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퇴근하시면 우리 4남매는 열 맞춰 서서 인사를 했다. "다녀오셨어요?"아빠는 대답 대신 현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신발을 신기 편하게 이렇게 둬야지! 다시 정리해라."
밥상이 차려지면 우리는 숨을 죽였다. "젓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너무 크다", "쩝쩝거리지 마라", "골고루 먹어라" 아빠는 계속 잔소리를 이어가셨다.
나는 입이 나왔다. 왜 그리 안 되는 게 많은지 억울했다.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절대 저렇게 잔소리하는 엄마가 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다음 문장을 '나는 잔소리를 전혀 안 하는 훌륭한 엄마가 되었다.'라고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여지없이 어린 시절 우리 아빠처럼 행동했다. 아이에게 사소한 것도 말로써 가르치려 했고, 규칙을 어기면 잔소리했다.
어느 날 아이에게 '똑바로 앉아서 밥 먹어.'라고 지적을 했는데, 아이의 눈빛에서 어린 시절 내가 보였다. 집안 공기가 무거워지고 아빠한테 혼나지 않으려고 애쓰던 그 시절의 나. 갑자기 숨이 막혔다. 생각해보면 당시 율이는 태어나 4년도 보내지 않은, 너무 어린아이였다.
나 역시 대를 이어 계속되는 잔소리 유전을 끊고 싶었다. 먼저 하루 종일 아이에게 하는 말을 떠올려봤다. 거의 대부분지시나 꾸중인 것 같았다. 특히 아이가 잘못했을 때는 예전 일까지 다 끄집어내서 잔뜩 혼내는데, 칭찬할 일이 있으면 '잘했어!' 한마디로 끝내는 게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를 정했다. 잔소리하는 시간보다 아이의 행동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시간을 늘리자고.
일부러 EBS에서 방송한 칭찬에 관한 다큐를 찾아봤다. PD는 실험에 참가한 부모들에게 아이를 칭찬해보라고 주문했다. 대부분 '최고야!', '대단해!'라는 추상적인 표현을 썼다.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부모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더 이상 어떻게 칭찬을 이어가야 할지 몰라 난감해했다. 꼭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영혼 없는 칭찬'을 하지않기위해 프로세스를 정했다. [관찰-설명-감탄]의 순서로 칭찬하기로 했다. 아이를 관찰하고, 계속 실천하길 바라는 행동을 말로 설명한다. 그리고 변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감탄한다.
예를 들어 "손 씻어!"(지시)→"넌 왜 오자 마자 손을 안 씻니?"(비난)→ "맨날 씻는다고 말은 잘하지"(비아냥)라고 꾸중하는 대신, 아이가 손을 씻는다(관찰)→"오자마자 손 씻는구나."(설명) → "덕분에 빨리 밥을 먹을 수 있겠다!"(감탄) 내지는 "비누로 꼼꼼히 잘 씻네"(설명)→"이렇게 깨끗하게 씻으니감기에 안 걸리겠다!"(감탄)로 방법을 바꾼 것이다.
[관찰-설명-감탄]의 순서에 따르니 칭찬 시간이 저절로 늘어났다. "잘했네!"라는 평가는 "율이가 책상 정리를 깨끗이 해 놔서(설명) 종이접기 하기가 너무 편하다!(감탄)"로 바뀌었다. "고마워"라는 대답은 "율이가 먹고 난 그릇을 정리해주니까(설명) 엄마가 설거지를 더 빨리 할 수 있게 됐어!(감탄)"로 늘어났다.
아이가 규칙을 지키나 안 지키나 감시하면 꾸중으로 이어진다. 열에 한번이지만 아이가 스스로 규칙을 지킬 때 기회를 잡아야 한다. 그때 호들갑을 떨면서 너의 행동이 올바르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줘야 한다.
잔소리 줄이는 두 번째 방법은 '정확하게 말하기'이다.아이들은 추상적인 단어로 말하면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아이에게 '꼭꼭', '똑바로', '깨끗이'같은 부사를 쓰지 않고 실천 방법을 알려줬다.
"꼭꼭 씹어라!" 대신 "우리 10번씩 씹어보자! 하나, 둘, 셋~"이라고 말하고, "똑바로 좀 앉아" 대신 "엉덩이를 의자 끝까지 닿게 앉아봐"라고 바꿔 말했다. 집에서 쿵쿵거리며 뛰어다닐 때는 "나비처럼 사뿐사뿐 걷자"면서 내가 날갯짓하는 흉내를 냈다. 아이는 웃으면서 따라했다. 정확하게, 재밌게 가르쳐 주니까 아이의 행동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마지막으로 지킨 원칙은 남들 앞에서 아이 험담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아이가 어릴 때는 오늘 하루 얼마나 힘들었는지푸념하느라 바빴다. "율이가 하루종일 징징대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고군분투했던 하루를 위로받고 싶어 투정을 부린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자기 험담을 들으면 눈치를 본다는 걸 깨달았다. 그 후로 남편과 대화하거나 친정 엄마, 시어머니께 전화를 할 때 아이가 옆에 있으면 말조심을 했다. 반대로 아이에게들리라고 잘한 일을 계속 칭찬했다.
"엄마, 오늘 율이가 넘어진 친구를 얼른 일으켜주더라고. 우리 딸은 정말 마음이 따뜻한 것 같아." "자기야, 율이랑 같이 버스 타고 오는데, 엄마가 서 있으면 마음 불편하다고 같이 앉자고 하더라. 우리 딸 많이 컸지?" 아이가 계속 보여주길 바라는 모습을일부러 칭찬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앞뒤에 하나씩 자루를 달고 다닌다. 앞에 있는 자루에는 남의 허물을 모아 담고, 뒤에 있는 자루에는 자기의 허물을 주워 담는다.
우리는 아이의 허물은 쉽게 보지만, 정작 자신의 잘못에는 관대하다. 나는 그리스 속담처럼 뒤에 있는 허물을 담는 자루가 나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아이 눈에는 잘 보인다는 걸 늘 기억하려고 한다. 부모의 잘못은 실수라며 넘기고 아이의 잘못은 몇 번이고 다그친다면, 아이가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아이는 거짓말처럼 하루 만에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칭찬하고, 정확하게 가르쳐 주고, 작은 변화도 자랑스럽게 여기면 반드시 변한다. 이솝우화에서도나그네의 옷을 벗긴 건 세찬 바람이 아니라 따사로운 햇볕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