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 뇌의 문제, 마음의 이야기
"어머니, 틱은 뇌의 문제라니까요?"
모 대학병원 소아정신과에서 10개월을 기다려 만난 교수님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틱의 원인이라 짐작했던 아이의 불안, 예민함 등 심리적 요인은 틱의 발현 또는 악화와 관련이 있을 수는 있어도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유전적인 요인, 뇌 구조 이상, 출산 중 뇌 손상 등이 원인일 수있다고 설명했다.
그 말을 듣고 오히려 조금 안심했다. '그래, 적어도 아이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건 아니야.' 하지만 그 안도감 뒤에 밀려오는 또다른 감정이 있었다. 혹시 내가 지금껏 내내 마음 속으로 아이를 탓했던 건 아닐까? 내가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틱이 생겼다고 스스로를 책망했던 건 과연 아이를 걱정해서 였을까, 아니면 남다른 행동을 하는 아이의 모습을 부정하고 싶어서였을까?
"만 10세가 되면 대부분 자연스럽게 좋아집니다.
하지만 만약 그때까지도 틱 증상이 나아지지 않거나 악화된다면 지체 말고 병원으로 오세요. 즉시 약물 치료를 시작해야하니까요."
틱은 뇌의 문제이며 약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말에 한 편 안심하면서도 그래도 제발 약까지 먹지는 않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병원 문을 나왔다. 아이 손을 꼭 잡고. 다행히도 만 10세가 되기 조금 전, 아이의 틱 증상은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몇 년 동안 아이와 나를 괴롭혔던 틱과는 그렇게 영영 이별할 줄 알았다.
"선생님, 오늘은 눈이 자꾸 아파요."
책을 읽으며 눈을 계속 비비던 예서가 말했다. 다른 아이들의시선이 예서를 향했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그럴 땐 잠깐 눈을 감고 쉬면 괜찮아질 거야. 우리 다 같이 쉬는 시간 가질까?” 예서는 곧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그 뒤에도 계속 아이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 예서도 틱이 시작됐구나.’
내가 운영 중인 독서교실에 오는 아이들 중에 틱을 하는 아이들이 하나, 둘 눈에 띄면서 나는 틱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틱에 민감하다. 눈을 끊임없이 깜빡이는 아이, 킁킁 소리를 내며 반복적으로 코를 만지는 아이,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책을 읽는 아이, 목이 답답한 듯 흠흠 소리를 내는 아이...... 아이들이 보이는 다양한 틱 증상들이 내게는 하나같이 익숙하면서 여전히 아프다. 저렇게 계속 소리를 내다보면 목이 붓고 아플 텐데. 눈 깜빡이지 말라고 부모님께 꾸중 듣고 있는 건 아닐까? 친구들과 놀 때도 자꾸 저렇게 킁킁대면 아이들이 놀릴지도 모르는데. 아이들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지만, 아이들의 틱 증상이 심해진 날에는 내 마음속에 걱정의 먹구름이 드리운다. 언젠가는 자연스레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당장 내 눈앞에서 틱을 하는 아이를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마도 큰 아이의 어린 시절 모습과 겹쳐 보여서 이리라.
큰 딸이 처음 틱을 시작한 건 여섯 살 때였다. 저녁 준비를 하다가 문득 아이가 잘 놀고 있는지 궁금해 거실 쪽을 돌아봤다. TV를 보고 있던 아이가 끊임없이 눈을 깜박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왜 그러지? 눈이 불편한가?' 한동안 아이를 주시했다. 아이는 나비가 날갯짓하듯 빠른 속도로 쉴 새 없이 눈을 깜빡이고 또 깜빡였다. 그때는 몰랐다. 저 나비 같은 날개짓이 앞으로 몇 년 동안 우리 가족을 어떻게 흔들어놓을지.
TV를 너무 많이 봤거나 졸려서 그러겠거니 생각하고 아이를 일찍 재웠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에도 아이의 눈 깜빡임은 계속되었다. 속눈썹이 눈을 찔러서 그러는게 아닌가 싶어 아이를 안과에 데리고 갔다. 아이의 눈 깜빡임은 속눈썹 때문이 아니고 크면서 흔히 있을 수 있는 현상이니 모르는 척 하고 지켜보라고 했다. 걱정을 억누르며 애써 아이의 눈 깜빡임을 모르는 척 했다. 눈을 깜빡이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었다고 생각될 때 즈음 아이에게 새로운 움직임이 추가됐다. 오른쪽 어깨를 빠르게 으쓱하듯 올렸다 털어내듯 내리는 움직임을 하루에도 몇번씩 반복했다. 어깨 털기는 눈 깜빡임 보다 훨씬 눈에 잘 띄었다. '유치원에서도 이럴까?' 아이의 눈에 띄는 틱을 주변 사람들도 눈치 채게 될까 걱정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뭐가 그리 중요했을까 싶지만, 어리석게도 그때의 나는 그랬다.
아이의 어깨 털기가 심해질수록 남편과 걱정어린 눈빛을 주고 받는 일이 잦아졌다. "점점 심해지는거 아냐? 병원에 가봐야 하지 않을까?" 그즈음 우리 부부는 아이의 증상을 피곤함이나 간지러움 때문이 아닌 틱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초록창에 틱을 검색하자 '틱장애'라는 단어가 자동완성 되어 나왔다. 장애? 틱도 장애의 일종인 것인가? 혼란스러웠다. 저러다 말겠지, 크면 좋아지겠지라고 좋게 좋게 생각하려 애썼던 나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눈 깜빡임과 어깨 털기에 이어 고개 돌리기까지 추가되자 우리 부부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했다. 안절부절 하며 찾아간 동네 소아과에서 틱이 맞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틱은 주변에서 지적하고 언급할수록 심해질 수 있다며 무조건 모르는 척 하며 나아질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하지만 매일같이 틱 증상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 듯 보이는 아이의 모습에 무관심해지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아이가 목과 어깨에 통증을 호소하던 날, 이대로 지켜만 보는게 능사는 아니라며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아갈 결심을 굳혔다.
나의 첫번째 선택은 한의원이었다. 아이에게 먹이기에 양약보다는 한약이 덜 무섭게 느껴졌던걸까. 어린이 전문 한의원을 찾아가 아이의 증상을 얘기하고 치료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다행히 다정하고 친절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 호흡기가 약한 아이를 위한 침과 뜸 그리고 틱으로 인한 어깨와 목의 통증을 완화할 수 있는 약을 처방 받았다. 꾸준히 약을 먹고 치료를 받으며 아이의 통증은 나아졌다. 하지만 틱은 나아지는 듯 하면서도 악화되었고, 사라지는 듯 하다가도 다시 재발했다. 그즈음 아이는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었던걸까? 초등학교 입학 얼마후부터 아이에게는 음성틱이 추가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음, 음, 음"하는 소리를 반복적으로 내는 새로운 증상. 아이를 등교시키고 나면 수업 시간 내내 교실 한 켠에서 어깨와 목을 들썩이며 음, 음 소리를 내고 있을 아이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괴로웠다. 틱이 이 정도로 심하면 선생님 눈에도 띄지않았을까? 친구들이 놀릴 것 같은데 괜찮은걸까?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걱정이 몸집을 불릴수록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눈빛에 힘이 들어갔다.
"어깨 좀 그만 움직여. 가만히 있을 수 있잖아. 왜 자꾸 끙끙거리니?" 숙제를 하면서도, 받아쓰기 연습을 하다가도 자꾸만 움직이는 아이에게 더이상 참지 못하고 짜증을 부리는 횟수가 잦아졌다. 목과 어깨를 털던 움직임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팔 돌리기가 시작되었다. 그쯤 되니 틱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같은 존재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혈관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니며 아이 몸을 지배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지긋지긋한 틱이라는 존재. 나는 너를 기필코 없애고 말겠다. 더 이상 내 아이를 괴롭히게 둘 수 없어!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걸까. 답답하고 화가 났다.
"지원이가 OO동에 운동치료 센터를 냈대. 틱 치료도 한다고 하니 다땡이 데리고 다녀와보자."
캐나다에 이민갔던 엄마 친구 아들 지원이가 어린이 재활 치료와 운동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센터를 냈다는 소식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오랜만의 만남을 제대로 반가워할 겨를도 없이 나는 그동안의 걱정과 불안을 쉴새없이 쏟아냈다. 제발 도와달라고. 아이도 힘들고 지켜보는 우리도 너무 힘들다고. 그 무렵 주변 사람들에게서도 다땡이의 틱이 자주 언급되었고, 나는 그들의 걱정어린 시선이 고맙기 보다는 부담스러웠다. "저 엄마는 아이를 어떻게 키웠길래 아이가 틱이 저렇게 심해?" 아무도 하지 않은 말을 혼자 만들고, 들었다. 아이에 대한 걱정과 나를 향한 정체 없는 비난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괴롭혔다.
센터에서는 딸아이의 틱이 좌,우뇌 불균형이 심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몇가지 영양제를 먹이기를 권했고, 유제품과 가공식품 일체를 끊으라고 했다. 운전을 못하는 나를 위해 친정 엄마가 주2회씩 우리를 센터까지 라이드 해주셨고 덕분에 1년 가까이 주 2회 운동치료를 꾸준히 받을 수 있었다. 치료실에서 선생님을 따라 다양한 자세와 움직임을 반복하는 큰 딸을 지켜보며 이렇게 열심히 치료 받으니 좋아질거라는 희망과, 정말 이게 맞을까 하는 의구심이 끊임없이 교차했다. 100프로 확신이 없으면서도 매주 센터를 오갔다. 세 번의 계절이 바뀌었고, 아이는 2학년이 되었지만 틱은 사라지지 않았다. 틱은 여전히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모두가 틱에는 무관심이 최선이라 말했지만, 내 신경은 오직 아이의 틱에 묶여 있었다.
아이의 2학년 겨울방학, 결국 돌고 돌아 대학병원 소아 정신과 진료를 예약했다. 틱 전문가라는 교수님은 다음해 10월에나 진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기다림의 시간은 더디 흘렀다. 희망과 절망을 오가는 열 달이 흘렀고 마침내 마주한 교수님 앞에서 그동안의 고민과 방황의 시간을 최대한 차분하게 전달하려 애썼다. 불안, 예민한 아이, 걱정, 친구 관계, 학교 생활, 등의 단어가 띄엄 띄엄 내 입을 통해 새어 나왔다. 내 말을 다 듣고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틱은 뇌의 문제입니다. 왜 자꾸 심리적인 문제를 이야기 하시죠?" 그 후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서두에 이미 밝힌대로이다.
그런데, 틱은 정말 뇌의 문제일까? 정말 무관심과 약물 치료만이 최선일까?
독서 교실에서 여러 아이들의 틱을 바라보며 나는 또 다시 그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의학적인 사실과 조언에 반기를 들 생각은 없다. 하지만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지난날 아이의 틱 앞에 한없이 흔들리고 조바심 냈던 내 모습은 아픈 후회로 남아있다. 틱의 원인은 뇌에 있을지라도 내가 보듬어 줄 수 있는건 아이의 마음이다. 틱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를 안고 진심으로 "괜찮아, 때가 되면 좋아질거야."라고 말해줄 수 있었더라면. 걱정과 불안의 시선을 거두고 믿음과 응원의 눈빛을 보내줄 수 있었더라면. 목과 어깨가 아프다는 아이에게 "그러니까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봐. 할 수 있잖아.“라고 매정하게 떠미는 대신 "많이 아프지? 엄마랑 찜질할까?"라고 웃으며 안아주고 주물러줬더라면.
나는 여전히 틱은 뇌의 문제인 동시에 마음이 전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불안해요. 힘들어요. 안아주세요."
하지만 그 시절 좀 더 의연하게 아이를 안아주고 이해해주지 못한 어리고 어리석은 초보 엄마, 과거의 나를 탓하고 싶진 않다. 그 시절의 나는 부족했을지언정 최선을 다했고, 진심으로 아이를 사랑했기에 더더욱 아팠던거였으리라. 덕분에 지금의 나는 엄마의 마음으로 독서교실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최근들어 틱이 심해진 주호의 책가방을 받아주며 눈 맞추고 묻는다.
"주호야, 요즘 학교에서 별 일 없지? 학원 숙제가 많니?"라고. 아이는 맑은 눈과 밝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학원 숙제가 많긴한데, 그래도 괜찮아요!"
"그렇구나, 다행이다. 그럼 오늘은 주호가 읽고 싶은 그림책 두 권 먼저 골라와볼까?"
그림책이란 말에 아이의 얼굴이 환해진다. 아이가 골라온 그림책을 읽어주며 마음으로 전한다.
"괜찮아, 다 지나갈거야. 주호는 지금도 충분히 멋져. 그러니까 조급하거나 불안해할 필요 없어.
우리 독서교실에 있는 동안은 맘껏 웃고, 즐겁게 읽고 떠들다 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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