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찾아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50만 원짜리 케이크가 등장했습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다 먹고 있던 귤을 뿜을 뻔했다.
'아니, 케이크가 50만 원이라니! 이게 말이 됨?'
뉴스가 사실이라면 아마도 그것은 금이라도 품은 케이크가 아닐까.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케이크 하나에 50만 원이란 말인가.
눈과 귀를 의심하게 만든 크리스마스 케이크의 정체는 신라호텔이 크리스마스 한정판으로 선보이는 '더 파이니스트 럭셔리'. 이름부터 부내가 진동하는 이 케이크의 실물을 영접한 어느 유튜버의 표현을 빌리자면 "케이크라기보다는 일종의 작품"이라고.
알고 보니 50만 원 케이크가 품은 것은 금이 아닌 트러플이었다. 그것도 평범한(?) 트러플이 아닌 겨울철에만 자연산으로 만날 수 있다는 루마니아산 화이트 트러플. 트러플은 흙 속의 다이아몬드라 불리는 최고급 식재료지만 그중에서도 화이트 트러플은 블랙 트러플보다 4배 이상 비싼 극히 희귀한 식재료라고 한다. ‘더 파이니스트 럭셔리’를 금값으로 만들어주는 요소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 작품의 숨겨진 킥은 ‘마시는 황금’이라 불리는 프랑스 최고급 와인, ‘샤또 디켐’. 최고급 디저트 와인이 케이크에 깊고 진한 풍미를 더해준다고.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화룡점정은 상단을 섬세하고 화려하게 장식한 화이트 초콜릿이 아닐까? 장인의 손길마저 느껴지는 이 아름다운 장식은 시각뿐만 아니라 미각도 충분히 만족시켜 주는 듯하다.
숙련된 파티시에가 어렵게 구한 귀한 식재료와 최고의 기술을 총동원해 무려 일주일에 걸쳐 만들어내는 케이크라고 하니, 50만 원이라는 금액에 납득이 가……진 않지만 일단은 받아들이도록 하자. 이 어마어마한 탄생 서사를 가진 고가의 케이크는 하루 딱 3개만 한정으로 만나볼 수 있다고 하니, 예약 경쟁은 거의 오픈런급 치열함을 자랑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픈런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있다. 성심당의 시그니처 메뉴이자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딸기시루’가 그 주인공이다. 올해의 ‘딸기시루’는 12월 23일부터 25일까지 딱 3일 간, 성심당 케이크부띠끄에서 예약 없이 현장 구매로만 판매가 된다고 한다.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리는 달콤한 딸기 더미의 은총을 누리기 위해 올해도 많은 용자들이 추위와 졸음과 싸워가며 오픈런 대열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NO.1 혜자 케이크’로 불리는 2.3kg의 ‘딸기시루’의 가격은 49,000원. 풍성하고 위풍당당한 자태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신라호텔 '더 파이니스트 럭셔리'의 약 10분의 1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맛도 10분의 1일까?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요즘 유튜브나 SNS만 켜도 바로 뜨는 ‘딸기 시루 리뷰’에 따르면 ‘딸기 시루’는 "밤새고 새벽 기차에 올라 대전으로 향하여 몇 시간씩 추위에 떨며 줄을 서서 어렵게 구해와도 아깝지 않은 케이크"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딸기시루’ 보다 10배 비싼 신라호텔의 ‘더 파이니스트 럭셔리’는 성심당의 자랑 ‘딸기시루’ 보다 10배 더 맛있을까? 혹은 10배 이상의 가치와 감동을 줄까?
정답은 '모르겠다'. 이유는 간단하다. 왜냐하면 나는 애석하게도 두 케이크 모두 아직 맛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찬사 일색인 각종 리뷰 영상을 찾아보며 아마도 대략 이러이러한 맛이 아닐까 상상해 보는 즐거움을 누려볼 뿐이다.
사실 앞으로도 내가 과연 이 두 케이크를 맛볼 일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높은 확률로 나는 ‘더 파이니스트 럭셔리’도 ‘딸기시루’도 상상으로 맛보는 것으로 만족할 듯싶다. 아무리 호화로운 최고급 식재료로 만든 케이크라도, 나는 케이크 한 판에 50만 원을 쓸 재력도 호기심도 없다. 뿐만 아니라 꼭두새벽부터 서둘러 ktx를 타고 대전까지 내려가 길고 긴 오픈런 행렬에 합류해 ‘딸기시루’를 사고, 다시 서울까지 이고 지고 올만큼 체력이 좋지도 못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와 가족을 위한 크리스마스 케이크마저 포기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남편은 매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케이크를 사들고 귀가한다. 나와 딸들의 입맛과 취향 그리고 그해의 트렌드를 골고루 고려해 남편의 최종 선택을 받은 그 케이크는 매년 우리 가족의 크리스마스 디너의 꽃이다. 50만 원짜리 고가의 케이크도, 오픈런 필수인 인기 절정의 한정판 케이크도 아니지만 네 가족이 모여 앉아한 해를 돌아보며 도란도란 나눠 먹는 그 케이크가 우리에게는 최고의 케이크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우리는 누구와 어떤 마음을 나누고 싶을까? 누군가에는 그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50만 원짜리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꼭 필요할 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이에게 묵직하게 건네줄 '딸기시루'를 위해 줄을 서는 몇 시간이 마냥 행복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이에게는 직접 만든 작은 생크림 케이크가 가장 커다란 사랑을 전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비록 모양은 조금 투박할지라도.
각자 마음을 담아 건네는 그 케이크가 무엇이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맛있게 나누어 먹는 따뜻한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되길 바란다.
부디 우리 모두 각자의 ‘최고의 케이크’를 만나길.
해피 미리 크리스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