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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선혜 May 03. 2019

아이와 '아침 전쟁'을 끝내려면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알지


"지금 몇 신 줄 알아? 이러다가 늦는다고!"


나는 애가 타는 데 아이는 천하태평이다. 이불속에서 한참을 꼼지락거리다가 느릿느릿 식탁 앞에 앉는다. 밥은 왜 이리 늦게 먹는지. 밥알을 센다는 말이 딱 맞다. 머리 묶어주려고 앉혔는데 몸을 흐느적거리기 시작하면 인내심의 끈이 툭 끊어져 버린다.


"너 진짜 유치원 안 갈 거야?" 잔소리를 쏟아내며 아이를 몰아붙여야만 겨우 끝나는 '아침 전쟁'. 문제는 아이를 보내고 나서 밀려오는 죄책감이다. 아침부터 엄마한테 혼나고 유치원에 간 걸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진다. 그럴 줄 알면 좀 참지 그랬냐고 스스로를 다그치고, 내일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지 반성을 하지만 다음날도 역시 ctrl C, ctrl V. 매일 반복될 뿐이다.


사실 아이가 아침잠이 많은 건 나를 닮았다. 일어나자마자 먹는 밥이 맛있을 리 없다. 나 역시도 어릴 땐 머리 묶을 때마다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을 맞았다. "똑바로 안 앉아? 머리 확 다 잘라 버려야겠다." 엄마의 서슬 퍼런 경고를 들어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아침마다 들었던 잔소리가 그대로 대물림된 셈이다.

  

가뜩이나 아침에 잘 못 일어나던 나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상태가 더 심해졌다. 항암 후유증으로 구역감과 입안의 염증, 두통이 생겨 괴로웠다. 특히 그에 못지않게 괴로운 건 불면증이었다. 밤이 되면 잠이 오질 않고 온갖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누워있으면 등에 불이 난 것처럼 뜨거웠다. 항암제는 암세포만 죽이는 게 아니라 난소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 무서운 약이었다. 조기 폐경이 되지 않게 여성호르몬 주사를 맞았는데 그 약이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밤에 못 자니 당연히 아침이 상쾌할 리 없었다.

 

나는 제시간에 등원시키겠다는 마음을 내려놨다. 아이를 신경질적으로 대하면 내 마음이 무겁고, 아이도 상처 받고 악순환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학교도 아니고 유치원인데. 좀 늦으면 어때?' 그래서 포기했다. 전쟁 같은 아침 대신 평화를 선택했다고 자위했다. 그렇게 한동안 아이는 10시가 되어서야 겨우 유치원에 갔다.

 

일곱 살 겨울, 취학 통지서를 받고 예비소집일이 되어 초등학교에 간 날. 학교에 처음 가본 아이의 표정은 웬일인지 밝지 않았다. 구석구석을 구경하며 아이에게 말을 걸어도 시큰둥할 뿐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이는 어쩐지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엄마는 우리 딸이 벌써 초등학생이 되는 게 믿기지가 않아." 라면서 빙긋 웃었다. "나도" 아이의 짧은 대답 속에 어두운 기운이 느껴졌다. "무슨 걱정 있어?"


"엄마 나 학교 가서도 지각하면 어떡하지? 나는 맨날 유치원에서 지각하는 애잖아. 학교 가면 선생님이 안 기다려

주신대. 늦게 가면 혼난데. 나 맨날 맨날 혼나면 어떻게 해? 난 지각 안 하는 게 소원이야."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침마다 '세월아 네월아' 하며 늑장을 부리길래 지각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친구들이 모두 앉아있는 교실에 뒤늦게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선생님께서 '좀 일찍 다녀야겠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내색은 안 했지만 아이 마음이 편치 않았나 보다.


"엄마가 빨리빨리 준비하라고 했을 때 어떻게 했지? 계속 늑장 부려서 많이 혼났었지? 엄마는 네가 유치원에 늦어도 상관없는 줄 알았어. 매일 아침 사랑하는 우리 아기를 혼내기도 싫었고. 이제 네 마음 알았으니까 우리 내일부터 연습해보자. 줄넘기도 처음엔 하나도 못했는데 지금은 100개 하게 된 것처럼, 연습하면 지각 안 하고 일찍 갈 수 있을 거야. 엄마가 도와줄게."


아이는 9시 30분까지 등원하겠다고 스스로 목표를 세웠다. 나는 아이에게 서두르라고 재촉하지 않고 시간만 알려줬다. 밥 먹는 속도가 느려지면 "5분 뒤에는 식사 마쳐야 해."라고 미리 알려주고,  다 먹지 않아도 치웠다. "준비 시간 10분 남았어."라고 말하면 아이는 서둘러 양말을 신었다. 전날 밤에 옷은 미리 준비해두고, 준비물은 체크리스트를 봐 가면서 스스로 챙겼다.

 

다음 날 제시간에 등원하는 아이를 보고 담임선생님 눈이 휘둥그레졌다. 원장님도 나오셔서 하이 파이브를 했다. "와~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정말 멋지다!" 수줍게 웃는 아이를 앞세우며 나는 말했다. "선생님, 이제 매일매일 9시 30분까지 올 거예요. 오늘도 율이가 스스로 준비 다했어요." 선생님들은 박수를 치며 환영해 주셨다.

 

아이의 도전은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이어졌고, 매일 9시 30분까지 등원하기에 성공했다. 아이는 자신감이 붙었다. 그 후로는 아이가 나를 다그쳤다. "엄마, 지금 벌써 9시야. 이제 밥 먹어야 돼!" 어쩌다 아이가 늦잠을 자면 귀에 대고 속삭인다. "율아, 지금 일어나야 안 늦을 것 같은데?" 갑자기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아이는 "늦으면 안 돼!" 하면서 화장실로 달려간다.


심리학의 대가 아들러는 '과제의 분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타인의 문제에 내가 관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자식도 결국 타인이다. 지각은 아이의 문제이고, 엄마인 내가 그걸 나서서 해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다만 아이가 지각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 엄마는 기꺼이 도올 수 있다.


아이가 조막만 한 손으로 사탕 봉지를 까려고 할 때 떠올려보자. 사탕 껍질 까주는 건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그 사탕을 직접 까는 걸 지켜보려면 내 몸이 베베 꼬이는 것 같다. 손이 미끄러져서 잘 안 까진다고 징징거리던 아이가 수십 번 실패 끝에 사탕을 입에 넣었을 때. 아이는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을 짓는다. 이렇게 생활 속에서 불편함을 직접 느끼고, 스스로 목표를 세운 뒤 성공해서 느끼는 성취감은 아이에게 어떤 사탕보다 달콤할 것이다.


그때 만약 계속 잔소리하면서 제시간에 등원을 시켰다면 어땠을까? 아이가 지각을 했을 때의 불편함과 민망함을 느낄 수 있었을까? 오히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아니 회사에 다니는 어른이 되어서까지 내가 잔소리를 해서 아침마다 깨워야 했을지도 모른다. 이 지긋지긋한 '아침 전쟁'이 20년 넘게 이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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