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32. 편지 - 김광석
당신은 글을 쓰는 사람인가?
혹 가끔이라도 글을 쓴다면, 이 글을 읽을 누군가를 생각하며 쓰는 편인가? 혹은 그저 하고 싶은 마음속의 말들을 타이핑하면서 누가 읽든, 안 읽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편인가.
둘 중 어느 하나 정답은 없다. 읽히든 안 읽히든 글의 주인은 온전히 '쓰는 사람'의 것이고, 그 쓸모를 생각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도 오롯이 그 사람의 몫이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읽는 이를 크게 생각하지 않는 편에 속했다.
최근 글쓰기에 대한 책이 눈에 밟히기에 2권째 읽고 있다. 정지우 작가의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라는 뼈 아프게 공감되는 제목의 책을 읽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는 중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글에 관한 주제보다 그의 에세이 스타일을 좋아해서 읽은 것에 가깝지만, 어쨌든 두 권의 책은 모두 글을 쓰는 사람이, 글쓰기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나는 수플레를 제외하고는 글을 많이 쓰는 편은 아니다. 작은 지렁이가 꾸물 꾸물 모여있는, 내킬 때 막 휘갈겨 쓴 일기가 있고, 핸드폰 용량이 모자라 기록하는 주 1회의 블로그 포스팅이 있다. SNS에 글을 쓸 때 괜스레 평균보다는 조금 긴 감상평을 남기고 싶어 하는 정도?이지만 글쓰기에 매우 진지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늘 언제나 마음 저 편에는 '쓰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다. 꾸준하게 글을 쓰고, 하고 싶은 말을 간결하면서도 멋진 문장으로 표현해 내는 사람이 부럽다.
"글쓰기 수업을 한번 들어볼까 봐요"
"글 쓰는 게, 배우는 것이 가능할까요?"
듣고 보니 그런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친한 친구 한 명도 독립 서점의 한 프로그램을 통해 유명 작가에게 글쓰기 수업을 들었는데 생각보다 얻는 게 많지 않아서 돈이 조금 아까웠다는 후기를 들었다. 글도 하나의 창작, 표현의 예술인데 노하우나 각자의 팁은 있겠지만 어떠한 방법론이 존재할 수 있는 걸까? 누군가에게 배울 수 있는 걸까?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앞서 말한 작가의 2권의 책도 글쓰기 기술이 보다는 '쓰는 마음'에 대해 주로 말한다.
세상에 내어놓는 글들을 허투루 쓴 적은 없다. 책이 적게 팔리든, 칼럼이 거의 읽히지 않든, 그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는 한 사람은 반드시 있다. 그게 수십만 수백만 명이 되면 더 의미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몇백 명이나 몇천 명에 불과할지라도, 결코 의미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나둘 찾아가는 인연들이 더 신비롭다. 누군가에게는 닿는다. 내가 가장 밀도 있는 순간들로 써 내려간, 나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 믿었던 그 시간을, 그와 같은 밀도로 받아들이고 있는, 고요한 밤에 읽어 내려가고 있는, 내가 있던 그 쓰기의 시공간에 함께 속하게 되는 한 사람이 있다.
/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정지우
우리의 머릿속에는 큼직한 캐비닛 설비가 있습니다. 그 하나하나의 서랍에는 다양한 기억이 정보로 채워져 있습니다 (...) 상상력이 내 의지를 벗어나 입체적으로 자유자재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입니다. 소설가인 나에게 그 뇌 내 캐비닛에 담긴 정보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하기 어려운 풍성한 자산입니다.
일상적이고 소박한 재료밖에 없더라도, 간단하고 평이한 말밖에 쓰지 않더라도, 만일 거기에 매직이 있다면 우리는 그런 것에서도 놀랍도록 세련된 장치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미국의 금주 단체 표어에 '하루씩 꾸준하게'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야말로 바로 그것입니다.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게 다가오는 날들을 하루하루 꾸준히 끌어당겨 자꾸자꾸 뒤로 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묵묵히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일어납니다.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두 작가의 '쓰는 마음'을 슬쩍 엿보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 것은,
1. 내 글 뒤에 한 명이든, 천 명이든 타인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보는 것
2. 일상적이고 소박한 재료를 가져다 나만의 상상력을 더해 매직을 만들어 보는 것
"우리 글 한번 써볼까요?" 하면 글에 친숙하지 않은 누구나 '헙' 하고 겁을 먹을 것이다. 나 역시도.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권한 것처럼 작게 피어나는 상상력에 기대어 보고, 그에 자연스럽게 묻어날 내 일상 속 소박한 재료들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상상력까지는 모르겠다만 일상 속 소재를 찾는 것은 조금씩 시도해보고 있다. 주변에서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하면 나만의 글감 보관소에 차곡차곡 쌓으며 캐비닛을 만들고 있다.
그보다 나에게 정말 어려운 것은 글 너머 '타인의 존재'를 생각하는 것이다. 아직은 글을 쓰면서 진지하게 읽는 이를 생각하고, 그에게 닿을 영향력을 고려한 적은 없다. 나에게 어울리는 문체를 찾고, 내 안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하는 단계. 음, 그러니까 아직은 사회성을 기르지 못한 어린이에 머물러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읽히는' 글을 쓰게 될까? 어떤 것이든 성장 단계가 있는 법이니 나에게도 그런 여유가 생길지 모른다. 그리고 생기면 좋겠다. 꼭 글이 읽힘으로써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지사 나도 그런 글을 쓰게 되면 좋겠다. 아무래도 누군가 본다고 생각하면 그 정성에 힘이 조금이라도 더 실리기 마련이니까. 글 쓰는 행위를 통해 내 안의 맥락을 정돈함과 동시에 글 건너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게 되는 때, 짧은 호흡이 아닌 조금 긴 호흡을 가지면서 쓰는 글. 언젠가는 내 손에 잡히는 한 권의 책을 만들고 누군가의 집 앞에 배송되는 순간도 상상해본다.
정지우 작가는 '자신의 시선'으로 '자신만의 맥락'을 쓸 필요가 있다 말한다. 그저 길가에 핀 꽃이 예쁘다, 아름답다, 알록달록하다,라고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 꽃이 왜 그날, 그 순간, 그때의 나에게 아름답게 보였는지 써 보라고. 무언가 글을 쓰게 된다면 정보를 전달하는 전문성 있는 콘텐츠보다는 평소 재미있는 시선과 생각을 담은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강렬한 생각이 있다. 어떤 영역에서는 충분히 매력적인 내 시선을 무기 삼아 타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지 차근차근 고민해봐야지. 그들처럼 나의 마음에도 글쓰기를 위한 공간을 조금 내어주어야겠다.
다행히, 이번 글을 쓰면서 이전보다는 한결 글 쓰는 것이 가벼워진 내 마음을 느꼈다. 그것만으로도 나의 '쓰는 마음'이 한 단계 성장한 것이라 믿으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해본다 :-)
오늘은 '쓰는 마음'이라는 주제와 함께 김광석의 '편지'를 함께 전합니다.
여러분은 마지막으로 편지를 쓰신 기억이 언제인가요?
저는 아마 작년 크리스마스에 남자 친구에게 장난처럼 쓴 편지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요. 어느새 1년이 다 되어 가네요. 편지도 하나의 글이라 그런지, 저는 편지를 잘 쓰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부럽더라고요.
편지 쓰는 게 어려워 가끔 인터넷에 잘 쓴 편지 예시를 찾아보기도 했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있었던 소박한 감사한 일 하나와 내 진심 한 스푼이면 충분히 좋은 편지를 위한 재료가 되는 것 같아요. 나만의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연말을 맞아 편지를 쓰면서 쓰는 마음을 연습하면 좋을 것 같네요.
연말을 맞아 춥지만 더욱 풍성해질 당신의 일상을 응원합니다 ;-)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