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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선혜 Apr 26. 2019

식물처럼 아이 키우기

마음에 나이테를 세기다

우리 엄마는 그린핑거다.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을 '그린핑거(green finger)'라고 한다.  죽어가던 식물에 활기를 불어넣고, 특별한 거름 없이도 초록으로 잎을 물들인다.


우리 집에는 화초와 나무가 많았다. 비닐하우스에 사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집안이 늘 푸르렀기에 식물은 창가에 두기만 하면 잘 자라는 건 줄만 알았다.


결혼해서 첫 집을 장만하고 내가 제일 먼저 산건 식기세척기도, 김치냉장고도 아닌 '고무나무'였다. 나는 전셋집을 전전하면서 화분 하나 두지 못해 아쉬웠다. 내 집이 아닌 곳에서 식물을 키우는 게 불편했기 때문이다. 나무가 집에 뿌리내리고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인터넷에서 '고무나무'를 검색해서 한 달에 물은 몇 번 줘야 하는지, 주의사항은 없는지 공부했다. 정해진 때가 되면 꼬박꼬박 물을 줬고, 영양제도 꽂아 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초록빛이 시들어갔다.


집들이 선물로 받은 선인장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손쉽게 키운다는 선인장이 만지면 물렁거리고 색 누렇게 변했다. 심지어 아이가 유치원에서 가져온 강낭콩 싹조차 지켜 주지 못했다.


그때 처음 동물보다 식물을 키우는 게 더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식물은 물이 부족해도, 더워도, 추워도 내색을 하지 않으니까. 묵묵히 내 손길을 기다리기만 하니까.


답답한 마음에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물도 꼬박꼬박 주고, 햇볕 잘 드는 창가에 뒀는데 우리 집 나무는 다 시들어버렸어.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잘 키워?"

비법은 간단했다.


"네가 물을 꼬박꼬박 주니까 그렇지. 며칠에 한번 물 주기 같은 규칙을 정하지 마. 가끔씩 들여다보면서 잎사귀를 확인해봐. 집마다 환경이 달라서 화원에서 하라는 대로 물 주면 탈 난다. 물 너무 많이 주면 뿌리가 썩고, 물이 부족하면 잎이 말라.


그리고 식물은 너무 강한 햇볕싫어해. 원래 햇볕이 강하면 잎이 타고 부족하면 색이 안 예뻐. 그런데 무슨 식물을 그렇게 열심히 돌봐?" 그냥 적당히 키워!"


나는 깨달았다. 너무 교과서대로 키운 게 문제였다. 정해진 뉴얼만 따랐을 뿐,  정작 내 식물의 상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속이 썩고 있는 줄도 모르고 때가 되면 물을 잔뜩 줬다. 잎이 타는 줄도 모르고 해가 내리쬐는 창가에 뒀다.


열심히 하려고 한 게 오히려 화근이었다. 매뉴얼대로 키우려다 멀쩡했던 식물이 병들었던 셈이다. 그때 아이가 떠올랐다. 아이도 식물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 네댓 살 때쯤, 육아책을 참 많이도 읽었다. 우리나라에 유명하다는 아동심리학자와 교육자의 책은 모조리 읽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전문가가 지시하는 대로 했는데, 정작 내 아이는 변화가 없는 것 같았다. 그저 예민했고, 밤마다 자다 깨서 울었으며, 낯을 심하게 가렸다. 조바심이 났다. 그럴수록 책에 파고들며 자책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의 매뉴얼대로 하면 아이가 달라질 거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식물도 매뉴얼대로 자라지 않는데, 아이는 오죽할까? 집마다 환경과 상황이 다른데 매뉴얼을 그대로 적용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이가 잘못되길 바라면서 키우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잘 키우고 싶어서 전문가의 조언을 따르고, 선배의 충고를 듣는다. 중요한 건 그들이 내 아이의 엄마 아니라는 것이다.


내 아이의 엄마는 나다. 이 단순 명확한 사실을 깨닫고 나니 육아법에 대한 집착도 사라졌다. 책을 덮고, 방송을 끄고 아이를 봤다. 아이의 눈을 보고,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토요일 오후 아이와 서점에 갔을 때 일이다. 우리는 책을 읽으러 도서관 대신 서점에 간다. 도서관은 책 표지가 보이지 않아 아이가 직접 책을 고르기 어렵다. 목소리를 조금만 높여도 옆 사람에게 방해될까 신경도 쓰인다. 서점은 아이가 책 표지를 보고 스스로 고를 수 있어서 좋고, 음악이 나와서 더 편하게 책을 읽어줄 수 있다. 아이는 그날도 쉴 새 없이 책을 날랐다. 다 읽으면 부리나케 가서 제자리에 두고, 다시 책을 골라 오길 반복했다.

 

두 시간 가까이 서점에 있으니 힘이 쭉 빠졌다. "집에 갈 땐, 버스 타고 가자." 충분히 걸어갈 만한 거리지만, 힘들어서 어쩔 수 없었다. 마을버스를 타서 내리는 문 앞 쪽에 얼른 아이를 앉혔다. 나는 서 있었다. "엄마, 우리 저쪽에 가서 앞뒤로 앉자." 아이는 타는 문 쪽을 가리켰다. "여기가 내리기 더 편한데, 그냥 앉지." "엄마가 서있으니까 내가 마음이 불편해서 그래. 우리 같이 앉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앞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앉자마자 고개를 돌려 나를 본 아이가 방긋 웃었다. "역시, 이렇게 앉으니까 마음이 훨씬 편하네."


언제 이렇게 큰 걸까? 조금만 걸어도 힘들다고 안아 달라고 조르던 아이. 언덕길을 안고 오르다가 엄마 너무 힘들다고 제발 걸어가라고 하면 주저앉아 울던 아이. 그 아이가 언제 이렇게 자라서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게 된 걸까? "엄마가 힘들면 내 마음도 힘들다"는 말이 어떤 영화 속 대사보다 감동적이었다.


가끔 아이가 훌쩍 큰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나는 그때 아이에게 "우리  마음에 '나이테'가 생겼네"라고 말한다. 나이는 일 년마다 꼬박꼬박 먹을 수 있지만, 마음의 나이는 규칙적으로 늘지 않는다. 성인인데도 어린애 같은 사람도 있고, 어린데도 사려 깊은 사람이 있는 건 마음속 나이테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건 식물을 키우는 것과 같다. 싹이 트고 잎이 나는 건 그저 자연의 섭리인 것처럼, 자라는 건 아이의 일이다. 내가 억지로 잡아당긴다고 쑥쑥 크지 않는다. 눈에 보이진 않을지언정 아이 마음속 나이테는 하나 둘 늘어간다.


나는 '그린핑거'가 되기 위해 조바심 내지 않으려 한다. 어느 날 싹이 돋아 있는 화초처럼, 갑자기 쑥 자란 것 같은 나무처럼 아이는 적당한 무관심 속에서 더 잘 큰다고 믿는다. 오늘도 햇살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를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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