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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sallim Mar 03. 2022

집을 그리는 사춘기 아들

아들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가

올해 중2(15세) 아들은 종종 집을 그린다.

특히 주택을 그릴 때 사실적 표현이 극에 달한다.

아들은 미술을 배운 적이 없지만 실력이 제법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각종 동물을 묘사하는데 그 디테일이 남달라 무척 놀랬다.

관찰력이 세심하고 ‘그리고 못그리고의 경계’가 없는 그리고 싶은 것을 ‘그냥 그리는’ 거침없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배움을 통해 전문적인 스킬을 익혀보면 어떨가 싶어 미술학원을 권유했지만

정해진 커리큘럼을 일방적으로 따라가야하는 미술교육은 본인 스타일이 아니라며 단칼에 거절했다.

배우지 않아도 그릴 수 있으니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내가 중학교생일 때 모눈 종이에 집구조를 그리는 실기평가가 있었다.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거실을 무척 넓게 그리고 방이 많았다는 점이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는 건 내가 우리집에 응접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방도 많고 정원도 있는 소위 잘사는 집을 꿈꿨던 것 같다.


아들에게 물었다.

“집을 그리면서 어떤 생각을 해?”

“나는 아파트가 아니라 전원주택에 살고 싶어. 내가 추구하는 건 집안이 포근하고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거야”

좋은 집에서 뽐내며 살고 싶은 단순한 나의 생각과는 그 깊이가 다른 대답이었다.


집을 소유한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녹록찮은 일이다.

은행과 공동명의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자력으로 저축해 모은 돈으로 집을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가진 것보다 더 많은 빚을 져야 자가든 아니든 거처를 마련할 수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나 현실은 고되더라도 머무는 집은 더없이 편안하길 꿈꿀 것이다.

집은 쉼과 회복의 공간이다.

살아내기 위해 치열한 일상을 버틴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위로받으며 온전히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아들이 꿈꾸는 집에는 이런 기대와 온기가 있는 것이다.


아들이 그린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불이 켜지고 꽃이 피고 바람이 드나들고 웃음소리가 난다.

지금 내가 집을 그린다면 아들의 마음처럼 집안에 모여 서로를 마주보는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 싶다.

집은 곧 가족이고, 가족은 내게 삶의 이유이니 집을 보듬는 살림은 가족을 살리는 나의 소명과도 같은 것이다.


아들 作 ‘온기가 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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