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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에세이] J의 일상-절대적인 사랑의 힘

by 조카사랑

조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어느 날이었다. 그 시절, J는 큰오빠네 가족, 부모님과 함께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었다. 모두 직장 생활로 바빴던 터라,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온전히 어머니의 몫이었다. 엄마의 가족 사랑은 단호하고 뜨거웠다. 누군가 우리 가족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바로 “내 새끼한테 왜 그랬노?”부터 시작되는 전투 태세가 발동되곤 했다.

그날도 식탁에 둘러앉아 할머니가 차려주신 간식을 먹고 있던 조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툭 던지듯 이야기했다.


“친구랑 싸웠는데 선생님이 나만 혼냈어. 너무 억울했어.”


엄마는 숟가락을 놓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누고? 누가 내 손자한테 그랬노? 내가 가만두나 봐라!”


조카는 뿌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J에게 물었다.


“고모는 어떻게 생각해?”


순간 J는 조금 다른 말을 건넸다.


“글쎄… 선생님이 그렇게 하신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먼저 그걸 물어봐야 할 것 같아.”


그러자 조카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럼 고모는 나를 덜 사랑하는 거야?"


그 말에 J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을 잘못한 걸까? 아니면, 방향이 틀렸던 걸까? 하지만 그 순간, J는 조카가 엄마의 말 한마디에 얼마나 위로받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감정보다 이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던 자신의 오래된 신념에 균열이 생겼다.


그동안 J는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는 기준을 지켜야 한다고 믿어왔다. 자식을 낳게 되면 감정이 아니라 이성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조카의 그 말은, J를 멈춰 세웠다. 사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정답이 아니라, “너 편이야”라는 감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아마 선생님이 따로 연락하지 않았던 이유와 조카가 간식을 먹다가 툭 던지듯 말한 것은 그리 큰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정말 조카의 속마음을 알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손자한테 감히?”라는 말 한마디가 조카의 억울했던 마음을 쓰다듬어준 것은 분명했다.


아이를 키우는 데 정답은 없다. 하지만 ‘완전히 나를 믿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경험은 아이에게 강력한 방패가 되어준다. 그건 J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청소년 시절, 자신이 크게 일탈없이 생활할 수 있었던 이유도 부모님이 상처받을까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 조카는 일본에서 일하고 있다. 사랑받으며 자란 티가 나는 얼굴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조카는 살아가면서 삶의 굴곡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J는 믿는다. 그날, 할머니가 건넨 그 한마디. 그것이 조카의 마음에 오래 남아 앞으로도 오래오래, 따뜻한 울림이 되어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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