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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선 Sunny May 26. 2022

살아있음을 누릴 의무

ep. 108. Moana OST - How Far I'll Go

지난 4월, 생일을 맞아 구례 지역에 여행을 다녀왔다. 주기적으로 여행을 다니는데도 '생일 여행'은 확실히 기분이 남다르다. 들뜨고 흥분된다. 세상에 처음으로 존재했던 그 시간이 또 찾아왔다는 특별함, 세상에 대한 첫인상은 기억할 수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계절에 첫눈을 떴다는 게 마냥 행복하다. "그렇지, 이게 살아있다는 거지"


나는 에어컨 바람 느껴지는 사무실 안이 아닌, 푸른 생명력이 차고 넘치는 '천 개의 향나무 숲' 안에 있다. 길을 따라 걷다가 기분에 따라 손을 휘저으며 춤추기도 하고 노래도 흥얼거리고. 외부와 차단되어 온전하게 주어진 내 시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린다. 그리고 저녁 숙소에서 어쩌다 마주친 사람들에게 새로운 관점의 이야기를 들으며, 몰랐던 세계에 번쩍 뜨이는 눈과 세포를 느낀다. 이런 순간들이 나는 우주와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살아있기에 지금을 누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살아있기에 볼 수 있는 푸르고 아름다운 것들의 조화



나는 타고난 것 반, 노력 반. 긍정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웬만하면 행복하다고 느끼는 유형의 사람이다. 가끔 사고를 치는 성격 덕분에 일상이 예기치 못하게 다사다난 하긴 해도 웬만큼 힘든 일에는 큰 감정적 상처나 깊은 우울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대체로 극복 가능했으며, 찰나의 괴로움은 여기저기 떠들다 보면 금세 해소되는 편이었다. 원하는 건 바로 가지거나 곧잘 실행해버리고 마는 편이라, 친구와의 만남, 가족, 주변에서 소소하게 위안을 얻을 수 있는 행복의 경로도 충분히 존재했다. 이러한 긍정적인 성향을 감사하기만 해야 할까?

아이러니하게, 그래서 무언가 부족했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좇으며 살아야 할까?


불행한 건 아니지만 왜인지 공허하고, 무언가 2% 부족했다. 크게 힘든 건 없지만 그렇다고 벅찬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다른 이들은 '로또에 당첨되고 싶다', '스포츠카를 가지고 싶다'며 각자의 욕망을 품는데, 나는 절실한, 강렬한 욕구가 생기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왜, 어떻게 해서 그런 마음이 드느냐'라고 되묻기만 했다. 이유를 들어도 썩 이해가 되진 않았다. 그렇다고 억지로 그런 척, 하고 살기는 싫었다.


나는 어떤 욕망에 이끌리는 사람일까? 어떤 것을 추구하면서 살면 좋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번 여행에 다녀오고 나서 어렴풋 깨달은 것 같다. 그냥 행복하다, 말고. '살아있다는 느낌, 이 세계에 나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기분'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에서 "사랑만으로 부족해, 나를 추앙해요"라고 했듯, "행복만으로 부족해, 살아있다는 느낌이 필요해요."라고 비유하면 적절하려나. 행복 그 이상, 더 높은 차원의 갈구함. 사랑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충족해줄 수 있는 것이 '추앙'이라면, 나를 가득 채워줄 수 있는 감정이 '살아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자주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는가
어떤 순간에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가

편견이나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롯이 내 생각대로, 주관을 가지고 표현하고 움직일 때,

존재감을 표현하고 내 가능성을 인정 받을 때,

사람을 만나 내 사고가 확장되고 서로가 연결되는 기분을 느낄 때,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꽃과 돌, 하늘, 노을. 봐도 봐도 신기하고 경이로운 자연 속에 존재할 때.




돌아보니 그랬다. 그리고 사진첩을 들춰보니 감사하게도 꽤나 많았다. 이 기분을 깨달은 후, 삶의 목적이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선명해졌다. 감각이 예민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푸른 여름, 자연 그대로의 음식들, 러닝, 에너지, 햇빛, 책, 사람과의 교감...' 마음이 가는 것들을 하나로 정의할 수 없었던 거지, 나는 이미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최근에 이야기 나누고 싶었던 주제로 커뮤니티 모임도 결제하고, 더 자주 가족들을 만나러 가고,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순간 순간에 집중하고,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도 솔직하게 마음과 감정을 표현하며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도 조금 더 과감하게, 적극적으로 나로서 존재해야지 하며.



https://youtu.be/cPAbx5kgCJo

푸른 바다를 누리며 자신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모아나가 좋았던, How far I'll Go.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 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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