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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 드는 방 Dec 20. 2024

맥주는 정말 뱃살의 적일까?

슬기로운 맥주생활을 위한 다섯 가지 결심

일찍이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는 이렇게 말했다.


맥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을 믿을 수 없다.


맥주를 향한 그의 이 단언을 보고 끄덕끄덕 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단연코 믿을만한 사람이다. 그리고 나 역시 매우, 대단히 믿을만한 사람임을 밝힌다. 나는 맥주를 애정한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밤이나 낮이나,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까지는 과장이지만 말이다.


내게 맥주는 언제나 옳다. 맥주 마시기에 적절하지 않은 시간은 없고, 어울리지 않는 음식도 없으며, 맞지 않는 계절 또한 없다는 게 나의 신념이다. 특히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마시는 맥주 한 잔은, 텁텁해진 입안을 헹궈줄 가글이자 오늘도 수고한 나를 위한 짜릿한 보상이다.



맥주와 나의 위기: 믿음의 균열

나의 맥주 사랑은 한결같았다. 퇴근 후 시원한 맥주 한 잔, 주말 낮의 여유로운 맥주 한 캔은 일상의 피로를 풀어주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거울 앞에 선 나를 보며 그 신념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분명히 어제도 입었던 청바지가 오늘은 좀 더 꽉 조이는 느낌이다. 불길한 예감을 외면한 채 소파에 앉았을 때 깨달았다. 불편하게 접히는 이 느낌. 그렇다, 뱃살이 늘었다.

맥주 애호가로서 그저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결정적으로, “맥주는 소주나 와인보다 살이 찌기 쉽다”는 매스컴의 보도를 본 순간 폭풍 같은 위기감이 나를 엄습했다.

“맥주는 먹고 싶지만, 뱃살은 찌기 싫어!“ 그렇다면 나는 일편단심 맥주 사랑을 저버리고 다른 주종으로 넘어가야 하는 걸까?

하지만 여러 차례의 실험과 연구(?) 끝에 깨달았다. 어떤 주종도 맥주가 주는 만족감을 대체할 수 없었다. 와인의 우아함도, 소주의 직선적인 강렬함도 내게는 맥주의 그 톡 쏘는 첫 모금만큼의 위로를 주지 못했다. 결국 나는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뱃살이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참으로 다양한 안주와 함께 씹고, 뜯고, 들이킨 맥주,맥주, 맥주들…


문제의 본질을 묻다: 진짜 범인은 누구인가?

그래서 진지하게 고민해 봤다. 맥주를 마시면 배가 나온다는 속설은 정말 사실일까?

이것은 단지 맥주의 탄산 때문일까, 아니면 맥주 자체가 칼로리 폭탄이기 때문일까?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맥주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과음, 고칼로리 안주, 그리고 늦은 시간 야식을 곁들여 마시는 습관에 있었다. 냉정하게 돌아보니 내 맥주 생활에도 반성할 부분이 많았다. 치킨과 골뱅이, 각종 과자와 함께했던 맥주는 맛있었지만, 양도 칼로리도 분명 과했다. 시원하게 한 캔을 비우고 갈증이 충분히 해소됐음에도 괜한 아쉬움에 포기하지 못했던 “딱 한 캔만 더! “의 습관은 나의 뱃살을 부른 주범이었다.


맥주와 함께하는 새로운 방식: 뱃살을 피하는 법

문제를 알았으니 해결책도 명확하다. 맥주를 포기할 수 없다면, 맥주와 건강하게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나만의 새로운 맥주 생활 규칙을 정했다.


첫째, 벌컥벌컥 들이켜지 말고 천천히 음미할 것.

급하게 마시면 더 많이 마시고 싶어 진다. 한 모금씩 천천히, 맥주의 풍미를 느끼며 즐겨보기로 한다.


둘째, 안주는 가볍게 선택하자.

치킨 대신 닭가슴살 샐러드, 과자 대신 무염 견과류. 맥주와 잘 어울리면서도 칼로리 부담 없는 선택이다.


셋째, 한 번에 한 캔만 마신다.

“이 한 캔이 첫 캔이자 마지막 캔이다”라고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소량으로도 충분히 만족감을 느끼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 기억하자, 나는 취하려고 마시는 게 아니라 쉬어 가려고 마신다는 걸.


넷째, 금요일이나 주말에만 마신다.

당길 때마다 마시던 습관에서 벗어나 특정 요일에만 즐기는 특별한 이벤트로 바꿔보자. 주중에는 최대한 클린 하게 먹고 주말 하루, 이틀 정도는 건강한 안주에 시원한 맥주를 가볍게 곁들이자.


다섯째, 활동량을 늘리자.

맥주를 마신 날은 운동을 조금 더 하거나, 가벼운 산책을 추가로 한다. 가뿐하게 움직이고 나면 뱃살 걱정도 덜어진다. 만약 전날 자제력을 잃고 과식했다 싶다면 다음 날 아침 공복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해 보자.



맥주를 마시기 위해 이토록 치밀하고 치열해야 하냐고?

맥주는 나에게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그 한 잔의 시원함은 내 하루를 치유하고, 수고한 나를 위로해 주는 작지만 큰 행복이다. 여유로운 주말 저녁, 신랑과 마주 앉아 밀린 수다를 떨며 곁들이는 친밀한 의식이다. 또한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과 시간을 나누며 함께하는 소중한 선물이다. 하지만 나는 행복도 의식도 선물도 지키면서 옷맵시 좋고 건강한 몸 또한 잃고 싶지 않은 욕심쟁이다. 이것이 내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면서까지 앞으로도 오랫동안 맥주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이유이다. 맥주와 뱃살 사이의 균형을 지키며 건강하게 함께 가는 길을 찾았으니 이제 남은 것은 이 다짐을 지키는 일뿐이다. 오늘도 나는 퇴근 후 브런치에 발행할 글을 쓰기 위해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냉장고에서 꺼내 들었다. 손바닥으로 전해져 오는 차가운 희열. 작은 유리잔에 반잔을 따라 한 모금 시원하게 들이켜고 나니 정신이 번쩍! 그래, 맥주야. 오늘의 글감은 너다.


금요일 밤, 나에게 후련한 쉼표와 함께 글감까지 선사해 준 고마운 맥주. 투명한 유리잔 속 금빛으로 반짝이는 너를 보며 다짐한다. 천천히 음미하고, 가볍게 즐기며, 너와의 우정을 오래도록 이어가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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