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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선혜 Apr 29. 2019

'스카이 캐슬'로 가는 방법  

스스로 하는 아이로 키우는 행글라이더 맘


남편은 초등학교 시절 대부분을 인도네시아에서 보냈다. 당연히 제대로 된 사교육을 받지 못했다. 1학년 봄에 인도네시아에 건너가 5학년에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남편의 선생님은 어머님이었다. "학원도 안 다니고 어떻게 서울대 의대에 갔냐"는 나의 물음에 남편은 "초등학교 다닐 때 매일 한 시간씩 학습지를 푼 게 전부"라고 말했다. 대화를 듣고 있던 어머님께서 "너는 학습지만 풀고도 공부 잘한 것 같지?" 하면서 씩 웃으셨다. 어머님은 나를 보며 "내가 문제 설명해주려고 얘 잘 때 두세 시간씩 정답지 펼쳐 놓고 공부했어"라고 말씀하셨다.


"변변한 학원도 없는 나라에서 애를 가르치려니 방법이 있어야지. 내가 공부도 안 하고 대충 가르치면 애가 눈치챌 것 같더라고. 엄마가 자신 있게 가르쳐야 애도 믿고 따를 것 같아서 얘 몰래 연구했지. 사실 초등학생 때까진 많이 가르치는 것보다 습관 만들어주는 게 중요해. 하루에 30분씩이라도 매일 공부하는 습관을 갖는 게 요즘 말하는 '자기 주도 학습'이지."


아이 주변을 맴돌며 아이에게 참견하는 엄마를 '헬리콥터 맘'이라고 부른다. 어릴 때 학습 매니저 역할을 하던 헬리콥터 맘은 자녀가 대학생이 되어도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한다. 아이가 커서 취직을 하면 경력 관리를 대신하고, 배우자 선택에까지 깊숙이 관여한다. 한마디로 과잉보호하는 엄마다.


얼마 전 화제가 된 드라마 '스카이캐슬' 속에도 헬리콥터 맘이 등장했다. 아이의 입시가 내 인생의 전부인 냥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주인공은 '서울대 의대' 합격만을 바라보는 극성 엄마였다. 기계처럼 공부만 시키는 그녀를 손가락질하면서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뜨끔했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우리 어머님은 '행글라이더 맘'이었던 것 같다. 행글라이더는 높은 산에서 뛰어내려 바람을 타고 나는 비행 방법이다. 숙련된 강사가 초보자와 함께 동승해 비행을 돕는다. 다만 강사가 원한다고 해서 속도를 높일 수도,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도 없다. 그저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비행을 즐기며 목표지점에 도착하면 강사의 역할은 끝난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엄마는 아이의 인생을 함께 비행해줘야 한다. 숙련된 강사로서 아이와 호흡을 맞춰야 하지만, 억지로 방향을 바꾸거나 속도를 높여서는 안 된다. 남편이 자라는 동안 어머님은 본인의 노고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으셨단다. 답안지를 달달 외워가며 공부시킨 걸 보상받기보다 자녀가 매일 조금씩 공부하는 습관을 들인 것 자체에 만족하셨다.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게 함께 비행을 해냈고, 성인이 되어 자기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켜봐 주셨다.    


나는 '행글라이더 맘'이 되기 위해 사소한 일부터 시작했다. 아이가 밖에 나갔다 왔을 때 손을 씻는 것, 밥 먹고 양치질하는 것처럼 손쉽게 할 수 있는 일로 훈련했다. 작은 일을 미루다 보면 어려운 과제는 더욱 하기 싫어지기 때문이다. 막 걷기 시작한 아이였을 때 손 씻자마자 바로 간식을 줘서 "깨끗이 손을 씻으면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다"는 걸 공식처럼 받아들이게 했다. 밥 먹고 일부러 색깔 있는 비타민을 줘서 양치할 때 입을 헹구면 핑크색 물을 보게끔 했다. "와 율이가 바로 양치해서 나쁜 세균들이 다 없어졌네?"라며 호들갑을 떨면 아이도 기뻐했다. '양치하라!'는 잔소리 대신 시각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끔 한 것이다.


처음 파닉스를 배울 때도 아이에게 스스로 분량을 정하게 했다. 아이가 정한 분량이 너무 적거나 많아도 일단 했다. 그리고 아이 스스로 평가해서 분량을 수정했다. 공부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아침, 방과 후, 저녁으로 바꿔가며 공부해보고 어떨 때 가장 기분 좋게 공부할 수 있었는지 물었다. 아이는 방과 후에 바로 공부한 다음 친구들이랑 노는 게 좋다고 했다. 일곱 살 여름부터 시작한 공부는 매일 방과 후에 30분씩 계속되고 있다.  


아이가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면 잔소리보다는 기다림이 효과적이다. 권장도서를 읽으라고 잔소리하는 대신 엄마가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게 낫다. 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를 닦달하기보다는 '엄마는 이 부분이 참 좋더라.'면서 형광펜으로 밑줄 그은 책을 건넨다면 아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엄마의 정성을 아이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들이 잘 동안 답안지를 달달 외워 공부시킨 어머님은 헬리콥터 맘일까? 극성과 정성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부모의 본성이다. 누구나 자식이 훌륭한 어른으로 자라 독립하길 바란다. 자식을 위해 '나'를 버리고, 오로지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해 달리는 건 '극성'이다. 자녀가 자신의 인생에 주도성을 가지고 엄마가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정성'이다. 극성으로 키운 자녀는 부모에게 벗어나지 못하는 의존적 존재로 남고, 정성으로 키운 자녀는 독립적 존재로 성장한다.


내가 어떤 엄마인지 간단하게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아이가 평소보다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왔는데 그걸 보고 화가 나면 극성을 부리는 엄마, 즉 헬리콥터 맘이다. 반대로 열심히 한 아이가 얼마나 실망했을까 걱정되면 자식에게 정성을 쏟는 행글라이더 맘이란 뜻이 아닐까.


아이를 인생의 주인공으로 세우려면 엄마가 조연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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