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는 게으르다. 적어도, 본인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
밥을 먹고 나면 바로 설거지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설거지를 설거지통에 담아둔 채 한참을 뒹굴다 겨우 일어나는 사람도 있다. J는 단연코 후자였다.
"그래도 다음 끼니 전에 하긴 해요!“
놀라운 건, 그런 게으름과는 상반되게 J는 자타공인 ‘하고잽이’라는 사실이다. 그림을 그리고, 가죽 공방을 다니고, 방통대 공부도 하며, 외국어를 배우고, 운동도 한다. 퇴근후 집에가면 매일 업로드 되는 웹소설을 읽고, 넷플릭스까지 보면서 뒹굴기도 한다. 20년이 넘은 직장생활도 여전히 재미있다.
“나는 회사가 재밌도록 내가 만들어요.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이 지옥이면 안 되잖아요?”
재미없는 일을 재미있게 만드는 법, 지루한 순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법. 그것이 J가 게으름을 이기는 방식이다.
유튜브 채널 [이연]의 ‘게으름을 이겨내는 방법’ 영상은 J의 성향에 또 다른 명확함을 더해주었다. 게으름이란 에너지를 아끼기 위한 인간의 생존 전략일 수 있다는 이야기. J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도 그런 거였어.“
J의 생존 기술은 분명하다. 에너지를 최소로 쓰되, 좋아하는 일에는 확실히 몰입한다. 일이 재미없어지면, 일을 재미있게 바꿀 방법을 스스로 찾아낸다. 뭔가 새로운 게 없나 늘 궁리하고, 자기 손으로 일터의 분위기를 바꾼다. 일이 바뀔 때마다 스스로 기분 전환이 되니, 지루할 틈이 없다.
무기력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시기도 있었다. 2022년 1월, 번아웃이 찾아왔다. J는 곧장 병원으로 향했고, 5시간이 넘는 심리검사 끝에 의사에게서 들은 말은 이랬다.
“평소 텐션이 78이라면 지금 기분이 56 정도인 거예요. 환자님의 평소 텐션이 일반적인 사람의 평균보다 높아요. 약도 필요 없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만 줄이면 됩니다.”
그 말을 들은 J는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나는 나구나.“
한때 J는 자기 기질을 고쳐보려 했다. 하나만 깊이 파고드는 사람이 되어보려던 시도였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그렇게 살면 지치고, 금세 지겨워진다는 걸. 그래서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열심히 못하면 꾸준히 하자.”
지금의 J는 열심히는 못하지만 꾸준히 한다. 꾸준히 하니 조금씩 실력이 늘어 똥손에서 곰손이 되었다. 덕분에 꾸준함의 힘을 믿게 되었고, 그렇게 자율적인 삶을 만들 수 있었다. J는 아직도 매일, 여전히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삶을 유지하는 데, 완벽함보다는 지속 가능성이 더 중요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