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선혜 May 21. 2019

성인이 된 나는 더이상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

예체능학원이 아닌 일상에서 배우는 예술



"율이는 유치원 끝나고 뭐해요?

종일반도 안 하고, 학원도 안 다니고... 안 심심하대요?

우리 애는 하도 심심하다고 해서 미술이랑 피아노 보내요."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 친구 엄마가 하원 후 일과를 물었다.



"아직 학원 다니고 싶다는 말을 안 해서 좀 기다려보려고요."

"맞아, 엄마랑 노는 게 제일 좋지!"

맞장구치던 그녀는 얼른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어머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얘 빨리 와 미술 갈 시간이야!"

 


율이가 다녔던 유치원은 대부분 2시에 끝났다. 등원해서 4시간만 있으면 아이를 데리러 가야 했다. 집안일하고 점심 먹으면 바로 '애델렐라'로 변신이었다. 그런데 하원 시간이 돼도 놀이터에 오는 친구는 별로 없었다. 대부분 방과 후 수업을 듣거나 학원 선생님 손에 이끌려 학원으로 향했다. 친구들은 피아노, 미술학원 이름이 쓰인 가방을 들바쁘게 다녔다. 학원이 끝나는 4~5시가 되어야 놀이터에 친구들이 조금씩 모였다. 친구 만나러 학원에 간다는 말이 엄살은 아니었다.



아이를 제법 키워 놓은 '선배맘'들은 하나같이 어릴 때 예체능을 많이 해두라고 입을 모았다. 초등학교 3~4학년만 돼도 국영수에 집중하느라 예체능은 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어릴 때나 되니까 발레도 하고, 피아노도 치고, 축구도 할 수 있는 거라고 그랬다. 실제로 아이가 여섯 살쯤 되니 예체능 학원에 안 다니는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나도 흔들렸다. '혹시, 아주 만약에, 우리 딸이 김연아처럼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는데 내가 미리 소질을 발견해주지 못하면 어떡하지?' 불안해졌다. 학원 팸플릿을 살펴보거나 주변 엄마들의 학원 품평회에서 귀동냥을 했다.


 

그렇게 학원을 보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피아노 배우는 게 참 지긋지긋했었다. 도레미, 도레미 반복해서 치는 바이엘이 그랬고, 손가락이 뻐근해질정도로 반복하는 하농이 그랬다. 몸을 빼내려고 피아노 의자를 밀면 벽에 닿을 정도로 좁은 연습실이 답답했다. 선생님이 피아노 책에 그려준 별 열개를 모두 칠해야 끝나던 훈련. 아이러니하게도 피아노 학원에 다니면서 나는 피아노에 흥미를 잃었다. 결국 체르니 40번에 입문했을 때, 도저히 지겨움을 참지 못하고 그만뒀다. 성인이 된 나는 더이상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



예체능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무렵, 서울유아교육진흥원에서 주최하는 학부모 연수에 참가한 적이 있다. 감성인지발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남영 소장은 "아이에게 언제 피아노를 가르쳐야 하느냐"는 학부모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요즘 애들은 대여섯 살부터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지만, 저는 반대예요. 손이 작고, 건반을 누르는 힘이 약한 건 물론이고, 아이가 음악에 대한 경험을 많이 쌓고 나서 '기술'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개울가에서 졸졸 흐르는 물소리, 천둥번개 치고 비가 쏟아지는 소리, 철썩철썩 파도치는 소리. 주변에서 들리는 다양한 노래와 소리를 충분히 느끼게 해 주세요. 그래야 몸속에 축적된 '음악'이 더 커서 손가락으로 재현될 수 있습니다."



당시 강연을 듣던 나는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가르치지 말고 경험하게 하자"는 나의 육아 철학에도 딱 맞았다. 이 소장은 피아노뿐만 아니라 모든 예체능이 마찬가지라고 했다. 발레 학원에서 우아한 손짓을 연습하는 대신 어릴 때는 놀이터에 가서 뛰고 구르고 달리다 멈추게 하면 된다고 했다. 자기 몸을 잘 쓸 줄 아는 게 초등 3학년 이전에 해야 할 '체육'의 전부라는 것이다. 강연을 듣고 나니 내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사라졌다.



대학에서 문화관광학을 전공한 나는 아이의 '문화예술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아이의 유년시절을 풍요롭게 하는 건 학원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 경험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미술 학원에 보내는 대신 함께 전시를 보러 다녔다. 아이가 하원 하면 일주일에 한두 번씩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갔다. 회화 작품은 아무래도 아이가 지겨워하니까 현대미술관을 자주 찾았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작품으로 구현되어 아이도 지루하지 않다.



아이와 전시를 보러 간다고 하면 "애가 지겨워하지 않느냐"라고 묻는 사람도 있다. 나는 작품 내용을 설명하거나 집중해서 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전시회에 가면 최대한 말을 아꼈다. 아이가 뭘 알겠느냐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마음껏 느낄 수 있게 기다려줬다. 아이가 여섯 살 때 시립미술관에서 극사실주의 화가 론 뮤익의 '침대에서'라는 작품을 본 적이 있다. "우와 콧구멍 되게 크다. 저 사람 콧구멍으로 쏙 들어가서 여행하고 싶다!" 조용한 미술관을 울리는 목소리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큭큭 웃기 시작했다. 작가의 의도가 뭔지 모르지만 아이가 느끼는 대로 공감해줬다. 그리고 같이 웃었다.



체력은 놀이터에서 키웠다. 예쁜 발레복을 입히고 싶은 로망이 있었지만, 아이에게는 놀이터가 가장 좋은 훈련 장소였다. 달리기, 던지기, 매달리기, 줄넘기를 매일 연습했다. 하원 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이와 곧장 놀이터에 갔다. 학원에서 선생님이 지시하는 동작을 하는 대신 그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놀았다. 엄마들은 이런 나를 '놀이터 반장'이라고 불렀다. 놀이터에서 안보이기라도 하면 "율이 어디 아프냐"라고 전화가 올 정도였다.


 

음악은 자연이 선생님이었다. 많이 들어야 표현도 풍부하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동네 뒷산에 올라 이름 모를 새소리도 듣고, 개천에 나가 물소리도 들었다. 비가 올 때는 우비 입고 장화 신고 첨벙첨벙 뛰어다니게 뒀다. 자연의 소리가 귀에, 마음에 쌓이길 바랐다. 우아한 클래식만 고집하지도 않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함께 듣기도 하고, 유치원에서 배운 동요를 목청껏 따라 불렀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는 처음으로 학원에 등록했다. 3월부터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요즘엔 혼자 배영을 할 수 있다고 신이 났다. 놀이터 역시 아이가 빼먹지 않는 일과다. 학교 끝나고 놀이터로 달려가 저녁 먹기 전까지 놀고 또 논다. 전시회는 여전히 좋아하지만, '예쁘게 그리기'는 관심 밖이다. 나 역시 아이가 꼼꼼히 색칠하지는 않아도 그냥 내버려둔다. 그래도 음악만큼은 가리지 않는다. 클래식과 팝송, 아이돌 음악과 동요를 모두 좋아한다. 그리고 여전히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와 빗소리를 사랑한다.



나는 예체능 교육 전문가는 아니다. 나의 소신이 전문가가 보기에는 '어리석은 고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바란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예체능 기술을 익히는 데 급급하지 않기를. 몸과 마음으로 흠뻑 세상을 느끼기를. 자신의 일상을 예술이라고 느끼며 살아가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무관심으로 아이 편식 고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