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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선혜 Apr 26. 2019

더하기보다 어려운 빼기

덜어내서 얻어진 것들


아이가 태어난 2012년 여름부터 3년 동안. 나는 복잡한 미로 속에서 갇혀 있었다. 생전 처음 가보는 길을 헤매다 엉엉 울었다. 배가 고파 쓰러질 것 같은 때도 있었다. 같은 자리를 맴돌기도 했고, 다 왔다고 생각했을 때 막다른 골목을 만나 좌절했다. 조바심이 났다. 빨리 목적지로 가고 싶은데, 길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는 처음 3년은 그런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암 선고를 받았다. "언제까지 나는 애만 보고 있어야 돼?"라는 한탄이 "언제까지나 내 아이를 볼 수 있다면"으로 바뀌었다. 내용에 상관없이 습관적으로 틀어 놓는 일일드라마 같던 하루가 아껴보고 싶은 웰메이드 드라마처럼 느껴진 건 그때부터였다.


미로의 끝만 찾아 헤매던 내가 잠시 멈춰 지나온 길을 되돌아봤다. 분명히 한 치 앞이 안보이던 미로 속이었는데, 그곳은 그저 구불구불한 산책로일 뿐이었다. 푸른 나무, 향기로운 과일, 예쁜 꽃들이 피어 있었다. 여유롭게 걸었다면 즐거운 산책이었을 텐데, 뭐가 그렇게 나를 불안했을까?


백명의 아이가 있으면 백명의 엄마가 있다. 그리고 백가지의 육아법이 있다. 어떤 육아법이 절대적으로 우수하고,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진리는 아니다. 그러나 수많은 책과 방송, 옆집 엄마까지 나서서 "아이는 이렇게 키워야만 한다"라고 정답처럼 말한다. 그때마다 불안했다. 죄책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회식자리에서 얘기해보니 애들을 죄다 영어유치원에 보냈더라"라고 말하는 남편 말에 밤새 뒤척이기도 하고, "엄마 나는 친구가 없어"라며 속상해하는 아이를 대신해 내가 나서서 누구든 붙여주고 싶었다. 아이 대신 준비물을 챙겨주고, 공부하라고 재촉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더하는 건 참 쉽다. 속사포로 랩 하듯 잔소리하기 vs. 입 꾹 다물고 기다려 주기. 잘 안된다고 징징거리는 아이 대신해주기 vs. 스스로 해낼 때까지 지켜 봐주기. 친구랑 다투면 나서서 바로 해결하기 vs. 다투고 화해할 때까지 기다려 주기. 이 둘 중에 전자가 후자보다 몇 배 더 쉽고 빠르다.


하지만 빠르게 해서 뭘 얻을 수 있을까? 엄마가 주인공인 삶에서 아이는 행복할까? 아이가 아이 인생의 주인공이 되려면 아이의 속도대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어른의 눈에 조금 느리고 서툴러도 결국 아이는 해낸다. 기다려 주기만 하면.  


사실 '빼기 육아'를 실천하기 위해서 무조건 참으려고만 하면 실패하기 쉽다. 먼저 내가 덜하면서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그렇게 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아이한테 욕심과 편견, 잔소리를 빼고 나면 평화가 온다는 걸 믿어야 한다. 그리고 불안이 고개를 내밀 때 나부터 다독여야 한다. 오늘도 나 역시 마음속으로 주문을 건다. '난 살아있기만 해도 충분해. 뭘 더해주는 게 좋은 엄마가 아니야. 기다려주자. 지켜 봐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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