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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선혜 May 24. 2019

엄마를 위한 자존감 수업

아이보다 나를 먼저 사랑하는 엄마가 되는 법 



"요즘은 애 키우기 참 좋아졌어. 우리 때는 세탁기가 있어, 유모차가 있어? 천 기저귀 써서 맨날 손빨래하고. 잠깐이라도 맡길 어린이집이 있길 하나... 애도 여럿이라 키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지. 그런데 요즘 엄마들은 뭐 애 하나 가지고 그렇게 힘들다고 하는지."



놀이터 벤치에 앉아 그네 타는 아이를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할머니 한 분이 내 옆에 앉으며 말씀하셨다. 발치에 놓인 유모차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애기 엄마냐고 묻지도 않고, 나 같은 '요즘 엄마들'이 얼마나 좋은 시대를 타고났는지 목소리를 높이셨다.  



사실 나도 궁금했다. 엄마 되는 게 왜 이리 힘든 건지. 객관적으로 아이 키우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몸은 기자였을 때 더 힘들었다. 경찰서 기자실에서 쪽 잠자고, 밤새 사건 현장에서 기다리던 때랑 비교하면 확실히 그렇다. 그런데 마음은 엄마가 되고 나서 더 지옥 같았다. 아이가 우는데 달래기는커녕 귀를 막고 싶었다. 아이가 나를 보고 웃고 있는데도 너무 외로워서 울어버렸다.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 때, 나는 더욱 지옥에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쁜 엄마라는 자책이 나를 병들게 했다.  



몇 달 전 '자존감 수업'을 쓴 윤홍균 작가의 강의를 듣고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자존감이 떨어지는 상황을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하면서, "스트레스가 끝없이 이어질 때, 힘들다고 털어놓을 곳이 없을 때, 무언가 완벽하게 해내려고 할 때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라고 하셨다. 율이가 만 세 살이 되기 전까지 나는 이 세 가지에 모두 해당됐다. 아이가 밤낮으로 보챘으니 스트레스가 계속 이어졌다. 일찍 아이를 낳아 육아 동지라고 부를 만한 친구조차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에게 완벽하게 해주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윤홍균 작가는 반대로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이렇게 정의했다.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힘든 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행이다'라고 격려하는 사람,
하루 15~30분이라도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사람




엄마가 된 지 삼 년 만에 암 선고를 받고, 나는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지?" 입버릇처럼 했던 푸념 했었는데, "얼마나 더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을까?" 불안해졌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괴로웠던 육아였는데, 끝나버릴까 봐 무서웠다. '내일 당장 죽으면 아이는 나를 화내는 엄마로만 기억하지 않을까?' 자는 아이 옆에서 숨죽여 울기도 했다. 



암이라는 걸 앎으로써 나는 생각을 바꿨다. 서율이를 위해 내 젊음을 '희생'한다는 억울함은 아이의 모든 처음에 함께한다는 '기쁨'으로 채웠다. 다른 친구를 때리거나, 물건을 집어던질 때 화난 얼굴로 '훈육'하는 대신 단호한 표정으로 '훈련'시켰다. 모든 걸 완벽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아이의 속도대로 해낼 수 있게 기다렸다. 



암 선고를 받고 나서 나는 '좋은 엄마 말고 살아있는 엄마'가 되자고 목표를 낮췄다.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힘든 골수검사와 항암치료를 이겨내니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육아하며 기분이 바닥 치면 틈틈이 신나는 음악을 듣거나 캐모마일 티를 마시며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암환자가 되고 오히려 자존감 높은 엄마가 된 셈이다.


   

놀이터에서 만난 할머니 말처럼 우리는 호사를 누리며 아이를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엄마에게 육아가 축복은 아니며, 매일이 지옥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건 아이를 사랑하지 않거나, 모성애가 없어서가 아니다. 단지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스스로를 사랑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비행기에 타면 "긴급상황에서 보호자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착용하라"고 방송이 나온다. 위급한 상황에서 아이를 먼저 돌보는 게 아니라 우선 엄마가 살아야 아이도 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제 아이를 돌보다 숨이 턱 막히는 순간이 오면 참지 않고 산소마스크를 꺼낸다. 달콤한 초콜릿 한 조각, 수화기 너머 친구와의 짧은 수다, 에너지 넘치는 아이돌 가수의 뮤직비디오, 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나를 기쁘게 하는 일상의 활력소들로 숨을 돌린다. 



'살아있는 엄마'가 돼서 알았다. 내가 살아야 아이도 살릴 수 있다는 것. 그 단순하고 명백한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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