 꺼내들자, 삶이 과거에 발이 묶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말이 이제야 마음 깊이 와닿았다.
J는 먼저 선물받은 책부터 추렸다.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책들, 선물한 사람의 취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책들. 하지만 끝까지 읽지 못한 책도 많았다. 선물한 이의 마음이 담긴 책이지만, 지금은 그들도 자신이 준 책을 기억하지 못할 터였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다음은 영어 공부에 한창 열을 올리던 시절, 조카에게 과외까지 받으며 영어의 장벽을 넘고 싶었지만, 결국 여전히 영어데 대한 넘기 힘든 벽만 마음의 짐만 남겨둔채 책장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다음은 자기계발서와 공부법 책들도 정리 대상이었다. 50을 넘기고 나니, 자기계발서가 예전만큼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해서 못하는 거라는 깨달음만이 남았다.
책을 추려내고 나니 30권 정도가 됐다. 수북한 책더미가 여전히 남아 있기에 눈에 띄게 정리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마음만큼은 한결 가벼워졌다.
“책 속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실천했더라면, 지금쯤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까?”
생각보다 읽은 책들도 많다는 사실에 묘한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책에 있는 내용을 좀 더 실천해 볼걸 하는 아쉬움은 가시질 않았다.
마지막으로 J는 정리 대상 책들을 도서관에 검색해봤다. 도서관에 없는 책은 다시 책장에 꽂았다. 다시는 펼치지 않을 책일지라도, 그 안의 문장이 필요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책 내용을 인용해 글을 썼다가 앞뒤 맥락이 어긋나 당황했던 경험이 몇 번 있었기에, 글을 발행하기전 재확인은 마지막 방어선 같은 절차였다.
정리를 마치고 나니, 마음이 정리되기를 기대했지만 아련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오래된 친구와 작별하는 기분. 친하게 지내지 못한 미안함. 그래서 J는 정리한 책들을 박스에 담으며 속으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다음에 오는 친구들은 더 잘 대해줄게.”
이제, 책장이 비워진 자리엔 새로운 삶을 담을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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