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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선혜 Apr 26. 2019

엄마 필요 없는 아이가 되려면

엄마 껌딱지 탈출기


"엄마, 하연이는 아빠 엄마한테 조르면 포켓몬 카드도 사주고 젤리도 사주 신대. 포켓몬 카드는 용돈 모아서 사야 하는데. 젤리도 하루에 한 번만 먹고."

아이는 친구를 부러워하면서, 마치 걱정하듯 말하고 있었다. 나는 빙긋 웃으며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렇지? 엄마, 그렇지?" 대답을 원하는 아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하연이는 좋겠다. 갖고 싶은 카드도 맨날 맨날 사고, 젤리도 원하는 대로 다 먹으니까. 얼마나 좋을까?" 내가 자기 마음을 대신 말하자, 아이는 오히려 고개를 저으며 나를 타일렀다.

"으휴 엄마! 그러면 포켓몬 카드가 너무 많아지잖아. 그리고 젤리 많이 먹으면 이도 썩고. 안돼."

나는 대답 대신 아이를 꼭 안았다.


"우리 딸 많이 부러웠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게 기특하다. 젤리 백번 먹고 싶은 거 꾹 참고, 포켓몬 카드 매일 사달라고 조르고 싶은데 참는 거 다 알아. 엄마랑 약속 지켜줘서 고마워. 멋진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줘서 정말 고마워."


친정 엄마는 이런 내가 너무 하다고 하신다. "가 무슨 어른이냐? 애야 그냥. 애를 애처럼 키워야지." 마음껏 응석 부리고 조르고 떼쓰면서 크는 게 애라고. 엄마는 너무 어른 대하듯 하지 말라고 하신다. 나도 가끔 이런 내가 너무 한가 싶을 때가 있다. 조금 더 받아주고, 조금 더 허용해줘도 되지 않을까? 너무 선을 그으면서 아이를 키우는 건 아닌지 되돌아본다.


내가 '엄한 엄마'가 된 건 아마 그날부터였던 것 같다. 처음 암 판정을 받던 날. 모든 게 꿈같았다. 진찰실에서 담당의사에게 "혈액암"이라는 말을 듣고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다. '나 이제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감보다 '이 올 시간인데 빨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를 데리러 가기 전까지 혼자 거실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당장 골수검사도 하고, 입원도 해야 하고, 항암 치료도 하게 되겠지. 그동안 아이는 어떻게 하지? 친정이랑 시댁에 번갈아 맡기면 되려나? 엄마가 아프다는 걸 얘기해야 할까? 그래, 해야겠지. 아이도 알아야지. 그런데 어디까지 말해야 하지? 암에 걸렸다고 하면 무슨 말인지 알까? 그냥 감기 걸렸다고 속일까...'


앞으로 내게 어떤 고통이 닥칠지 겁나는 건 잠시였다. 온통 아이가 걱정이었다. 가뜩이나 엄마 껌딱지인데, 2박 3일씩 입원하면 얼마나 불안해할지. 항암치료를 하면 계속 토하고 두통도 심하다는데 아이를 돌볼 수 있을지 막막해졌다. 그때, 겨울왕국 속 올라프가 된 기분이었다. 세상은 햇볕이 눈부신데, 내 머리 위에만 먹구름이 따라다녔다. 나만 겨울이었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 손을 붙잡고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꺼냈다.

"엄마 오늘 병원 다녀온다고 했잖아..."

"응 엄마. 에 혹 나서 병원 간다고 했지?"

"엄마 속에 나쁜 세균들이 생겨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꽤 오래 걸린데. 그래서 병원에 입원도 해야 하고 주사도 맞아야 한 대."

아이는 내 배를 어루만지며 인상을 썼다. "나쁜 세균이 그랬구나."


진단을 받자마자 골수검사를 비롯한 각종 검사가 시작됐다. 검사가 끝나고 나서는 4주마다 항암치료를 했다. 그때마다 친정 엄마, 시어머니, 여동생, 언니, 시누이 집안 식구들이 총동원되어 아이를 돌봐줬다. 눈 뜨고 감을 때까지 하루 종일 엄마만 찾는 '엄마 껌딱지'에게 시련이 시작됐다. 엄마 없이 울다 잠들기도 하고, 엄마 따라 병원에 갈 거라고 매달리기도 했다. 그랬던 아이가 영상통화를 걸어 "엄마 치료 잘 받고 와!"라며 손을 흔들게 되자, 친정 엄마는 아이 정수리 위로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엄마 찾지도 않아. 이제 엄마 필요 없나 봐. 걱정하지 마."


세상에 엄마가 필요 없는 아이가 어디 있겠냐마는, 나는 아이를 '엄마 필요 없는 아이'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조금 더 수월하게 아이를 맡길 수 있었고, 치료받을 수 있었다. 아이가 물건을 던지면 '속이 상해서 그랬구나~'하는 '구나 엄마'대신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훈장님이 되어야 했다. 엄마라면 아이의 표정만 봐도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있지만, 남들이 보기엔 왜 그러는지 답답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엄마는 아니니까. 나는 아이가 울거나 짜증 내지 않고 속마음을 표현하도록 훈련했다.  


"너를 도와주면 '고맙습니다'하고 인사해야 해."

"짜증 내지 말고 '단추가 안 끼워져요.'라고 네가 원하는 걸 말해봐."

"엄마가 보고 싶으면 울지 말고 '엄마랑 영상 통화하고 싶어요.'하고 말해. 엄마가 바로 전화할게."

아이가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연습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예민하고 짜증을 많이 내던 아이는 이제 차분하게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안다.


어느 날 혼나고 나서 훌쩍이던 아이가 "엄마가 혼내면 나는 세상에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기분이 들어."라고 말했을 때는 아이가 이 정도로 성숙하게 자기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것에 놀랐다. 당연히 '엄마 껌딱지'도 졸업했다. 지금은 주말에 혼자 할머니 댁에 가서 자고 오기도 하고, 우리 부부가 영화 보고 데이트할 동안 사촌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논다. 


그저 남한테 맡기기 쉬운 아이, 엄마 없이도 잘 노는 아이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훈련이었는데, 아이 달라졌다. 눈물이나 짜증 대신 또박또박 자기 의사를 표현할 줄 알게 됐다. 타인에 대한 신뢰감도 생겼다. 엄마 말고도 친구는 많다는 것,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 아이는 그렇게 '엄마 껌딱지'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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