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외식이었다. 젊은 날 자주 찾던 경양식 느낌의 식당에서, 두툼한 함박스테이크를 먹을 생각만으로도 점심 전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조용한 식당안에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스피커폰 통화음이 울려 퍼졌다. J 바로 뒤에 앉은 한 남자의 휴대폰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죄송합니다.”
“그래서 어쩔 거냐고?”
상대방은 연신 “죄송합니다”를 반복했지만, 그의 분노는 식지 않았다. J는 순간, ‘이거 좀 위험한데’ 싶었지만, 그는 전화를 들고 식당 밖으로 나가서 싸움의 결말을 알 수는 없었다.
잠시 후 자리로 돌아온 그는 함께 온 여성에게 계속해서 불만을 쏟아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남자의 움직임은 점점 거칠어졌고, 결국 식탁 위의 컵을 치고 말았다. 컵 속 물이 식탁 위로 쏟아졌고., 같이 온 여성이 휴지를 꺼내 닦았지만 남자의 표정은 더욱 험악해질 뿐이었다.
그러던 찰나, 또 일이 터졌다.
그들의 음식이 다른 테이블로 잘못 나간 것이다. 이미 30분을 기다렸다는 그들은 식당 사장에게 날 선 말투로 항의했고, 결국 음식을 받지 않은 채 환불을 요청하고 자리를 떠났다.
불과 30분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뭐 하나 되는 일이 없는 날!’
예전 J도 그런 날이 있었다. 아침 출근길 신호마다 다 걸리는 날도 있었고, 정말 쉬운 업무도 오타 때문에 엄청 깨지기도 했다. 몇 번을 확인했는데도 어이없는 오타 하나로 크게 혼났던 날, 스스로에게 실망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의 모습을 보며 그때의 자신이 떠오르며 J는 괜히 그 남자가 안스러웠다.
저 사람의 오늘 하루는 어떨까? ‘그러려니’ 하며 털고 남은 하루를 보낼까? 아니면 ‘재수 없다’고 ‘뭐든 되는 일이 없는 하루’라고 짜증을 내며 하루를 보낼까?’
그가 어떻게 하루를 보낼지 상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각자의 몫이었다. 만약 그가 J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려니’하며 마음을 비운다면 남은 하루를 좀 더 편하게 보낼 수 있을터였다.
결국 모든 순간은 지나간다. 남는 건, 그때의 감정뿐이다. 정말 힘들고 기분이 엉망인 날도, 기분이 엉망인 것만 기억날 뿐 왜 그렇게 기분이 엉망이었는지 기억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식당을 나서는 남녀의 뒷모습을 보며, J는 속으로 말했다.
“모든 순간은 지나간다. 오늘은 꼬였지만, 내일은 부디 부드럽게 풀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