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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선 Sunny Dec 05. 2024

8년만의 영어 공부

Shakespeare speaks Shakespeare.

아침에 40분을 걸어서 스타벅스로 왔다. 찬 바람 잔뜩 마시고 어쩐지 오늘은 오전을 카페에서 보내고 싶은 마음에. 걷는 길에 평소와 달리 영어가 잔뜩 적힌 A4용지를 몇장 들고 중얼 중얼 거리면서 도착했다.


거의 8년만이다. 이렇게 영어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게 된건. 요즘엔 자주 보진 못하지만 미드를 즐겨 보고, 세상살이에 도움되는 것을 떠나서 읽고 듣고, 부드러운 느낌의 그 감각 자체를 좋아했다. 여행으로 뉴욕을 갔을 때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도란도란 주고 받는 대화만 들어도 기분이 좋았다. 그냥 잘하고 싶고, 계속 곁에 두고 싶은 언어다.


수능도 6등급이었던가, 8등급이었나. 누가 시켰나 싶을 정도로 공부를 안하다가, 대학생 때 1개월 말레이시아로 다녀온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영어를 접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에 졸업 후 1년간 영어 학원에 아침 6시부터 10시까지 머무르며 공부에 몰입했다. 어떤 방향성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딘가 집중해서 어린 아이가 언어를 처음 배우는 듯, 몰입감 자체가 좋았다. 본격적으로 영어로 일을 한다거나, 산출물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니지만 오픽 자격증 중 2번째로 높은 레벨  IH(intermediate high) 만 따고 취업을 하며 생에 첫 집중했던 시간은 그때로 끝났다.


이후에도 간간히 영어 오디오도 들어보고, 자막없이 영화 보기도 시도했지만 좀처럼 집중되지는 않았다. 그러다 얼마전에 신혼 주간을 즐길 겸 갔던 포시즌스 호텔 카페에서 40대로 추측되는 분이 1:1 언어 과외를 받으시는 것을 보고 (아마 프랑스어나 독일어, 였던 듯) 환경이 느슨해지면 좀처럼 진도가 안나가는 나에게 저 방식이 맞을수도 있겠다 싶어서 집으로 돌아와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전에 베이스를 배울 때도 그랬지만, 뭔가 배울 때 이동 거리를 신경쓰는 편이다. 이동 시간이 길면 거기서 부터 에너지가 소진되어 막상 배울 때는 살짝 지치기도 한다. 걸어도 충분한 가까이에서 배우는게, 어떤 선생님에게 배우느냐보다 중요한 것 같아서 당근으로 동네 과외 선생님을 알아봤다. 어떤 목적으로 영어를 배우는지, 수준이 어느정도인지 자세히 여쭤보시면서 자료까지 미리 보내주시는 태도에 일단 감동하고 어제 처음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1) 일단 영어 자체를 좋아하고 2) 25년에 해외 클라이언트나 프로젝트를 하게 될 것 같아 비즈니스 영어를 하고 싶다. 라고 말씀드렸다. 회화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선생님의 첫 인상은 그야말로 선생님 그 자체. 성인이 되고 선생님을 만나니 살짝 어질한 느낌? 눈빛에 깐깐함과 꿰뚫어봄이 느껴져서 처음에는 짐짓 놀랐다. 몇가지 영어를 공부하는 이유와 수준에 대해 여쭤보시더니 10장짜리 프린트 교재를 주시면서 "읽어보셔요" 하셨다. 영국에서 일하고 공부를 하셔서 영국 발음으로 멋지게, 차분함/강조 발음을 알려주시며 수업을 내내 이어갔다. 2시간동안..! 몇가지 기억에 남는 건.


- 조급하지 말자. 영어도 모르고 그 와중에 해석하면서 읽으려니 헉헉 숨차면서 읽어댔다. 원어민의 영어 속도에 맞추고 싶은 욕심이겠지. 그럴 필요 없다고, 한단어 한단어 힘주어 천천히 읽는 연습을 하자고 하셨다. 

- 구동사(phrasal verbs)의 중요성. 영어는 특히 구동사를 잘 알면 능숙해보이고 할수 있는 표현이 많다. english in use 책을 추천해주심.

- 영어를 하면 '영어를 한다'라고 의식적으로 티를 낼 만큼 발음을 유연하게 하도록 노력하자. 발음이 무조건 좋아야 한다는 아니지만, 비즈니스 영어인만큼 상대의 신뢰와 자신감을 얻기 위한 장치

- 마케팅을 업으로 한다고 하니 아티클을 모두 마케팅에 관한것으로 너무 좋은 글을 찾아와주셨다. 어쩌면 기본이겠지만 당장 업에 써도 좋을 표현이 많아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 계속 읽고, 자연스럽게 영작을 시켜주시는 것. 이제 '요약'의 시대다. 쏟아지는 수 많은 정보 속에서 잘 요약하는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다. 아티클을 함께 읽고 질답을 통해 요약하고 정리하는 능력을 스스로 기를 수 있게 가이드 잡아주셨다.

- Shakespeare speaks Shakespeare. 셰익스피어 원서를 읽고 외운 사람의 영어는 표현이 매우 뛰어나다고. 좋은 자료를 읽고 외우자



고등학교 선생님이 생각나는 포스로, 엄격하게 수업을 진행해주시면서도 중간 중간 귀여운 모습이 보이셔서 참 좋았다. (사람 좋아하는 나.. 좋아하면 능률 N배 올라가는 편) 아직 첫번째 수업의 시작이고, 숙제도 가득 받아왔지만.. 시끄러운 카페에서 한 단어 단어에 힘주어 읽었던, 오랜만에 영어하는 나의 모습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오늘 저녁에는 영어 단어장 사서 하나하나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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