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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선혜 May 01. 2019

살림: 사람을 살림, 분위기를 살림

엄마의 루틴 보여주기


남편은 아이가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대학병원 레지던트가 됐다. 꼬박꼬박 칼퇴근하던 군의관 남편이 갑자기 바빠졌다. 3일에 한번 들어올 때도 있었다. 퇴근해도 제정신이 아닌 채 자느라 바빴다. 아내가 얼마나 힘든지, 아이는 얼마나 컸는지 확인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는 너무 졸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가 된다. 물리적으로 암환자인 나보다 더 힘들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땐 내가 세상에서 제일 힘든 줄 알았다. 성한 몸으로도 자다 깨서 1~2시간씩 울고, 뭐든 싫다고 하는 예민하고 까칠한 딸을 어르고 달래는 건 힘들다. 면역력이 바닥인 암환자는 오죽했을까? 때로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낮지밤반 (낮에 지랄하고 밤에 반성)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아이가 유치원생이 되었을 무렵, 신문을 읽는 데 반가운 동기의 이름이 보였다. 아이에게 "저번에 놀러 왔던 경화 이모가 쓴 기사야!"하고 말했다. 아이가 물었다. "엄마도 기자였다고 했지? 엄마도 다시 기자 하고 싶겠다. 그립겠다."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뜨끔했다. 회사 다닐 때는 회사가 지옥 같았다. 적성에 안 맞는다고 푸념하고 울기도 했다. 


지긋지긋한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좋아서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으면서 이제는 육아 때문에 괴로워한다. 어쩌면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든 건 그때부터였다. 모든 걸 괴롭다고 푸념하지 말고 내가 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부도 내가 선택한 직업'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리고 내 일상을 점검했다. 내가 하는 일을 단순화했다. 청소, 빨래, 설거지, 요리. 이 중에 매일 해야 하는 일과 3일에 한번 하는 일,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일을 구분했더니 매일 하는 일은 요리와 설거지 그리고 청소기 돌리는 일 정도였다. 하루 종일 집안일만 하는 게 억울했는데, 오히려 '저 설거지를 빨리 해야 되는데...' 하며 미루는 시간이 더 길었다. 밤에는 '빨리 자야 되는데...' 하면서 스마트폰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아이가 잠드는 시간을 퇴근으로 정했다. '퇴근하고 놀자!' 회사 다니는 것처럼 업무시간에 집중해서 일하고 퇴근해서 쉬면 된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휴식 시간도 철저히 지켰다. 하루 종일 아이한테 시달리지 않으려고 중간중간 내게 소중한 지점을 마련했다. 


'커피 한잔 마실 시간이 없다'는 푸념 대신 아메리카노를 얼음 틀에 얼려 넣어 놓고 하나씩 녹여 먹었다. 맨날 동요만 듣기 지겨울 땐 아이돌의 댄스음악을 들으며 아이랑 신나게 춤을 췄다. 혼자라고 느낄 땐 라디오를 켰다. 누가 옆에서 이야기해주는 것 같아서 위안이 됐다. 


갓 백일 된 아이를 돌보던 때 일이다. "나도 너처럼 결혼해서 살림이나 하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발끈했었다. "살림이나 하고 싶다고? 살림은 쉬운 줄 알아?" 그땐 대학도 나오고, 직장도 다니던 내가 '살림이나'하는 애 엄마가 된 게 분하고 억울했었다. 


세상에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얼마나 생산성 높은 사람인지. 하지만 육아는 생산성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일이 아니었다. 잘하려고 버둥거릴수록 더 힘들었고, 아팠고, 결국 병이 났다. 나는 몇 년이지나 결혼을 앞둔 그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예전에 네가 '살림이나 하고 싶다'라고 해서 나 발끈했던 거 기억나? 그때 네가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내가 나를 무시했던 것 같아. 내 일상을 하찮게 생각했던 건 나였어. 막상 아파서 살림을 못하게 되니까 알겠더라. 살림하는 여자는 가족들을 살리고, 가정의 분위기를 살리는 거라는 걸. 내가 밥 먹이고, 돌봐서 백 일자리 꼬맹이를 유치원생으로 살려놨잖아. 그리고 나 아프다고 누워있을 땐 우리 집 분위기가 정말 말이 아니더라고. 내가 살림하니까 분위기 확실히 살아나던데? 너도 살림하는 여자 된 거 축하해. "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아이에게는 부모가 역할 모델이라고들 한다. 나는 요리사처럼 요리를 잘하지는 못한다.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청소하는 편도 못된다. 하지만 몸이 아프면 쉴지언정, 집안일을 하면서는 투덜거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집안일을 성실하게 해내는 내 뒷모습을 아이가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매일 집안일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아이가 무언가 해야 할 때 그저 엄마처럼 묵묵히 해내길 바란다.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내는 인내심은 일상을 반복하는 동안 배우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이가 저녁 먹고 나서 "엄마 나랑 놀자"라고 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놀 수 있다는 나의 말에 아이는 내일 하면 안 되냐고 졸랐다. 나는 "내일 아침 깨끗한 그릇으로 밥을 먹으려면 지금 해야 해. 엄마는 깨끗한 주방을 보면 아침에 기분이 상쾌해서 좋더라?"라고 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제안했다. "엄마 설거지할 동안 네 책상을 치우면 어때? 내일 아침에 얼마나 기분이 상쾌한지 보자." 아이는 내가 설거지할 동안 책상을 치웠고, 다음날 일어나서 함께 책상 앞으로 갔다. "와~ 역시 책상 치워 놓길 잘했네. 엄마가 기분이 이렇게 좋은데, 우리 딸은 얼마나 뿌듯하겠어?" 아이는 쑥스러운듯 웃었다. 


발도르프 교육법이 담긴 책 '무지개다리 너머'에서 '삶의 리듬'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매일의 리듬, 매주일의 리듬, 매월의 리듬, 매년의 리듬을 제공하는 일이 아이들에게 소중한 선물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생활의 리듬이 없다면, 아이들은 시간대가 다른 곳을 떠도는 여행자처럼 느낄 것"이라고 말한다. 즉, 규칙적인 일상생활이 아이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뜻이다.  


나 역시 엄마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규칙적인 생활 방식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안다. 오늘도 반복되는 일상이 지구의 자전과 공전처럼 규칙적으로 계속될 것이고, 아이는 그 안에서 질서 있는 생활을 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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