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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선 Sunny Jun 17. 2020

받는 기쁨, 주는 기쁨

받는 것에 진심으로 기뻐할 줄 알아야 주는 기쁨도 알게 된다.

요즘 자꾸만 무언가 준다. 나는 얼떨결에 받는다. 주는 것과 받는 것, 더 어릴 적 나에게는 사실 좀 신기하고 생소하게만 느껴지는 일이었다. 독립적인 인격체를 지향하는 부모님의 영향 때문인지, 받는 것을 기대하지도 않고, 그렇기에 주는 행위도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무언가 성의 표시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줄까 말까의 갈래 길에서 '혹시 나도 선물 받고 싶어서 주는 거라고 오해하려나? 왜 뜬금없이 이런 걸 주지하고 부담스러워하진 않을까, 얼마 정도의 물건이 적당할까' 괜히 할 필요도 없는 줄타기 고민만 하다가 지쳐 '에이 그냥 주지 말자!' 하고 마는 편이었다. 


그런 나에게 참 소금 같은 행운이었다. 주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는 것은. 한 친구는 만날 때마다 한 번을 빼먹지 않고 작은 종이가방 안에 본인 집에 있는 것들 중 나에게 필요할 만한 것을 챙기곤 했다. 일본 여행에서 사 온 각종 주전부리부터 시작해서 심지어 속옷 살 때가 되었다는 지나가는 나의 말을 기억하곤 본인이 입지 않는 새 팬티까지도 챙겨주었다. 누군가 내가 없을 때 나의 존재를 떠올리며 고민한 선물들을 받는 게 왜 그렇게나 어색한지, 아무 의도 없는 선의를 그대로 받지를 못했다. 손으로 얼떨결에 받지만 머릿속으로는 '이 사람이 왜 나에게 이런 걸 주지? 나는 아무것도 준 게 없는데. 혹시 나한테 받고 싶은 게 있나?' 하고 계산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베푸는 사람들을 관찰해본 결과,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 단지 주는 행위 그 자체에서 기쁨과 의미를 느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리적으로 보자면 본인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행동인데 그걸 어떻게 기뻐하고 뿌듯해할 수 있을까? 세상에 2-1=3이 되는 공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기꺼이 마이너스를 받아들이고, 받는 사람이 진심으로 기뻐하면 플러스가 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지만 경험이라는 살이 붙으며 태도와 가치관은 조금씩 변하는 듯하다. 어색하게만 느껴지던 손에 얹어진 선물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주는 사람의 마음에서, 손의 온도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감정이 전염되기 시작한 것이다. 입꼬리를 무리하게 올리며 로봇 웃음과 함께 "고, 고마워"로 그쳤던 표현이 "정말 고마워! 너 때문에 행복해. 최고야!"라고 외치기 시작하고, "네가 챙겨 준 너희 어머니 김장 김치 진~짜 맛있더라, 밥만 해서 아무 반찬 없이 김치랑 뚝딱 먹었어."라고 구체적인 후기를 들며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 소중한 선물들을 사진을 찍어 인증샷을 남기고, 널리 널리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번지듯 들었다.


받는 기쁨을 알고 나자 이어 주는 기쁨도 궁금해졌다. 어색하지만 나도 주는 행위에서 따라오는 행복감을 느껴보기 위해 작게는 초콜릿 한 조각씩, 여행을 다녀올 때면 그 지역의 유명한 빵 하나라도 사서 회사 동료과 가족, 주변의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동료들이 오기 전 가장 먼저 출근해서 그들 몰래 책상 한켠에 내 흔적을 남겨 놓기도 하고, 작년 연말에는 나름대로 거금을 들여 기부와 동시에 팔찌를 구매할 수 있는 착한 소비로 친구들에게 연말 선물을 주었다. 가계부에 '선물'이라는 지출 항목이 생기고 넉넉치 않은 잔고에 타격이 있음에도 불구, 걱정은 기뻐하는 상대방을 보자 눈 녹듯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소비에 대한 자책 대신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뿌듯함이 남았다.


아직도 내 것을 더 챙기는 욕심을 내려놓고 타인에게 더 내어 주다는 것이 썩 자연스럽지는 않다. 잘 베풀고 지나가는 말들을 기억해두었다가 딱 필요한 선물을 주는 사람들은 여전히 나에게 놀라움과 새로움을 준다. 사랑에서 나오는 깊은 관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그 선한 마음이 부러워 자꾸만 따라 하고 싶어 진다. 차근차근 변화하기에 앞서 이런 마음도 분명 좋은 신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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