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일도 매일 다르게 하는 나, 루틴 만들기가 가장 어려웠어요.
이제는 한물 간(?), 그래도 여전히 어느 정도 성격 유형 검사의 기반이 되고 있는 MBTI에 따르면 나는 ENFP 유형이다. 일명 재기 발랄한 활동가, 이 유형의 특징은 반복적인 일을 매우 싫어한다. 멋드러진 계획을 하고는 뒷심이 약한 유형, 마무리가 흐지부지가 되기 일쑤인.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저와 비슷한 사람이실까요? 그렇다면 이 글을 통해 ENFP에게도 자기만의 '규칙'이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삶은 유한한 것이지만 참 길다. 때로는 지겹게 느껴진다. 반복되는 일상에 뭐 그리 특별한 일이 일어나겠는가. 눈 뜨면 업무를 시작하고, 퇴근하고, 잠을 자고. 큰 갈래로 보자면 그러한 쳇바퀴 속에서 살고 있다.
일상의 나른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성격 탓인지, 같은 일도 늘 조금씩 바꿔가며 다르게 하곤 한다. 기분 내키는 대로 어느 날 아침은 스트레칭으로 시작했다가, 때론 명상으로 시작했다가. 피곤한 날이면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다 바로 일을 시작하기도 한다.(재택근무라 일을 집에서 시작한다) 그러던 중 나에겐 조금 버거운 난이도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받게되었고, 무한정으로 늘어나는 To Do List에 압도되어 물 한잔 챙겨 먹는 기본적인 일상이 깨어지기 시작하는 나를 발견했다.
진행하는 업무는 온통 처음인 것 투성이었다. 그 일에 대한 예상 소요 시간을 알지 못하니 스케줄링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정해진 마감일에 일을 못 끝낼 것이라는 불안감에 눈 뜨자마자 책상에 앉아 서둘러 엑셀부터 켜대기 바빴다. 한 1달여간, 그러한 일상이 반복되자 끼니를 제대로 챙길 수 없어 살이 빠졌고, 단 한 번도 아프거나 쑤신 적이 없던 허리가 고장 났다. 스트레스는 폭식 아닌 폭식으로 이어지고, 가짜 식욕에 시달리며 그렇게 당기지도 않는 과자를 사 먹고 평소 즐기지도 않던 야식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나름 주 2회 꾸준히 러닝 하며 '건강 전도사'로 활동하던 나였는데 말이다.
나는 '번아웃'이 가장 두려웠다. 아직 새로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해야 할 일, 이루고 싶은 일이 산더미인데 이렇게 빠르게 모든 일이 밉고 싫어져서는 안 되었다. 긴급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실행한 것 중에 마인드 컨트롤에 가장 도움이 된 것은 다름 아닌 <루틴 만들기>였다.
1달여간 유지한 루틴 만들기의 효과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조급함에 쫓기는 마음을 그.나.마 덜어낼 수 있게 되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불안감은 조급함을 만들어 내고, 조급함은 실수를 부르기 마련이다. 실수는 자괴감으로 이어지고. 무언가를 Long-Run 하고자 할 때 이보다 안 좋은 악순환이 있을까. 조급한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루틴의 성공'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그럼 이제, 나의 루틴을 소개한다. 성격상 시간까지 정하며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는 큰 덩어리로 To Do를 굵직굵직하게 정하고, 기분 따라 유연하게 하자!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해야 꾸준히 실행하기 좋다. 나는 평일 아침 / 평일 저녁 / 주말 3가지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
1. 평일 아침
- 이불 정리 : 일어나자마자 즉시 실행한다.
- 10~15분 모닝 스트레칭 : 시간이 길거나 과도한 근력 스트레칭은 피한다. 자는 동안 굳어진 근육을 풀어주고 몸을 가벼이 만들 정도면 된다. 여기서 포인트는, 잘 안 보이는 곳에 있었던 요가매트를 침대 밑으로 옮기는 것이다. 잘 보이는 곳에 두어야 바로 실행하게 된다. 유튜브에 모닝 스트레칭이 엄청 많다. 요가 소년 또는 심으뜸,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골라서 한다.
- 아침 청소: 간단하게 청소기를 돌린다. 원룸이라 5분이면 끝난다.
- 아침 먹기 : 허기짐 정도에 따라 자유롭게 챙겨 먹는다. 저녁에 야식을 먹었으면 마실 것으로 때우고, 저녁을 가볍게 먹었으면 든든하게 누룽지를 끓이거나 오트밀을 먹는다.
- 명상 : 이것은 옵션! 아침에 일어났을 때 왜인지 정신이 개운하지 않고 불안하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명상을 하곤 한다. 마음을 한결 단단하게 해준다. 특히 월요병에 걸리기 쉬운 '월요일'아침에 자주하게 된다. (하루의 시작을 자신감으로 채워주는 '명상하는그녀 - 아침확언' 한 편을 추천한다 링크)
2. 평일 저녁
- 영어 회화 암기 : '네이버 오늘의 회화'를 한 챕터 외우고 밴드 모임에 음성 녹음으로 올리고 있다. 표현도 좋고 난이도도 어려운 수준이 아니어서 20분 정도 집중하면 끝낼 수 있다. 썩 잘하진 않지만 좋아하는 영어의 언어 감각을 꾸준히 유지하고 싶기 때문에 매일 하고 있다.
- 일기 쓰기 : 개인적으로 일기를 꾸준히 쓰고 있다는 것이 가장 신기하다. 늘 1~2일 쓰고 손이 잘 안가던 일기장이었는데, 그날 하루의 감정을 정리하기에 참 좋은 수단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부담가지 않는 선에서 약 15줄 정도 쓰는 중이다.
- 책 읽기 : 정신이 피로해지지 않을 가벼운 내용의 책을 5장~10장 정도 읽는다.
3. 주말
- 러닝 1회(3~5K)
- 가고 싶었던 장소 1곳 다녀오기
- 주중 읽을 책 고르기
- 대청소 : 주중에는 청소기로만 한다면,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걸레로 전체적으로 닦아준다. 화장실과 부엌도 락스/천연 세제를 이용해 청소한다. 주중에 모르는 척 묵혀두었던 때를 벗겨내는 과정이다.
- 월간북스 독후감 업로드: 친구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독서 모임이다. 주중에 읽었던 책 중 인상 깊은 구절을 공용 인스타그램 계정에 게재한다.
이 정도로 나의 루틴을 소개할 수 있다. 루틴을 정할 때 원칙은 1.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거나 힘이 드는 활동은 반드시 지양 2. 컨디션 안 좋을 때 자체 스킵하더라도 나 자신을 너무 혼내지 말기! 잘해야 한다, 꾸준히 해야 한다라는 압박감을 가지기 시작하면 루틴도 '숙제'가 되어버린다. 하루 빼먹을 때마다 마음의 짐이 생기고 나 자신이 싫어지는 것이다. 루틴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 합리화'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날 업무가 너무 피곤해서 영어 회화 암기를 스킵하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주자. 일기장에 '오늘 네가 너무 피곤했지, 내일은 꼭 해보자!'하고 격려로 마무리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저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는 거지
언젠가 엄마와의 산책에서 엄마가 스쳐 지나가듯 했던 말이었다. 나에게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는 것은 루틴을 정하고 그 루틴을 따르는 것이다. 단순한 행위들이지만, 생각보다 큰 '루틴의 힘'을 경험하고 있다. 연말까지 이 루틴을 잘 지켜서 전후 비교를 하는 것이 지금 나의 목표 중 하나다. 업무는 여전히 버겁지만, 이렇게 일상의 루틴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궁금하다. 2020년 올해의 연말 정산을 하면서 한번 더 후기를 올리고 싶다. (이렇게 적어둬야 내가 하겠지? 응원해주세요 여러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