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림 수업이 있는 날이다. 흰 도화지를 받아들고 선을 긋기 전, J는 늘 같은 마음을 느꼈다.
‘오늘은… 수업 시간 안에 완성할 수 있을까?’
오늘 받은 도안은 평소보다 훨씬 복잡해 보였다. 펜을 쥔 손이 가볍게 떨렸다. 첫 선을 삐끗하면 전체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시작은, 역시 쉽지 않았다. 수성펜으로 작업할 때는 늘 조심 또 조심. 물 한 잔도 그림 근처에는 두지 않는다. 누군가는 일부러 커피를 흘려 번짐을 표현하기도 한다지만, J는 그런 실험을 하지 않는다. 깔끔하고, 예측 가능한 선을 선호하는 J의 성격은 그림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다행히 1시간 반 뒤, J는 그림을 완성했다. 불안과 망설임으로 뒤덮여 있던 마음은, 그림과 함께 조금씩 정리되고 치유되어 갔다.
“늘 그래. 시작이 어려운 거지. 막상 시작하면 생각보다 괜찮은데 말이야.”
작업 후 사진을 찍어 보면, 부족한 부분이 더 잘 보인다.
“이 부분은 덧칠하지 말 걸.”
“여긴 좀 더 부드럽게 마무리했어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아쉬움이 남지만, 이제 J는 안다. 다음에는 실수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국은 비슷한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을. 달라진 게 있다면, 수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조금 짧아졌다는 것 정도.
그녀는 지난 7월을 떠올렸다. 20년의 직장 경력도 새 업무 앞에서는 무력했다. 매일이 초행길 같았고, 전임자에게 계속 묻기도 미안해질 무렵,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그럴수록 J는 그림을 떠올렸다.
“이렇게 조금씩 해내다 보면 결국 나아지는 순간이 오는 거야.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리자.”
오늘, J는 다시 그림을 완성했고, 아주 작은 자신감을 되찾았다. 자기 자신에게 상을 주기로 했다.
“오늘 야식은 치킨이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이 기쁨도 언젠간 무너질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지금의 이 충만한 감정만큼은, 온전히 누리고 싶다.
시간의 힘은 정말 무서웠다. 하지만 그 무서운 시간이, 결국은 나를 이만큼 데려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