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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sallim Feb 28. 2022

처음 해보는 제철 살림이야기 (지난해 여름살림)

그 해 그 계절의 나를 기억하고 싶어서다.

내가 사는 곳은 매월 4일과 9일이 장날이다.

냉장고를 파먹으며 버티다보면 왁자지껄 전통시장의 묘미를 즐길 때가 돌아온다.

코스트코에서 회원가입을 하고 받은 빨간색시그니처백은 정작 전통시장을 갈 때 제일 유용하다.

횡단보도에 서서 시장입구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끝도 없이 빨려들어가고 쏟아져나온다.

요즘 시기에 어색하리만큼 장날 분위기는 북적거림으로 사뭇 다르다.

나도 서둘러 장보기 짝꿍 남편과 함께 시장통으로 스며든다.


장보기 루틴은 뜨근한 두부 한모를 사는 것으로 시작한다.

1,500원이면 찌개 서너번은 끓여먹는 두툼하고 실한 두부를 얻을 수 있다.

익숙한 길목에 자리잡은 상추아주머니를 거쳐 브로콜리, 앞다리살 3근, 제철 과일, 고등어/오징어/동태 등 생선까지 사면 장보기 루틴은 끝이다.

장바구니 가득 먹거리를 담아 어깨에 턱 걸쳐메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그러다 남편이 문득 횡단보도 건너편에 쌓인 매실 상자들을 가리키더니

“올해 매실청을 담글까?” 상기된 목소리로 묻는다.

“응?” 내심 못들은 척 어물쩡 넘어가려했으나 “담가서 얼음물에 타먹자!” 며 기대감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 눈안에는 이미 매실청이 담가져 익어가고 있었다. 사야만 한다.

우리는 청매실과 달리 꽃향기가 진하고 붉으스름한 빛이 감도는 홍매실을 10kg 샀다.

집에 오는 길에 설탕도 샀다.


몇 년 전에 매실청을 담그다 곰팡이가 펴서 다 버린 적이 있다.

유리병도 소독하고 입구도 공기가 통하지 않게 잘 밀봉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숙성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바로 공기가 전혀 통하지 않게 ‘밀봉’한데 있었다.

매실청은 매실과 설탕을 1:1 비율로 섞고 뚜껑을 닫은 후 설탕이 다 녹을 때까지는 매일 두어 차례 뒤적거려야 한다.

설탕 입자가 다녹아 진득한 액체가 되면 그 때 비로소 뚜껑을 꽈~악 닫아 시일을 기다리는 것이다.


남편이 매실을 씻어 꼭지를 따고 체반에 펼쳐 말리는 동안 나는 유리병을 씻고 소독해 엎어두었다.

하루가 지난 오후, 고슬고슬 마른 매실을 유리병에 담고 설탕을 켜켜이 부어가며 매실청을 담갔다.

사실 매실청은 매실을 씻는데 품이 들 뿐 담그는 과정에는 특별함이 있진 않다.

그러나 매실청을 작은 병에 소분해 냉장고 한 켠에 나란히 세워두면 왠지모르게 마음이 든든하다.


6월21일에 담근 매실을  4개월 후인 10월 17일에 걸러냈다.

1.25L 패트병으로 6병반을 채웠다.

양가 부모님댁에 가져갈 만큼 넉넉한 양이라 내심 뿌듯했다.

과일향인 듯 꽃향인 듯 입안을 감도는 매실액의 은은한 향이 혀 위를 맹렬히 돌아다니는 얼음사이를 가로질러 퍼지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질만큼 맛있다.

영롱한 빛깔마저 완벽하다고 느껴질만큼 나의 첫 제철 살림인 홍매실청은 성공적이었다.


뭐든 처음은 서툴고 어색하다.

그런데 그 과정을 지나 의외로 달콤한 결과를 얻게 되면 내심 다음에 또 하려는 욕심이 생긴다.

올해엔 15kg을 살 요량이다.

좀 더 넉넉히 만들어 한 해 동안 두고두고 여름살림을 기억하고 싶어서다.

제철 살림은  ,  계절의 나를 기억할  있는 살림법이다.

이제 매해 홍매실청으로 여름을 추억하고 나를 소환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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