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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선 Jan 27. 2021

피아니스트 최형록

그에게 진정성이란


뜬금없지만 모차르트 이야기를 먼저 꺼내보려고 한다. 최형록과 만나니 문득 모차르트가 마음에 스쳤다. 그가 잘츠부르크에서 석사를 하고 있어서 그런가. 곱슬거리는 금발 머리카락은 어째 모차르트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그가 악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모차르트의 어린 시절과 똑 닮았다.

ⓒ황필주(studio 79)/월간객석


최형록과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온몸으로 선율을 감각하던 아이였다. 선율을 익힌다는 건 사실 교육보다는 감각의 영역이다. 꼬마 모차르트는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우는 누나를 지켜보면서 음악을 자연스레 습득했다. 최형록도 그랬다. 경북 구미에서 태어난 그는 세 살 많은 누나의 손을 잡고 피아노 학원을 갔다. 누나의 연습곡을 귀 기울여 듣던 최형록.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 그 난곡을 수월히 연주했다. 예사롭지 않은 재능을 피아노 선생님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작곡은 아홉 살에 처음 시작했어요. 처음 만든 곡의 제목은 ‘화이트 윈터(white winter)’예요. 1990년대에 유행하던 댄스곡 풍의 음악이지요. 저는 어릴 때 누나와 함께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애청했어요. 이 곡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떠오르는 겨울 노래인데, 한 번 들어보실래요?”

한창 인터뷰를 진행 중이었다. 최형록은 자신이 직접 가이드 녹음한 첫 자작곡 ‘화이트 윈터’를 들려줬다.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고 있노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모차르트와 최형록의 다른 점이라면 아마도 집안 분위기일 것이다. 모차르트는 음악가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최형록의 집안은 음악과 거리가 멀었다. 어린 모차르트가 노래하는 선율은 모두 그의 아버지가 악보로 옮긴 것이다. 반면 어릴 적 최형록이 흥얼거리던 선율은 모두 그의 마음에 담아뒀다고. 

“피아노를 전공하기로 결심한 건 중학교 3학년 때였어요. 저는 흥이 넘치는 아이였어요. 그런데 사춘기가 되면서 성격이 많이 변했어요. 섬세한 성향 때문에 또래 친구들에게 많은 놀림을 당했죠. 상처는… 안 받았던 것 같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내면이 단단한 아이였어요. 마음이 우울해질수록 더 피아노에 매달렸어요. 피아노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마음. 그런 독한 마음이 들었죠.”

최형록은 흐트러짐 없는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독한 마음이라고 표현했지만, 참으로 절박한 마음이었을 텐데. 최형록의 어머니는 아들이 좋은 환경에서 피아노를 배웠으면 했다. 어머니는 다짜고짜 서울예고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물었다. “우리 아들이 피아노를 참 잘 치는데, 그 학교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마침 전화를 받은 분이 음악부의 김재은 선생님이셨죠. 며칠 뒤 어머니와 함께 기차를 타고 김재은 선생님에게 갔어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7번과 리스트 ‘헝가리안 랩소디’ 12번을 보여드렸어요. 초견 테스트도 받았고요. 선생님께서 재능이 있다고, 전공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해주셨어요.”


최형록과 룬?

최형록은 서울예고를 거쳐 서울대 음대에 진학했다. 현재는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음대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껏 그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는 서울대 주희성 교수를 만난 것이다. 

ⓒ황필주(studio 79)/월간객석

“첫 레슨부터 신세계였어요. 이전까지는 그저 열심히, 오래 연습하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주희성 선생님은 내가 왜 음악을 좋아하게 됐는지 일깨워주셨어요. 이후 음악을 대하는 마음에 변화가 생겼어요. 예를 들자면 이 부분에선 이런 마음으로 연주하고 싶어, 이런 것들이요.”

현대인들은 하루라도 쉬면 불안함을 느낀다고 하더라. 특히 어릴 때부터 규칙적인 연습 습관을 들인 연주자들은 더더욱 그러하리라. 최형록 또한 그래 보였다. 최형록은 서울대 졸업 후 1년간 몸과 마음을 정비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단다. 그가 표현하길 ‘쉬는 시간’이라는데, 그 시간이 꽤나 분주했던 것 같다. 그 ‘쉬는 시간’동안 최형록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부소니 콩쿠르,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 연이어 도전했다. 그 시기가 더욱 소중했던 이유는 누나 최효인 덕분이다. 그는 가수로 활동 중인 누나와 함께 블리쉬 녹턴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었다. 

최형록에게는 두 가지 정체성이 있다. 하나는 ‘클래식 음악 피아니스트 최형록’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음악 작곡가 룬’이다. 그는 두 분야에서 같은 이름을 쓰면 왠지 정체성이 스러질 거라고 생각했다. 평소 달을 좋아했기에 ‘룬(Lune)’이라는 가명을 지었다. 룬이 만드는 음악은 몽환적이다. 룬이라는 이름 따라 푸르스름한 달빛 같다고나 할까. 

“누나가 많이 힘들어하던 시기였어요. 우울해 보이는 누나에게 함께 앨범을 내자고 제안했죠. 우린 어릴 적에 항상 같이 노래했고, 피아노를 쳤고, 춤을 췄어요. 제가 만든 곡을 누나의 목소리로 세상에 내놓는다면 너무 뿌듯할 것 같았죠. 2015년 11월, 저예산으로 첫 싱글 앨범을 발매했어요. 유통사 계약부터 작곡, 악기와 보컬 녹음 등 모든 것을 다 우리 힘으로 해냈어요.”

ⓒ황필주(studio 79)/월간객석

지난 6월, 그는 센다이 콩쿠르 우승 소식을 전했다.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그에게는 콩쿠르 도전이 꼭 그랬다. 이리도 고통스러운데 왜 콩쿠르에 나가야 할까. 그는 늘 후회했고, 다시금 도전했다. 

“센다이 콩쿠르 세미파이널이 생각나네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어요. 역시나 많이 떨었죠.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호텔에 돌아와 마음을 비우고 모니터를 하는데, 이상하게 갑자기 눈물이 터졌어요. 힘든 순간이 또다시 날 스쳐갔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었죠. 그날 정말 많이 울었어요.”

최형록은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로 지메르만을 꼽는다. 늘 정교한 연주력, 늘 안정감 있는 무대를 선보이는 지메르만을 닮고 싶다고. 작곡가 중에는 라벨을 좋아한다. 라벨의 섬세한 화성감, 교회선법을 사용한 선율이 마음을 울린다. 언젠가 라벨 전곡 연주를 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통상적인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진정성 있는 연주자가 되고자 한다. ‘최형록’과 ‘룬’을 과감히 분리시킨 그에게 음악은 이토록 진지하다. 음악을 온몸으로 감각하던 한 꼬마. 이리도 진솔한 음악가로 성장하고 있다. 


글_ 장혜선

사진_ 황필주(studio 79)


+ 월간 <객석> 2019년 11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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