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린이날엔 이탈리안 브레인롯?

푸르른 동요가 그리운 날에

by 햇살 드는 방

"트랄랄렐로 트랄랄라

봄바르디노 크로코딜로

퉁퉁퉁퉁.... 사후르"


어린이가 있는 집이라면 아마도 한 번쯤 들어봤을 밈이다. 독서교실에 오는 초1부터 중학생들까지 하루에 한 팀 이상은 꼭 흥얼거리며 들어오는 바로 그 노래(?). 대체 무슨 노래인지 물으니 '요즘 유행하는 밈'이라고 만 6세 어린이가 알려준다. 그런 게 있었냐며 관심을 보이자 어린이는 신이 났다. 밈에 나오는 캐릭터 이름을 다 외웠다고, 오늘 학교에서 ‘트랄랄렐로 트랄랄라’를 그렸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한 번 그려볼까요?"

아이가 그린 그림은 특이했다. 얼굴이 뾰족한 물고기 몸통에 네 개의 다리가 달려있다. 다리 아래로 동그라미를 그려 넣더니 그 안에 낚싯바늘 닮은 것을 열심히 그린다.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상어'란다. 증학생은 한술 더 떠 친히 숏츠를 찾아 보여준다. 숏츠에는 나이키 상어 말고도 악어 폭격기, 야구 방망이를 든 통나무, 샌들을 신은 선인장 코끼리 등 기묘한 모습의 캐릭터들이 알 수 없는 말을 떠들며 빠르게 등장했다 사라졌다. 얼핏 이탈리아어처럼 들리는 말의 뜻을 묻자 별 뜻은 없고 그냥 캐릭터 이름이라고 한다. 정말 별 뜻이 없는 말일까? 제대로 된 이탈리아어가 맞을까? 나는 궁금증과 함께 꼰대력이 상승해 정체 모를 '요즘 유행하는 밈'의 정체를 파헤쳐보고 싶어졌다.


‘트랄랄렐로 트랄랄라’, ‘봄바르디로 크로코딜로’ 같은 문구들이 포함된 밈은 요즘 틱톡이나 유튜브 쇼츠 등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일종의 ‘브레인롯(Brainrot)’ 밈 시리즈다. '뇌 부패(Brain rot)'라는 무시무시한 이름과 달리 이 밈 시리즈는 시청자에게 혼란과 웃음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단다. 의도적으로 이상하고 기괴하게 합성한 이미지와 이해하기 어려운, 하지만 리듬감 있는 단어와 문장을 사용해서 말이다.


이런 스타일의 밈을 '이탈리안 브레인롯(Italian Brainrot)'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밈 속에 사용되는 단어나 문장은 실제로 제대로 된 이탈리아어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봄바르디노 크로코딜로(Bombardino Croccodillo)'는 폭격기와 악어를 합성한 캐릭터인데 각각의 단어를 이탈리아어 사전에 검색해 보니 엉뚱한 결과가 나왔다. '봄바르디노'는 금속관악기를 뜻하는 남성명사였고 크로커다일을 연상시켜 당연히 악어의 이탈리아어 일거라 생각했던 '크로코딜로'는 사전에 나오지 않는 엉터리 말이었다. 이탈리아어로 악어는 크로코딜로가 아닌 코코딜로(coccodrillo)였다.


욕설이 포함되었다는 소문처럼 일부 밈에선 이탈리아어의 욕설이나 비속어가 포함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실제 욕이 아니고 마치 욕처럼 들리게 만든 엉터리 단어란다. 예를 들어 ‘Stronzolo pizzarino’ 같은 말은 실제 이탈리아어는 아니지만 이탈리아어 욕설(stronzo=바보, 멍청이)을 연상하게 만드는 말장난인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 밈을 보면 어떤 느낌일까? 나는 이탈리아어를 전혀 모르는 한국인인데도 왜 이런 엉터리 밈이 어린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이 불편할까?


라떼는 5월이 되면 늘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윤석중 작사, 윤극영 작곡의 <어린이날 노래>가 그것이다.

<어린이날 노래>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우리가 자라면 나라의 일꾼
손잡고 나가자 서로 정답게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국민학교 시절 5월이면 다 같이 큰 소리로 부르던 노래였는데 알고 보니 요즘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있긴 했다. 21세기 어린이들도 이 곡을 아는지 궁금해 독서교실 어린이들에게 들려줘보니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다. 신기한 것은 중2, 고2인 우리 집 청소년들은 “당연히 알지!”라며 <어린이의 노래>를 반가워했다. 요즘 어린이들은 이 곡을 모른다는 말에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몇 년 사이에 <어린이날 노래>는 사라진 걸까? 푸른 하늘, 벌판, 나라의 일꾼이 등장하는 이 오래된 노래는 더이상 어린이들의 마음에 다가가지 못하는 걸까? 이탈리안 브레인롯만큼 중독적이지도, 아이돌이 부르는 유행가처럼 화려하지도 않은 오래된 동요지만 적어도 5월 5일 어린이날 만큼은 예쁘고 푸르른 우리말 가사가 담긴 <어린이날 노래>가 많이 불렸으면 좋겠다. 날씨는 흐리지만 우리 어린이들 눈과 마음에는 맑고 아름다운 것들만 담겼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어른들 눈과 마음이 먼저 맑고 깨끗해져야 할 것이다. 조잡한 이미지를 합성하고, 무의미한 엉터리 단어를 반복하는 밈을 만들어내는 어른 보다, 어린이의 마음에 따뜻하고 깨끗한 생각과 감성을 심어줄 <어린이날 노래>를 들려주고 불러주는 어른이 더 많은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어린이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어린이날이 되면 좋겠다. 그랬으면 참 좋겠다.

하늘도, 나무도, 마음도 온통 푸르른 5월이 되길.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중간고사 학 씨! 너, 뭐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