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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선혜 May 15. 2019

두가지 냄새로 기억되는 아침

종이신문으로 시작하는 엄마표 논술

 

어린 시절의 아침은 두가지 냄새로 기억된다. 주방에서 새어 나오는 밥 냄새와 신문에서 베어 나오는 잉크 냄새. 가스레인지 위의 압력솥이 기차처럼 칙칙폭폭 거리고 있었고, 아빠는 거북이처럼 등을 동그랗게만 채로 신문을 바닥에 펼치고 계셨다. 언제나 나보다 먼저 일어나 한 손을 바닥에 짚고 다른 손으로 천천히 신문을 넘기시던 모습이 선하다.



나는 아빠 옆에 앉아 밥을 기다렸다. 아빠가 본지(本紙)를 보실 동안 딸려오는 광고지나 섹션지를 읽었다. 아빠가 신문을 다 읽고 내게 넘기시면 재미없는 정치, 경제면을 재빨리 지나가고 사회면부터 읽기 시작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아빠한테 여쭤봤다.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 "요즘은 말이야~"하면서 이야기 시작하셨다. 그땐 아빠가 척척박사님 같았다. 밥 먹으면서도 신문에 나온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갈 때도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밥상머리 교육'을 받은 셈이다.



신문이 좋았다. 두꺼워서 읽을 엄두가 안나는 책 보다 내가 읽고 싶은 이야기를 골라 읽을 수 있는 신문이 편했다. 옛날 옛적 이야기보다 어제 벌어진 생생한 이야기를 읽을 때 가슴 설렜다.


어려서부터 신문을 좋아한 건 아빠 덕분이었다. 매일 아침 함께 신문을 읽는 아빠가 있어서 어려운 이야기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생각도 나눌 수 있었다.



신문에 나오는 글자를 읽고 쓰며 한글을 뗀 꼬마는 커서 기자가 됐지만, 몇 해 버티지 못하고 그만뒀다. 대학원생이 되어서는 기자 경력을 살려 논술 과외를 했다.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오산이었다.



맡은 애들마다 상태가 안좋았다. 만화책만 읽는 애, 교과서조차 읽기 싫어하는 애, 자기 생각 말하는 걸 끔찍하게 여기는 애, 말은 잘하면서 글은 전혀 못쓰는 애. 한마디로 가지가지였다. 그런데 애들의 공통점이 한 가지 있었다. 그건 바로 걔들 부모님 역시 글 읽기를 싫어한다는 거였다.



실제로 아이들 독서 습관을 기르는 데 가장 주효한 방법은 '부모의 모범'이다. 아빠, 엄마가 책을 읽으면 자녀도 그 모습을 따라 하기 마련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 독서 싫어하는 부모 밑에 책 많이 읽는 자녀가 나올 리 만무다.



나는 학부모님들께 먼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시라고 부탁드렸다. 하지만 대부분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라고 하셨다. 아침마다 신문을 읽으면서 아이와 함께 대화를 나눠 보시라고 권하기도 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늘 비슷했다.


"네이버 들어가면 뉴스 다 공짠 데, 요즘 누가 종이 신문을 봐요?"


포털에 들어가면 무료로 볼 수 있는 뉴스를 왜 굳이 돈 내고 봐야 하는지 의아해하는 건 당연하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 신문을 보라고 권했다. "책 읽으라"고 백번 강요하는 것보다 매일 아침 신문 읽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책 한 권 값인 1만 5천 원이면 매일 집에서 '논술 교과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신문의 매력이다.



신문은 빨리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책은 고르고 읽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신문은 다르다. 매일 기사 제목(헤드라인)만 훑어도 하루의 주요 뉴스를 대충 이해할 수 있다. 하루에 관심 있는 기사 서너 개만 읽고 버려도 그날 신문의 역할은 충분하다. 신문에서 눈에 띈 정보를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독서로 연계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역시 율이가 기어 다닐 때부터 매일 아침 신문을 봤다. 신문 위에 앉아서 엄마를 방해하던 꼬마는 이제 아침마다 엄마에게 신문 기사를 읽어 달라고 하는 여덟 살이 됐다. 매일 아침마다 넓은 테이블에 아침상을 차려 놓고 한쪽에 신문을 펼친다. 아이 밥을 먹는 동안 나는 신문을 읽는다.



처음에는 그저 내가 신문 읽는 모습만 보여줬다. 아이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해서 신문 속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가 한글을 읽게 된 뒤로는 곁눈질로 헤드라인을 읽고 재미있어 보이는 기사를 읽어 달라고 한다. 원하는 기사는 스스로 가위로 자다. 매일 스크랩해 놓은 기사를 보면 아이의 관심사를 파악할 수 있어 좋다. 도서관에 가기 전, 아이가 스크랩 해 놓은 기사를 보고 빌려올 책을 함께 계획할 때도 있다.



요즘 수능에서 국어영역의 난이도가 높아지고, 대학 입학에서 논술 시험의 중요성이 커졌다.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에 논술 학원에 다니는 이유다. 인기 있는 유명 논술 학원은 2~3년씩 대기해서 겨우 들어가기도 한다. 문제는 논술학원에서 아이가 수준에 안 맞는 책을 읽고, 정형화된 글쓰기에 익숙해지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너무 어려서부터 논술 학원을 다니는 대신 부모님과 매일 신문을 읽고, 가볍게 의견을 나누는 정도만 꾸준히 하면 논술이나 국어시험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에게 어떤 강요도 없이, 우리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그저 아침마다 종이 신문을 읽을 거다. 아이가 커서 어린시절을 두가지 냄새로 기억하기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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