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22 MFSB - K-Jee
지난 주말, 인천 차이나타운의 번쩍이고 흥겨운 우연을 기억한다.
애인과 나는 월미도에서 놀다가 언젠가 음식 프로그램에 나왔던 '하얀 짜장면'이 먹어보고 싶어서 생애 처음으로 인천 차이나타운을 갔다. 하얀 짜장면은 춘장과 같이 콩이 베이스지만 검은 짜장면보다 담백한 맛이었다. 충분히 맛있는데 왜 대중화되지 못했을까 생각하며 화덕에 구웠다는 시그니처 메뉴, 만두까지 주문했다. 맥주 한잔 할까 했는데 아니야, 오늘은 그냥 쉬어가자 하고 음식에 집중하기로. 마침 우리가 만두를 주문하고 나자 다른 테이블에서 "오늘 만두 끝났어요?" 라며 크게 아쉬운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도 산책을 더 하다가 밥 먹을까 했었는데... 억세게 운 좋은 날이었다. 만두가 특히 너무 맛있어서 왠지 모르게 복권 3등쯤 당첨된 기분으로 만족스러운 저녁이었다. 부른 배를 통통거리며 산책 중에 발견했던, 유난히 맑고 깨끗한 하늘에 노을이 잘 보였던 어느 건물의 주차장으로 향했다.
투명한 노을빛이 건물을 빛내며 예쁜 색감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차이나타운의 지대가 살짝 높아서 하늘의 중심에 있는 것 마냥 착각이 일었다. 나는 이런 풍경이면 충분하다고, 애인에게 너스레를 떨며 넋이 나가서 가만히 보고 있는데 어딘가 아래에서 조용한 차이나 타운의 거리와, 그리고 감상에 빠진 내 기분과 어울리지 않게 EDM 베이스의 쿵짝이는 음악이 계속 들리는 것이다. 잘못 들었나? 코로나의 여파인지 저녁의 차이나 타운은 식당을 제외하고는 한적한 편이었다. 대부분 가족 단위의 손님이었다. 그런 곳에 이태원스러운 이 세련된 사운드는 뭘까, 호기심 세포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계속 엿듣고 있다가 이건 아무래도 궁금하다 싶어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내 호기심에 의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발걸음 가벼운 나를 애인이 군말 없이 이해해주어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정말 그곳에 4~5개의 축제 천막이 있었고, DJ가 턴테이블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재즈와 펑크를 번갈아 가며 틀어주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박스 한가득 중고 LP를 판매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조용한 거리와 상반된, 자유로움이 듬뿍 느껴졌다. 소규모 축제에서만이 느껴지는 유니크한 분위기도 있었다. 안 그래도 디제잉을 실제로 본 지 너무 오래되어 한번 느껴보고 싶다고 회사 동료들과 이야기 나누었던 그런 때였는데, 역시 오늘은 억세게 운이 좋은 날이 맞았다.
여기서부터는 75년대의 신나는 디스코 음악과 함께 읽어보세요! :)
그날 음식도 맛있었고, 처음으로 가 본 월미도 구경도 좋았지만 뭔가 집에 가기엔 2% 아쉽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음악의 향연은 나의 눈과 귀를 번쩍, 들뜨게 만들었다. 2% 이상 채워주고도 남았다. 우리는 반전의 분위기에 적응할 새 없이 금세 음악에 빠져들었다. 빈 테이블에 자리 잡고 '지금 이 분위기에 맥주를 참는다고? 말도 안 되지' 아까 식당에서 마시지 못한 맥주를 대신한다는 핑계로 병맥주를 사 와서 디제잉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음악을 취미 삼아 만드는 회사 동료에게 들은 얄팍한 디제잉 지식을 애인에게 전하며 신나게 떠들었다.
우리는 둘 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취향은 조금 다르다. 나는 미디엄 템포의 얼터너티브한, 실험적인 팝송을 좋아하고 멜로디 위주로 듣는 편이다. 애인은 팝과 국내 음악 가리지 않고 특유의 신나고 활기찬 분위기의 빠른 템포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가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노래는 취향 목록에서 탈락되기도 한다. 아쉽게도 우리의 플레이리스트와 각자 음악의 흥을 만드는 버튼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그런데 이 날 디제이가 틀어준 음악은 귀에 익숙한 노래 반, 새로운 노래가 반이었는데 느낌 있게 빠른 하우스 펑크 위주로 편곡하며 우리 둘의 어깨를 동시에 들썩이게 만들었다. (조금 더 전문적인 용어로 표현하고 싶은데 음악적 지식이 너무 부족한 점을 이해해주시길) 우리는 여러 면의 취향에서 다른 점이 많은데, 그래서 귀한 교집합의 순간을 발견하면 참을 수 없이 짜릿했다. 이 음악이라면 우리 둘 중 하나 섭섭하지 않게 함께 즐길 수 있었다! 조만간 이런 음악이 퍼지는 디제이 바에 가자고 말하며 박자에 맞추어 몸을 흔들고 분위기를 즐겼다. 멜론 플레이어의 음악 찾기 기능을 켜서 나중에 따로 듣고 싶은 노래도 담았다. 오랜만에 음악으로 하나 되는 그런 느낌.
그리고 그곳에 음악으로 하나 되는 사람이 우리만 있는 건 아니었다. 손을 꽉 잡고 서로를 마주 보며 흥을 돋워주는 춤추는 엄마와 딸도 있었고, 거나하게 취했지만 비트에 맞게 몸을 흔드는 아저씨도 있었다. 심지어 우리 바로 옆 테이블에는 임산부분이 아기를 앉은 남편과 함께 음악에 흥겹게 몸을 흔들고 계셨다.
아니, 이런 아무 말도, 크게 뚜렷한 주제도 없는 행사에서 음악 하나로 이렇게 다채로운 세대와 모양의 사람이 모여 즐기고 있다니. 그것도 몸의 세포가 자동 반응하는 모습으로. 애인과 나의 취향 따위를 논할 일이 아니었다. 그보다 몇 배는 경건한, 음악의 위대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자!
Daning for borderless world
-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 슬로건
어디선가 보고 '슬로건이 정말 좋다'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작고 큰 갈등을 겪다 보면 사람에게 선을 그어야 할 일 투성인데 춤을 추자니, 그보다 멋진 화해의 표현이 있을까? 축제를 자주 찾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물론 무대도 좋지만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빠져들어 하나가 되는 기분을 좋아한다고 했다. 축제를 찾아다니는 편은 아니지만 어렴풋이나마 어떤 느낌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같은 비트를 들으며 어깨를 동시에 흔드는 것 만으로도 그래 네 마음이 곧 내 마음이지, 하는 느낌. 어쩌면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건 음악이고, 춤이 아닐까. 온갖 집단의 갈등과 싸움이 잦은 그런 시대에 음악과 춤과 같은 소통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는지. 막연하지만 그냥 그 모든 장면을 바라보며 떠오른 생각이었다. 적어도 내 플레이리스트 한 켠에, 춤을 추기 위한 노래를 보관하고 있어야지 하며 많은 음악을 담아 두었던 그런 밤이었다.
*피스트레인은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 한국 강원도 철원 DMZ 일원에서 개최되는 평화를 노래하는 음악 페스티벌이라고 해요. 1년에 단 5일, 피스트레인에서 만큼은 “음악을 통해 정치, 경제, 이념을 초월하고 자유와 평화를 경험하자”라는 취지로 만들어졌습니다. 10월 1~2일 2022년 축제가 시작되니 관심 있으신 분은 둘러보세요! :) (https://dmzpeacetrain.com/index)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 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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