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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 드는 방 Dec 18. 2024

내 오랜 크리스마스 플레이리스트

조지 윈스턴부터 겨울왕국 OST까지

뭐든 한번 좋아하면 오래가는 편이다.

여전히 과자 쇼핑 목록 1순위는 손이 가고 손이 가는 새우깡이고, 아이스크림 할인점의 화려한 신상을 지나쳐 나의 손길을 받는 아이들은 언제나 메로나와 누가바 또는 돼지바다. 최근 반강제적으로 바꾸게 되긴 했지만 두 달 전까지도 나는 7년 된 아이폰 8 plus를 아무 불편함 없이 사용해 왔다. 나의 든든한 반려인 고동동 씨는 어느덧 30년에 가까운 시간을 친구에서 남자친구 그리고 남편까지 타이틀만 바꿔가며 내 옆을 지키고 있다. 나의 최애, 포르테 디 콰트로와 손태진을 덕질한 지도 해가 바뀌면 8년 차가 된다. 유행에 민감한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관심한 타입도 아닌데 "취향"이라는 것은 신기하게도 세월이 지날수록 선명해져 내 삶에 굵고 선명한 무늬를 남긴다.


음악에 관한 취향도 예외는 아니어서 매년 이맘때가 되면 매일같이 반복해서 듣는 음악들이 있다.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오래된 cd가 재생하는 겨울곡들을 듣고 있노라면, "아, 올해도 열심히 잘 살았구나! 무탈하게 한 해의 마무리를 준비할 수 있어 감사하다."라는 생각이 절로 우러난다. 오랜 시간의 흔적을 자랑하듯 때 묻고, 낡은 앨범 재킷들이 소중하다. 조지 윈스턴부터 겨울왕국 OST까지, 내 오래된 크리스마스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한다.



12월 내내 우리집의 크리스마스 무드를 책임지는 오래된 5총사


1. 조지 윈스턴 (George Winston) / 피아노 솔로 / December / 1982

겨울 음악 하면 조지 윈스턴. 나나무스꾸리( Nana Mouskouri) 크리스마스 음반과 더불어 조지 윈스턴의 디셈버 앨범은 내 어린 시절 겨울날과 함께했던 부모님의 겨울 플레이리스트였다. 아빠가 아끼시던 전축과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 선율은 잔잔하면서도 영롱하게 반짝이는 겨울 햇살 같았다. 하얀 눈밭 위로 다이아몬드 사막이 반짝거리고, 꽁꽁 언 호수 위에 단단한 윤슬이 일렁이는 설국의 풍경. 조지 윈스턴의 December 앨범을 들으면 나는 언제든 가장 아름다운 겨울 풍경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의 연주곡은 바람이 통하지 않는 따듯한 담요로 온몸을 감싼 채, 포근하고 안전하게 겨울을 누리는 가장 안전하고도 호화로운 방법이다.


https://youtu.be/CDq9VI7f2QI?si=UBr7BoirzcKAAVHM



2. 에디 히긴스 트리오 ( Eddie Higgins Trio ) / 크리스마스 앨범 (Christmas Songs ) / 2004

조지 윈스턴의 앨범이 부모님을 통해 접한 앨범이었다면, 에디 히긴스 트리오의 앨범은 남편 덕에 알게 된 보석 같은 앨범이다. 결혼 이후 줄곧 우리 집의 크리스마스 시즌을 책임져 주고 있는 공식 겨울 앨범이랄까. Let It Snow, The Christmas Song,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등 제목만 들어도 크리스마스 무드 가득한 열두 곡의 캐럴이 누군가 고마운 이가 정성껏 마련해 준 선물처럼 빼곡히 채워져 있다. 피아노의 달인 에디 히긴스가 이끄는 재즈 트리오가 연주하는 익숙한 멜로디의 캐럴은 찬 바람 부는 11월부터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내내 듣고 또 들어도 결코 질리는 법이 없다. 이들 재즈 트리오는 완급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매우 세련되고 섬세한 연주를 들려주지만 동시에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편안한 크리스마스 무드를 선사한다. 20대 때 선배들 따라 가끔씩 찾아갔던 재즈 클럽 <천년동안도>. 이곳이 서울인가, 뉴욕인가 싶게 고급진 재즈향 가득했던 그곳에선 칵테일 보다도 재즈 음악에 먼저 취했던 기억이 난다. 에디 히긴스 트리오와 함께 보내는 12월은 언제나 감성 충만한 재즈 클럽이다.


https://youtu.be/HM3jRCAA61A?si=g064aWPw4RC-5uto



3. 마이클 부블레 ( Michael Buble ) / 크리스마스 앨범 (Christmas ) / 2019

부블레 없이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을까? 인간 캐럴, 인간 크리스마스, 목소리도 얼굴도 잘생긴 부블레가 불러주는 로맨틱한 크리스마스. 나의 최애 싱어 손태진이 가장 사랑하는 아티스트 중 하나이기도 한 부블레. 그렇다 이 앨범은 나의 최액 픽인 셈이다. 몇 해 전부터 크리스마스 앨범계의 영원한 레전드 머라이어 캐리의 크리스마스 앨범을 대신해 나의 원픽 크리스마스 앨범이 되었다. 특히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겨울, 거리 두기로 연말 같지 않은 연말을 보내야만 했던 때에 섭섭하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준 고마운 앨범이기도 하다. 앨범 재킷에는 하얗게 흩날리는 눈을 맞고 선 부블레가 블랙 슈트 차림으로 반쯤 뒤돌아 서있다. 등 뒤로 감추듯 들고 있는 붉은 선물 상자. 이렇게 로맨틱한 캐럴을 불러주는 남자와 함께라면 저 선물 상자에 선물 대신 하얀 눈만 가득 들어있다 해도 충분히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싱거운 생각까지 해볼만큼 부블레의 목소리는 한 입만 먹어도 온몸에 행복이 퍼지는 진한 초콜릿 케이크처럼 한없이 달콤하고, 부드럽고, 낭만적이다.


https://youtu.be/nxC0nsrQJ8k?si=8pg6SGCrbcfKUgEX



4. 유키 쿠라모토 ( Yuhki Kuramoto ) with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 / Refinement / 1993

<호두까기 인형>이 발레계의 크리스마스 대표작이라면 클래식계의 크리스마스 스테디 셀러 콘서트 하면 역시 <유키 쿠라모토와 친구들>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유키 쿠라모토는 크리스마스 시즌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아티스트 중 하나가 되었다. 사실 이 앨범은 크리스마스나 겨울을 겨냥하고 만든 앨범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앨범을 듣고 있자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파리의 세느 강변을 쓸쓸히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계절은 물론 겨울이다. 매서운 파리의 겨울바람을 막아주는 것은 짙은 감색 캐시미어 코트와 무심하게 둘레 멘 두터운 목도리 그리고 귀까지 푹 눌러쓴 커다란 울 베레모. 귀에 꽂은 에어팟에서는 유키 쿠라모토의 <A Scene Of La Seine>가 유유히 흐르는 센 강처럼 흐르고 있다. 언젠가 파리를 방문한다면 그 첫 번째는 크리스마스 시즌이었으면 좋겠다. 음악과 함께라면 inFp의 상상(망상)에는 날개가 달린다.


https://youtu.be/okKeLihfWs0?si=moqVQa9SFgj5K9ov



5. 겨울왕국 OST / Frozen 2-disc Deluxe Edition Soundtrack / 2014

2014년 1월 전 세계를 강타한 엘사 열풍. 당시 다섯 살, 여덟 살이었던 우리 집 고자매는 그 열풍의 한가운데서 하루에도 열두 번씩 엘사가 되었다. 묶었던 머리를 풀어헤치며 목놓아 불러대던 "레릿꼬오오오~". 정확한 뜻도 모르면서도 영어 가사를 제법 비슷하게 따라 부를 수 있게 되기까지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추억의 ost 앨범 되시겠다. 엘사가 단정히 머리를 틀어 올린 아렌델의 여왕에서 눈과 얼음을 자유자재로 부려 얼음 궁전을 짓는 시크한 눈의 여왕으로 거듭나던 변신 장면은 지금 다시 봐도 최고의 명장면이다. 집에서도, 차에서도, 밥을 먹을 때도, 여행을 가서도, 잠들기 전에도 딸들과 함께 주야장천 듣고 또 들었던 추억 때문일까. 지금도 동장군의 겨울 왕국이 찾아오는 12월에는 빼놓지 않고 틀어놓는 앨범이 되었다. 2장의 cd에는 무려 55곡의 ost와 데모곡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Let It Go",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 "Love Is An Open Door" 외에도 주옥같은 숨은 명곡들이 가득한 앨범이니 꼭 한 번 첫 곡 Frozen Heart부터 Epilogue까지 연달아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https://youtu.be/TeQ_TTyLGMs?si=PuPJc52c-Irie1ux



언젠가부터 거리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기가 어려워졌다. 저작권 이슈 때문이라고도 하고, 엄격해진 소음과 에너지 규제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됐건 한 해를 마무리하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음악 없이 보내기는 너무 밋밋하고 서운하지 않을까? 거리에서 듣기 힘들다면 나만의 캐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집에서, 사무실에서, 등굣길 또는 출퇴근길에 함께 해보자. 친구들과 모이는 홈파티에서도, 우리 가족끼리 오붓하게 마주 앉은 크리스마스 디너에서도 계절에 어울리는 좋은 음악과 함께라면 크리스마스트리 없이도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고 따뜻한 연말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내 오랜 친구 같은 크리스마스 플레이리스트는 오늘도 나의 하루에 행복이라는 마법을 반짝반짝 뿌려주었다. 여러 복잡한 상황으로 마냥 들뜨고 신나게 보낼 수만은 없는 2024년의 12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성하고 아름다운 음악들이 당신의 차가운 하루에 따뜻한 위로를 건넬 수 있기를 바라며 진심을 담아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띄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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